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심신이 한꺼번에 무너져 삶의 의욕마저 잃은 지인이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끼니를 챙기는 일도 쉽지 않다는 그의 변화에 내가 더 놀랐다. 늘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기를 잃은 모습이라니.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찼지만 걱정한다는 티를 내는 것도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힘들어하는 그에게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사람에게 매번 괜찮으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자주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짐이 될 것 같았다. 대신 그가 일터에 있는 사이에 그의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해주기로 했다. 널브러진 짐을 정리하고 쌓인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베란다에 방치된 화분을 꺼내 물을 주었다. 적막 속에서 묵묵히 몸을 움직이니 묘하게 힘이 났다. 이 기운이 그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또 다른 날, 그의 집 냉장고에 먹거리라도 넣어주려 방문했을 때, 냉장고 안은 이미 온갖 음식들이 들어차 있었다. 장 보고 음식 만들 여력도 없을 텐데 어찌 된 일일까. 이고 지고 온 음식을 마치 테트리스 게임 하듯 냉장고에 집어넣고 가는 길에 슬쩍 물으니, 가까운 사람들이 매일 문 앞에 먹을 걸 두고 간다고 했다. 배달 업체를 통해 반찬을 보내기도 하고, 제철 과일을 박스째 놓고 가는 지인도 있다고. 어미 새가 아기 새들을 살리기 위해 먹이를 나르듯, 주변 사람들은 그를 먹이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양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덕분에 요리하고 장 보는 수고 없이 조금씩이나마 끼니를 챙기고 있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그는 천천히 회복하고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되돌아보면, 내가 힘을 내서 회복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나를 일으킨 것 같아. 너도 그중 하나고.”
괜히 멋쩍어서 한마디 보탰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마음이 진짜 위로인 것 같아.”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그는 덧붙였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마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되더라고. 힘들 때 ‘이런 건 내가 잘 안다, 그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다’ 하면서 조언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런데 내가 약해져 있을 때는 오히려 연약한 마음이 더 위로가 되더라.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말없이 음식을 두고 가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문고리에 뭐라도 걸어 놓고 가고. 티 내지 않으면서 늘 생각하고 기도해 주던 사람들. 되돌아보면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게 가장 큰 위로였어.”
헤어지고 나서도 그의 말을 한참 곱씹었다. 그렇지. 나 역시 그랬지. 뭐가 맞는지 헤매고 있을 때 이건 이게 맞고, 저건 저렇게 하는 게 맞다며 딱 부러지는 조언을 건네는 사람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픈 사람들끼리 밥이나 먹자’며 조용히 보폭을 맞춰주는 사람에게서 더 큰 힘을 얻었다. 그 덕에 이튿날에는 조금 일찍 몸을 일으켜, 답 없는 문제를 직면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연약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연약한 마음이었다. 비슷한 마음으로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위로.
고백하자면 요 몇 년간 나는 우울증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특히 요 몇 달은 극심한 번아웃까지 겹쳐 종일 방바닥에 드러누워만 있었다. 이 원고를 쓸 때만 빼고. 맨 처음, 이 지면에 글을 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무척 영광스러우면서도 겁이 났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이런 글, 누가 읽을까…. 글 쓰는 일을 20년 넘게 해왔음에도 매달 원고를 쓸 때마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위로받았다. 연약해진 내가 쓴 글을 허락하는 지면이 있고, 그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를, 한 달을 더 살 힘을 얻었다.
연재 기간 특히 주변 어르신들이 자랑스러워하셨다. 원고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들려주셨고 기꺼이 아이디어도 건네주셨다(대부분 쓸 수 없는 아이디어였음을 고백한다!).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잘 읽고 있어요”라며 귓속말을 건네는 분들도 자주 만났다. 가장 기쁠 때는, 내가 웃으면서 쓴 글에 같이 웃는 독자님들의 반응을 접했을 때. 공감한다며 기꺼이 남겨주신 댓글을 읽을 때였다. 2년 반 동안 이어온 연재는 오늘부로 마무리되지만 저는 저의 자리에서 연약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꾸준히 써 나가겠습니다. 긴 시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