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이 어려워 몇 년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이모(29)씨는 요즘 일거리가 없어 가족들에게 우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헝그리 정신이 없다’ ‘내가 취직할 때는 말이야…’라는 타박만 돌아왔다. 이씨는 “공채로 입사해 꼬박꼬박 월급 받는 두 살 터울 언니가 부럽다”며 “노력만으로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했다.
국내 청년층 내에서도 고용과 소득이 안정적인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에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개최한 포럼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공정성 문제’를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분석이다.
22일 저출산위에 따르면, 이 위원회가 지난 17일 개최한 ‘제3차 연령 통합·세대 연대 정책 포럼’에서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청년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19∼34세 가운데 고용과 소득, 사회보험(4대 보험 등) 등이 ‘매우 불안정’한 집단은 2002년 19.2%에서 2018년 31.4%로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또 19∼34세 중 고용과 소득 등이 ‘안정’적인 집단의 비율도 2002년 27.6%에서 2018년 41.7%로 상승했다. 하지만 중간층인 ‘불안정’·'약간 불안정' 집단은 2002년 각각 23.9%와 29.3%였지만 2018년엔 8.1%, 18.7%로 급감했다. 청년층 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충격으로 구직에 청년층이 직격타를 맞은 데다, 기술 집약적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플랫폼 노동 등장 등으로 기간제·일시 근로 같은 안정성 낮은 고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심각한 양극화가 이뤄져 청년세대가 공정론에 치열하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전체 인구 중 청년 인구 비율이 낮아지고 있어 청년이 문제 해결에 참여할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은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일자리 양극화와 공정성 문제는 더 커질 것으로 내다 본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IT 기업이 중심을 이루는 사회에선 기업이 원하는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양질 일자리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커진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중간층이 사라지는 양극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결책은 뭘까. 이승윤 교수는 “국가가 청년의 보편적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는 “청년층 전체에 소득을 보장하기 보단 취업에 실패한 청년에 한해 교육, 소득 보조 등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기 활성화에 힘쓰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선진 복지국가에선 어디에서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기 때문에 공정성 이슈에도 덜 민감하다”며 “정부가 그동안 ‘시장의 공정’에만 몰두해왔는데 복지 국가가 되기 위해 논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 수준의 사회적 삶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