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태로 방역 당국이 22일부터 2주간 백신 무료 접종을 중단한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3일 “백신 보관 온도 준수 여부 등 도매 업체에 대한 감독은 시, 군, 구 단위의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고 밝혔다.

500만명분의 독감 백신을 유통하면서 냉장 보관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상온에 노출시킨 신성약품은 경기 김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전국으로 백신을 유통하는 업체를 감독할 책임이 김포시라는 기초자치단체에 있다고 식약처가 밝힌 것이다. 국가 백신의 유통을 부실하게 감독한 책임을 중앙 부처가 아닌 소규모 지자체에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식약처는 “제조 업체의 출고 단계는 식약처에서, 도매 업체 관리는 지자체에서 감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상온 노출 사고는 광주광역시에서 신성약품이 보건소 등으로 보낼 백신을 재분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김포시가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김포시 관계자는 “독감 백신의 유통 관리 관련 업무는 질병관리청과 식약처 소관으로, 일선 지자체는 문제가 발생한 업체에 대해 행정 처분을 내린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미리 방지할 감독 시스템 자체가 애당초 없었단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보가 아니었으면 500만명이 비정상적인 백신을 맞을 수 있었을 정도로 정부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사실이 전날 확인됐다. 그런데 이날은 국가 백신의 유통을 감시할 책임이 식약처와 지자체로 쪼개져 있는 부실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또 국가 백신의 공급 계약을 맺고 백신 접종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질병관리청, 유통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식약처와 보건복지부에 흩어져 있다.

문제가 된 500만명분 백신의 효력과 안전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지침과 약사법에 따르면 독감 백신은 영상 2~8도에서 보관·유통돼야 한다. 상온에서는 백신 단백질이 변형돼 접종 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백신 제조 업체들은 “25도에서 수개월간 테스트해서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지 검증한다”고 한다. 문제가 된 백신 500만명분의 노출 온도는 25도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일 광주의 낮 최고기온은 26.6도, 20일은 25.3도, 21일은 24.9도다. 기상청 관계자는 “아스팔트 바닥이었다면 실제 온도는 1~2도쯤 더 높았을 수 있다”고 했다. 25도 이상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