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연일 한일 양국 백신 접종 속도를 지적하고 있다. “(백신 접종) 느림보” “접종 속도를 못 내면 코로나 종식이 어려워질 것”이라고까지 했다. 실제 한일 양국 백신 접종률은 보잘것없다. 19일 현재 1차 접종자 기준 한국은 2.9%(151만2503명), 일본은 0.9%(117만5324명)에 그친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명암이 갈린다. 한국은 백신 물량이 부족한 반면 일본은 물량 확보에 성공했다.

◇韓 1300만명, 日 1억2000만명

우리 정부는 백신 접종에서 “일본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접종률은 한국이 소폭 앞서지만,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화이자 백신 확보에선 일본이 앞서고 있다. 화이자 백신만 놓고 보면 우리는 1300만명분(전체 인구의 25%), 일본은 1억2000만명분(추정)이다. 자국 16세 이상 접종 대상자(1억1000만명)를 모두 맞히고도 남는다.

이는 출발선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은 화이자 백신 개발 단계인 작년 7월 6000만명분 선구매에 성공했다. 화이자 백신의 효과, 안전성을 간파한 덕이다. 여기에 올 1월 1200만명분을 추가 계약했다.

미 보건 당국이 최근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3차 접종(부스터 샷)’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수급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이번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직접 움직였다. 일본 정부는 “지난 17일 방미 중인 스가 총리가 화이자 CEO와 직접 통화해 화이자 추가 확보에 합의했다”며 “이번 합의로 16세 이상을 모두 맞힐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4000만~5000만명분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출발도 우리보다 빨랐고 수급 불안정 위기 상황에서 기민하게 대처했다.

화이자 백신/로이터 연합뉴스

우리는 미국과 EU, 일본 등이 작년 중반부터 화이자 확보에 나섰지만,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화이자와 모더나가 우리와 계약하자고 재촉한다”며 느긋해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작년 12월 말 1000만명분에 이어 올 2월 300만명분을 추가 확보했다. 그러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화이자 측은 2월 300만명분 계약 당시 “물량을 더 구입하라”고 우리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300만명분은 올 상반기 공급받을 수 있는 전량”이라는 입장이다. “300만명분이 전량이란 근거를 밝히라”는 야당과 전문가·시민 단체 등의 요구엔 “계약 내용은 기밀”이라며 함구하고 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두 나라 모두 접종률이 저조하지만 물량이 없어 주저앉은 우리나라와, 물량이 충분한데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일본은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일본의 ‘관료주의·백신 공포' 고민

일본 ‘백신 플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일본 언론과 의료계에선 “접종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정부를 비판한다. 접종이 더뎌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도쿄 올림픽이 실패할 거란 우려가 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일본은 백신 확보에는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접종 리더십'은 없다”면서 “일본 특유 관료주의와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가 접종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백신 거부감이 뿌리 깊은 편이다. AP통신 등은 수십년간 이어진 일본 백신 흑역사의 여파라고 분석한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백일해·홍역·풍진 백신, 자궁경부암 등 부작용과 접종 후 사망 논란이 잇따르면서 백신 거부감이 커졌다는 것.

일본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AZ) 등 백신을 대량 확보했지만 현재 승인된 백신은 화이자 하나다. 화이자가 작년 12월 사용을 신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 내 별도 임상시험을 요구해 올 2월에야 승인이 났다. 최재욱 교수는 “속도가 더디지만 안전성 원칙은 지키는 것”이라며 “반면 우리는 원칙도 없고 실속도 없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중반 “백신 확보는 안전성이 최우선”이라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백신 확보를 뒤늦게 서둘렀다. AZ 백신을 심사할 당시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하지 않은 백신을 쓰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AZ 백신은 혈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접종 불안감이 높아졌고, 화이자는 당장 접종할 물량은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