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얀센 접종 중단’ 파동으로 국내 화이자·모더나 백신 도입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정부는 자국 백신인 화이자·모더나·얀센을 대량생산해 ‘5월 말까지 성인 전원'에게 맞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얀센이 혈전 문제로 접종 중단돼 화이자·모더나 백신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커지면서,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미국 쏠림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각) 미국 내 얀센 접종 중단 사태에 대해 “우리에겐 얀센이나 아스트라제네카(AZ)가 아닌 mRNA 백신(화이자·모더나) 6억회분이 있다”며 “100%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미국인을 위한 충분한 백신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CEO는 “미국에 5월 말까지 공급하기로 한 백신 공급량의 10%를 더 공급 가능하다”고 했다. 3월 말 1억회분, 5월 말 1억회분을 공급하기로 미 정부와 계약했는데, 물량 10%를 늘린다는 것이다.

모더나 역시 이날 자사 홈페이지에 “5월 말까지 1억회분, 7월 말까지 1억회분을 미 정부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외 지역 공급망은 미국보다 구축이 1분기 정도 늦었고, 계속 확장하고 있다”고도 했지만 미국 우선 배정 원칙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나라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화이자는 올 3·4분기에 총 950만명분이 국내에 들어올 예정인데, 정부는 이 중 500만명분 이상을 3분기에 공급받는 협상을 화이자 측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얀센 파동에 따른 미 정부의 수급 확대 움직임으로 협상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모더나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모더나 CEO의 화상 통화 이후 “5월부터 2000만명분을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2분기 도입 예정된 물량은 거의 없고 3분기에도 언제, 얼마나 들어올지조차 여태 정해지지 않았다. 모더나는 신생 기업이다. 스위스 론자사(社)가 스위스·미국에서 위탁 생산하는데 당장 미국·유럽에 공급해야 할 물량이 많고, 생산 설비는 부족하다. 우리나라가 조기에, 다량 공급받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올 3분기(7~9월)에 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를 대다수 국민에게 접종한다는 정부 계획이 중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한편 덴마크 정부는 “AZ 백신 접종을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국가 중 AZ 백신 전면 중단 결정은 덴마크가 처음이다. 유럽연합(EU)에서도 AZ 백신과 얀센 백신에 대한 사용 승인을 내년에는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文은 2분기부터 모더나 2000만명분 들여온다는데… 아직 소식 없어

우리나라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코로나 백신은 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얀센·아스트라제네카(AZ) 등 5종류다. 이 중 AZ만 영국 백신이고 화이자 등 4종은 미국 백신이다. 최근 유럽에서 터진 AZ 혈전 사태는 상반기 AZ 접종 대상자인 우리 국민 800여만명에 대한 접종 계획을 흔들었다.

‘얀센 접종 중단’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화이자 등 다른 백신에 대한 추가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광주광역시 북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센터 관계자가 백신 접종자에게 이상 징후 여부 확인을 위한 대기 장소를 안내하고 있다. /김영근 기자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된 얀센 혈전 사태가 주는 타격은 훨씬 크다. 일반 국민 3000만명 이상이 3분기에 맞을 백신이 얀센·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이기 때문이다. 얀센 사용 중단은 각국의 화이자·모더나 수요 증가로 이어져, 한국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은 노바백스 원·부자재 수출 제한 조치도 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드는 이 백신도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얀센 파동으로 국내 백신 접종 계획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정부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AZ·얀센 혈전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위급해 불완전한 백신을 긴급 투입하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이다. 그러나 정부가 안전성이 일찍부터 검증된 화이자·모더나를 조기에 충분히 구매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다. AZ·얀센 혈전 사태에서 불거진 ‘백신 파동’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이유다.

정부는 작년 한 해 ‘K방역’ 홍보와 ‘K백신’ 개발에 열을 올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백신 기술이 더 좋은 미국 등이 개발한 백신을 조기에 구매하자”고 했지만, 정부가 실제로 움직인 것은 작년 6월부터다. 다른 국가들이 속속 화이자·모더나와 구매 계약을 했거나, 계약이 임박했던 시점이다.

이마저도 속도가 더뎠다. 정부의 당시 논리는 “백신이 안전한지 모른다. 천천히 사도 된다”는 것이었다. “국내 백신 개발 박차”를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지시하자, 그제야 구매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작년 10월 이뤄진 첫 백신 계약은 화이자·모더나 같은 백신 회사가 아니었다. 저개발 국가들에 백신을 분배하는 목적으로 만든 코백스와의 계약이었다. 두 번째 계약은 작년 11월 AZ였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인 화이자·모더나가 먼저 “계약하자”고 했지만, 정부는 이때도 “상용화하지 않은 mRNA는 신기술이고, 가격이 비싸다”며 계약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11월 국회에서 “화이자·모더나에서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재촉한다”고 했다. 결국 화이자·모더나와의 계약은 작년 12월에야 이뤄졌다.

‘백신 조기 확보 실패’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정부는 결국 “확진자가 적어 백신 의존도를 생각 못 했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어느 정도 백신 계약이 체결됐던 작년 말부터 또 태도를 바꿨다. 백신 정책 비판 등에 대해 “도 넘는 흔들기”라고 했다. 또 “우리는 충분히 백신을 확보했고, 접종 시기·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를 것”이라고 오히려 자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3분기에 화이자 500만명분 이상, 얀센은 300만명분 이상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AZ 3·4분기 물량 571만명분 대부분을 3분기에 몰아 받는 협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바백스는 3분기까지 1000만명분 공급이 확정됐다. 이런 상황이 반영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백신 수급 자신” 발언 하루 만에 얀센 파동이 불거지면서, 3분기 백신 수급을 다시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작년 말 “문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화상 통화를 했다”며 “2부터 총 2000만명분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던 모더나는 여전히 도입 물량·시기가 미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 회사들과 릴레이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물량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