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수마스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목욕탕에서 잇따라 코로나 집단 감염이 터진 여파로 보입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사우나, 목욕탕, 워터파크 등에서 착용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여러 방수마스크가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판매되는 방수마스크들은 비말(침방울)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걸까요?
◇식약처 “방수마스크 중 식약처 인증 제품 없어”
마스크 인증을 담당하는 식약처는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방수마스크 중 식약처가 비말차단효과 등을 인증한 제품은 없다”고 했습니다. 식약처가 효과를 인증한 마스크들은 ‘의약외품’으로 판매되는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방수마스크들은 모두 ‘공산품'이라는 것이죠. 즉 시중에 있는 방수마스크들이 정말 비말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식약처가 인증한 의약외품인 마스크를 쓰고 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가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식약처는 “마스크는 물에 젖으면 차단 효과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목욕탕 탈의실에서 마스크를 쓴다면 충분히 효과가 있지만, 목욕탕 내에서 착용하다가 물에 젖게 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식약처는 “다만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유지된다”고 알려왔습니다.
◇진주시, 논란에도 “목욕탕 안에서 방수마스크 써라”
최근 경남 진주에서 목욕탕발 집단감염이 터지자 진주시는 “목욕탕 이용자는 탕 내에서 방수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방역 수칙을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탕 내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별다른 예방 효과가 없다. 실효성은 떨어지고 주민들만 괴롭히는 탁상 대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진주시가 목욕탕 이용자에게 씌우겠다는 ‘방수 마스크'는 플라스틱 재질의 마스크라고 합니다. 목욕탕 방역대책을 담당하는 진주시 위생과 측은 “식약처에서 인증한 제품을 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식약처는 “우리가 인증한 플라스틱 마스크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진주시 측은 “어떤 마스크든 비말 차단이 좀 더 되지 않겠느냐”며 “목욕탕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니 뭐든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식약처에 알아봤다”고 했다가 “제대로 못알아봤다”...거짓 해명도
진주시의 방수마스크 대책에 중앙 방역당국도 앞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목욕탕 내의 방수 마스크는 방역학적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이 제품은 비말 차단용 마스크처럼 완전하게 밀착해 침방울이 튀는 것을 막기 어렵고, 전후좌우로 침방울이 다시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진주시는 지난 23일 ‘목욕탕 내에서 방수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를 금지한다'는 목욕탕 방역수칙을 강행했습니다. “해당 수칙에 대해 식약처나 질병청 등 전문기관과 상의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수칙을 마련한 진주시 위생과는 “관련 기관과 상의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물어보지도 않았고 논란이 있는 것도 안다”고 답했습니다. 목욕탕 현장을 점검하는 중 아이디어를 얻어 자체 내부 회의를 통해 수칙을 정했고, 철회할 뜻이 없다는 겁니다.
위생과 측은 “방수마스크에 대해 식약처 등에 더 알아보고는 있다”고도 했습니다. 정작 식약처는 “진주시가 직접 검토 공문을 보내거나 문의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진주시 위생과는 “사실은 제대로 못알아봤다. 죄송하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지자체 간 ‘방역 포퓰리즘' 경쟁...의·과학은 없고 ‘탁상 대책'만
이는 진주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1년이 넘는 동안 여러 지자체들은 이렇게 전문가나 식약처·질병청 등 전문기관의 자문도 받지 않은 자의적인 방역수칙을 마구 쏟아내는 양상입니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코로나 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인권 침해'라는 외국 대사관들의 항의에 부랴부랴 검사 지침을 수정한 일도 있었습니다. ‘전 주민 전수검사는 효과가 없다'는 전문가와 방역당국의 지적에도 지난해 전북 순창군과 경북 포항시는 집단감염 발생을 이유로 전 주민 전수검사를 강행했습니다. 두 지자체 모두 본지 취재에 “전문가 검토를 따로 받은 적은 없다”고 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병동이 아닌 상급종합병원 전체를 2주간 폐쇄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시 전문가와 병원협회 등이 “과도한 폐쇄 지침 탓에 일반 환자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당시 서울시 등은 “지침대로 할 뿐”이라며 2주 폐쇄를 고수했습니다. 결국 일반 환자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언론을 통해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병원 폐쇄 지침을 수정했습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주민들을 위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선의까지 비난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자체장들이 주민들에게 방역을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이나 전문기관 검토 없이 자의적인 방역 수칙, 대책을 만들고 강행하는 양상”이라며 “오히려 ‘방역 포퓰리즘'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중앙정부와 함께 코로나 관련 직장 폐쇄 지침들을 마련했지만 소용이 없다. 지자체들 마음대로 집단 감염이 나오면 사업장 자체를 자의적으로 폐쇄하는 일들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전문가들이 직접 연락을 취해 문제점을 지적하면 “알겠다”고 답하고서도 흘려듣는 경우가 다반사인 실정입니다.
이번에 진주시가 발표한 목욕탕 대책 중에는 방수마스크 착용 외에도 목욕탕 출입구에 CCTV 설치를 의무적으로 하라는 행정명령도 포함됐습니다. 진주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영업하다 적발된 업소는 적발 1회시 과태료, 2회 적발시 집합금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상혁 부회장은 “이미 전국 목욕탕에 전자출입명부가 의무화돼 확진자가 발생하면 접촉자 추적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CCTV까지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건 불필요한 비용을 업주에 부당하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지자체들의 생색내기 정책에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민들의 방역 피로가 극심하다”며 “이럴 때일수록 의학적·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방역을 해야 국민들의 피로감과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국민들의 방역 협조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지자체 방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입니다.
◇방역당국, 지자체들의 ‘방역포퓰리즘' 사실상 방치
이런 문제는 1년 넘게 반복됐지만 광역 시·도나 중앙정부는 사실상 방관하는 양상입니다. 진주시의 방수마스크 수칙에 대해 경남도 측은 “경남도와 무관하게 진주시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각 지자체들이 각자 기준으로 각자 권한에 따라 방역을 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감염병예방법에서 각 지자체장들의 방역 권한을 보장하고 있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중대본은 “여러 문제가 되는 수칙에 대해 지자체들과 협조해서 조정을 하고 있고,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 문제가 없이 협조가 되고 있는데 엉터리 수칙·대책들은 왜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이 지자체장들에게 과도하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은 정말 방역 정책에만 국한된 걸까요? 정부와 지자체들이 ‘국민을 위한다'며 내놓는 갖가지 정책들도 이렇게 만들어지는게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공무원들끼리 ‘노란 옷'입고 둘러앉아 탁상공론하기보다 전문가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