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공예 예술가, 그리고 자연주의 살림가로 유명한 이효재가 괴산 살이하며 자주 찾는다는 청천면 '공림사'의 천년 느티나무 아래에 섰다. "작은 점, 씨앗에서 시작해 결국 바위까지 깨고 자란 느티나무는 언제나 묵직한 감동을 준다"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살어리 살어리랏다, 괴산에 살어리랏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공예 아티스트인 이효재(68)는 요즘 오도이촌(五都二村) 아니 이도오촌(二都五村) 하며 ‘괴산별곡’을 노래하는 중이다. 7년 전, “괴산에 ‘숨구멍’인 스튜디오를 하나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얼마 못 있다가 다시 상경하겠지’ 했다. 자연주의 살림가로 유명하지만, 오래도록 서울 도심의 한복판인 성북동 길상사 앞 저택에서 살아왔던 ‘차도녀’였기에 소도시인 충북 괴산은 그에게 적당히 시골살이의 꿈을 실현하게 해줄 임시 휴식처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효재는 어느새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산을 ‘접수’해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지금 여기 진짜 좋아요!” 장황한 안부를 대신한 이효재의 짤막한 한마디에 그가 사는 괴산 청천면으로 갔다. 어디서든 자연에 기대 ‘폼’ 나게 사는 이효재와 함께한 청천면 봄나들이, 아니 ‘폼 나들이’.

◇코로나 때 ‘소꿉놀이’ 시작한 은신처 ‘운상정’

“서울 한 번 가려면 택시 타고, 버스 타고, 남들은 ‘사서 고생’이라는데 전 이곳 체질인가 봐요. 주식 안 하고 경쟁할 일 없으니 세상에서 눈을 돌려 밤하늘 보며 별 세다 들어오고, 진달래꽃 피면 꽃 따다가 화전 부쳐 먹고, 서리태 콩 따다가 들밥 해 먹으면서 화전민처럼 살고 있어요. 요 며칠 푸릇푸릇한 쑥이 막 올라오는 걸 보곤 쑥 뜯어다 설기떡 해 먹을 생각에 설레요.”

‘효재처럼’이라는 말이 라이프스타일의 한 흐름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2006년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는 법을 담은 책 ‘효재처럼’을 시작으로, ‘효재처럼 살아요’ ‘효재처럼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효재의 살림 연장’ ‘효재의 살림 풍류’ 등 20여 권의 살림 지침서, 동화책 등을 숨 가쁘게 펴내며 출판계·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이효재의 소식이 뜸해진 건 몇 년 전쯤이었다.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많던 강연도 다 끊기고, 집합 금지로 사적인 모임조차 할 수 없어 답답할 때 산속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이곳을 발견하게 됐어요. 괴산의 크기가 서울의 1.5배라는데 제가 사는 청천면이라는 곳은 마치 캐나다 어느 산골 마을 같아요. 집 주변에 ‘산봉우리가 하도 빽빽해서 이마에 부딪힐 것 같은 동네’라고 표현하곤 해요.”

'효재처럼 시즌 2'의 주 무대인 충북 괴산 청천면에 있는 이효재의 '괴산 집' 겸 스튜디오. 이효재는 출판 활동을 한동안 쉬었다가 10년 만인 지난해 가을에 이곳에서의 생활을 녹여낸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효재가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괴산 집 내 '차실'. '구름 위 신선들이 노니는 정자'라는 뜻을 담은 집 이름 '운상정'은 가수 나훈아가 지어준 것이다. 대통으로 두른 벽, 돌 수반을 얹은 테이블에서 이효재만의 감각이 느껴진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청천면 운교리 마을 안쪽 깊숙이 자리한 ‘효재의 괴산 뜰’은 자연주의를 노래하던 이효재를 진짜 ‘자연인’으로 만들어준 곳이다. 이효재는 이곳에서 밥을 지어 먹고, 강연 다니고, 서울뿐 아니라 인근 청주, 상주, 문경을 비롯해 해남, 거제까지 당일치기 ‘마실’도 다닌다. 스튜디오라 부르는 집은 이미 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잘 꾸며 놓았다. 한쪽 벽은 대통을 엮어 두르고, 테이블 위 돌 수반에 물이 졸졸 흐르게 꾸민 차실 ‘운상정’은 이효재의 감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이다. “‘구름 위로 높이 솟은 산자락들 사이에 신선들이 노닐고 풍류가 가득한 정자’라는 뜻의 ‘운상정(雲上亭)’이라는 이름은 무대의상을 지어줬던 인연으로 만난 가수 나훈아씨가 ‘하사’한 것이에요.” 운상정 한쪽엔 나훈아의 필체가 담긴 편액이 걸려 있다. 아직까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나 출타로 집을 비울 때가 많아 일반인들에게 개방은 하지 못하고 소규모 클래스 진행과 모임 장소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차츰 지역 문화 살롱으로 만들어갈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니, 효재의 괴산 뜰 구경은 조금 더 기다려볼 일이다.

◇‘김철수 기사님’ 택시 타고 ‘읍내 미쉐린 코스’

운전을 못하는 이효재가 산골에서도 불편 없이 사는 건 “개인택시 45호, 김철수 기사님 덕분”이다. “읍내에 가거나 서울, 다른 지방에 가기 위해 괴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가야 할 땐 김철수 기사님을 호출해요. 어쩌다 보니 ‘전속 기사’님처럼 수시로 부르고 있어요.” 이곳 ‘김철수 기사님’은 못 가는 곳이 없단다. 청주 초정행궁 홍보대사로 일주일에 한두 번 청주 초정행궁으로, 세종시로 요리나 보자기 수업, 강연하러 갈 때도 ‘김철수 기사님’을 외친다. 이따금 ‘옆집 할머니’ 차를 얻어 탈 때도 있다.

차로 이동하면 청천면 집에서 읍내까지는 20여 분 정도 걸린다. 사람 만나면 끼니부터 챙기는 이효재가 점심시간을 앞두고 “괴산에 미쉐린 맛집이라고 점찍은 곳이 몇 군데 있다”며 이끈 곳은 ‘보리식당’이다. 들에서 나는 제철 재료들로 밥을 해 먹으니 좀처럼 외식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보리식당만큼은 외지에서 손님이 올 때 종종 찾는다.

오일장이 서는 괴산전통시장 부근 현지인 맛집 '보리식당'은 이효재 추천 '읍내 미쉐린 맛집 투어' 코스 중 하나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보리식당' 입구엔 주인 부부가 직접 채취해 말려놓은 나물들이 한약방의 한약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시골집을 개조한 식당에서 주인 부부가 2대째 대를 이어 요리해 낸다. 향긋한 나물 포함 아홉 가지 반찬에 시골 된장찌개, 보리밥이 단돈 8000원. “무엇보다 나물을 부부가 직접 채취해서 쓰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했다. 이 집 보리밥을 먹는 방법도 효재만의 방식이 있다. 2인분에 된장찌개가 1개 나오기 때문에 각 된장(각각 먹는 된장, 2000원)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는 건 필수다. “보리밥에 나물을 듬뿍 넣은 뒤 된장찌개에 있는 두부를 ‘숟가락 궁둥이’로 슬슬 으깨 밥의 반은 된장찌개 건더기를 넣어 슥슥 비벼 먹고, 나머지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싹싹 비벼 먹는 게 정석”이다. 다만, 보리식당은 현지인 맛집인 데다 평일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어서 항상 자리가 부족해 “최대한 빨리 먹고 일어서주는 게 예의”라고 귀띔했다. 식사 후 동선은 자연스럽게 근처 ‘총각네 커피집’으로 이어진다. 간판엔 ‘제이스 반’이라고 써 있는데, “이곳 나이 많은 어르신들 사이에선 ‘총각네 커피집’으로 통한다”고. 정작 커피를 내려주는 주인은 중후한 중년 남성이다. 어르신들 눈엔 한참 어린 총각으로 보일 뿐. 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선 주인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비롯해 더치 커피 등을 맛볼 수 있다. 카페 안팎 공간이 널찍해 이효재는 이따금 이곳에서 바느질 모임을 하기도 한다.

창고 개조 카페인 '제이스 반'은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 "총각네 커피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총각이라 불리기엔 중후한 중년 주인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제이스 반'.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하지만 진짜 단골집은 따로 있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사나이짬뽕’ 집이다. ‘부산 사나이’인 주인이 채소와 해물을 듬뿍 넣고 끓인 짬뽕이 유명한 맛집인데 짬뽕도 맛있지만, 순박한 주인 가족들과 격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 이효재는 “사람이 좋아서, 서울에서도 먹지 않았던 짬뽕을 괴산에 와서 먹고 있다”며 웃었다.

괴산전통시장을 오가던 길에 "단골 식당인 '사나이짬뽕' 집 아들이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며 노점에서 옷을 사고 있는 이효재. "서울 오가는 길에 이곳 이웃들에게 도시에서나 살 수 있는 선물을 사서 건네곤 하는데, 그럴 때면 파김치 같은 반찬이나 농작물로 되돌려 받곤 해요. 재미있는 곳이죠?"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대단한 나무’ 만나러 ‘공림사’로 茶 마실

날씨가 좋을 땐 다기와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 청천면 사담리에 있는 천년 고찰 ‘공림사(空林寺)’ 초입의 계곡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계곡의 너럭바위는 ‘VIP 전용 피크닉 좌석’이 되어준다. 이효재는 “자연을 귀하게 대했던 선비들의 풍류를 사랑한다”고 했다.

'공림사' 앞 계곡은 이효재에게 봄 소풍 장소다. "너럭바위에 앉아 계곡 물소리 들으며 철 지난 괴산 옥수수를 먹어도 행복하다"는 그녀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흰 바위산인 낙영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웅전만 남고 전소됐다가 인조 때 중창했으나 6·25전쟁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다. 전각들은 1980년대 이후 새롭게 중건된 것들이다. 이효재는 “삼신각 아래쯤 바위를 깬 ‘대단한 나무’를 보곤 감동을 받아 공림사를 찾게 됐다”고 했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듯 바위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대단한 나무".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내 종무소와 요사채 사잇길에도 또 다른 ‘대단한 나무’가 웅장한 기품을 뽐내며 서 있다. 자정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충북 최고 수령을 자랑하는 천년 느티나무다. 10여 m가 넘는 키에 뿌리가 너럭바위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형태의 느티나무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울음소리를 내 비상사태를 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소원 나무’라고도 불린다. 공림사를 나서는 길, 이효재는 속 얘기도 들려주었다. “30년 넘게 함께 하며 한복 바느질을 해주었던 ‘바느질 영감님’이 코로나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셨을 땐 꽤 힘들었어요. 제 옷도 지어주셨던 분인데, 충격이 컸죠. 믿었던 지인과 상표권 분쟁에도 휘말렸고요. 그때마다 바위를 깨고 자라는 저 나무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산막이마을’ 비밀의 숲에서 여배우처럼

산막이마을엔 이효재가 ‘발굴’한 비밀의 숲이 있다. “누구나 여배우로 만들어주는 영화 같은 숲”이라고.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이어지는 좁다란 산길을 따라 산을 하나 넘어야 나오는 숲은 산막이옛길과 연결된다. 운전하는 이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느라 긴장감이 넘치는데, 이효재는 비밀의 숲을 소개해줄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여기가 이래서 캐나다 같아요. 어딜 가려면 산이나 고개 하나 넘는 건 기본이에요.” 비밀의 숲은 산막이옛길을 걷는 이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 식당 ‘산막이옛집’ 부근 ‘괴산 수월정’(노수신 적소) 방향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숨어 있다. “지인들이 오면 이른 아침에 호수 보며 ‘조식’ 먹기 좋은 숲이에요. 눈에 거슬리는 인공적인 풍경이 없으니 저절로 차분해질 뿐 아니라 여기서 도시락 먹으면 반찬이 필요 없어요. 햇반에 김만 싸 먹어도 꿀맛이죠!”

이효재가 '산막이마을' 부근에 즐겨 찾는다는 비밀의 숲. 조선 중기의 유명한 신하인 노수신이 귀양살이를 하던 '괴산 수월정'(노수신 적소)과 가깝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산막이옛길을 거닐어 울울창창한 소나무에 둘러싸인 벤치에 앉으니 주변은 온통 이름 모를 새 소리, 마주한 괴산호 물길에선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소리뿐이다. “이 길은 사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에 비옷을 챙겨 입고 거닐곤 해요. 이른 아침에 마을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 시간에 걷다 보면 귀에 들리는 건 새소리와 내 숨소리뿐인 길이랍니다.”

'괴산 수월정'을 지나 산막이옛길 괴산호 물길과 마주한 소나무 숲은 인적이 드문 아침이나 비 올 때 더욱 운치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돌아가는 길에 이효재는 땅에 떨어진 꽃가지와 소나무 가지를 하나둘 주워 모으더니 “아이고 예뻐라~”를 연발했다. 분명 땅에 떨어져 있을 땐 흔한 나뭇가지였던 것들이 그의 손길이 닿으니 어여쁜 장식품으로 변신했다. 자연주의 살림가에겐 이만한 놀이터가 없겠다 싶다.

◇대망의 ‘선비 투어’

산골 마을에 해가 떨어지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도시 사람들뿐이다. 이효재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쯤부터 오히려 느긋해졌다. 그리곤 “선비 투어에 나설 차례”라며 ‘화양구곡’으로 이끌었다. 화양구곡은 조선 중기 학자 우암 송시열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명승이다. 산수를 사랑했던 우암이 이곳에 은거하며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계곡에 구곡(九曲)을 붙여 화양구곡이라 불려왔다. 경천벽·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 중 이효재가 즐겨 찾는 곳은 4곡인 ‘금사담’ 부근이다. 계곡가에 앉아 ‘물멍’ 하다 보면 어느새 달이 뜨는데 달 구경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우암이 바위 위에 세웠다는 암서재(巖棲齋)가 경치에 방점을 찍는다. “가만히 앉아 달 구경, 별 구경 하며 선비들의 풍류를 따라잡기 해보는 것도 괴산 살이의 행복이죠.”

이효재의 '선비 투어' 코스의 백미는 속리산국립공원 내 화양구곡 '금사담'이다. 계곡 건너편에 조선 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세운 '암서재' 아래 바위엔 방명록을 방불케하는 각자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해 가을에 10년 만에 펴낸 책 ‘효재按酒(안주)’(초비북스) 속엔 이효재가 괴산의 사계절과 함께하며 놀고, 먹고, 마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주가 주제라기보다는 산수(山水)와 풍류(風流)의 기록들이다. 자연을 닮은 순한 말들이 넘쳐나는 책의 한 페이지엔 이런 글귀가 있다. “누군가는 나를 행위 예술가 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유난스럽다 하고, 또 누군가는 신들린 무녀 같다고도 한다. 어떻게 불려도 상관없다.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자연에 감사하고, 괴산에 감사하며, 칡넝쿨에도 감사할 뿐이다.” 복잡한 세상, 하루만이라도 살어리랏다. 효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