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코로나 백신은 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얀센·아스트라제네카(AZ) 등 5종류다. 이 중 AZ만 영국 백신이고 화이자 등 4종은 미국 백신이다. 최근 유럽에서 터진 AZ 혈전 사태는 상반기 AZ 접종 대상자인 우리 국민 800여만명에 대한 접종 계획을 흔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작된 얀센 혈전 사태가 주는 타격은 훨씬 크다. 일반 국민 3000만명 이상이 3분기에 맞을 백신이 얀센·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이기 때문이다. 얀센 사용 중단은 각국의 화이자·모더나 수요 증가로 이어져, 한국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은 노바백스 원·부자재 수출 제한 조치도 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드는 이 백신도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얀센 파동으로 국내 백신 접종 계획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정부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AZ·얀센 혈전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위급해 불완전한 백신을 긴급 투입하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이다. 그러나 정부가 안전성이 일찍부터 검증된 화이자·모더나를 조기에 충분히 구매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다. AZ·얀센 혈전 사태에서 불거진 ‘백신 파동’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이유다.
정부는 작년 한 해 ‘K방역’ 홍보와 ‘K백신’ 개발에 열을 올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백신 기술이 더 좋은 미국 등이 개발한 백신을 조기에 구매하자”고 했지만, 정부가 실제로 움직인 것은 작년 6월부터다. 다른 국가들이 속속 화이자·모더나와 구매 계약을 했거나, 계약이 임박했던 시점이다.
이마저도 속도가 더뎠다. 정부의 당시 논리는 “백신이 안전한지 모른다. 천천히 사도 된다”는 것이었다. “국내 백신 개발 박차”를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지시하자, 그제야 구매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작년 10월 이뤄진 첫 백신 계약은 화이자·모더나 같은 백신 회사가 아니었다. 저개발 국가들에 백신을 분배하는 목적으로 만든 코백스와의 계약이었다. 두 번째 계약은 작년 11월 AZ였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인 화이자·모더나가 먼저 “계약하자”고 했지만, 정부는 이때도 “상용화하지 않은 mRNA는 신기술이고, 가격이 비싸다”며 계약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11월 국회에서 “화이자·모더나에서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재촉한다”고 했다. 결국 화이자·모더나와의 계약은 작년 12월에야 이뤄졌다.
‘백신 조기 확보 실패’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정부는 결국 “확진자가 적어 백신 의존도를 생각 못 했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어느 정도 백신 계약이 체결됐던 작년 말부터 또 태도를 바꿨다. 백신 정책 비판 등에 대해 “도 넘는 흔들기”라고 했다. 또 “우리는 충분히 백신을 확보했고, 접종 시기·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를 것”이라고 오히려 자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3분기에 화이자 500만명분 이상, 얀센은 300만명분 이상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AZ 3·4분기 물량 571만명분 대부분을 3분기에 몰아 받는 협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바백스는 3분기까지 1000만명분 공급이 확정됐다. 이런 상황이 반영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백신 수급 자신” 발언 하루 만에 얀센 파동이 불거지면서, 3분기 백신 수급을 다시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작년 말 “문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화상 통화를 했다”며 “2분기부터 총 2000만명분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던 모더나는 여전히 도입 물량·시기가 미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 회사들과 릴레이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물량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