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금 화면에서 3초 만에 기록. 바쁜 부모를 위한 가장 빠른 육아 기록 앱.”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기기에 저장해 소중한 콘텐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드립니다.” “직장인의 점심 식비 관리를 돕는 앱입니다.” “지도 위에 나만의 일상과 추억을 기록해 보세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온 앱(애플리케이션) 소개 문구들이다. 얼핏 보면 전문 개발사가 만든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모두 개인이 혼자 만든 앱이다. 최근 프로그래밍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이 앱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바이브 코딩(Vibe coding·자연어로 요구 사항을 입력하면 AI가 코드를 구현하는 방식), 로우코드·노코드(LCNC·코딩 없이 또는 최소한의 코드로 앱을 만드는 방식) 도구가 빠르게 확산한 덕분이다. 이른바 ‘코딩의 민주화’로, 비전문가도 원하는 기능을 담은 앱을 직접 구현하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
◇필요한 앱 직접 만든다
지난달 소셜미디어 스레드에 ‘개발자 출신 제외, 코드 한 줄도 못 읽는데 앱 출시한 사람?’이란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9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주를 기반으로 성형·시술 길일을 추천해 주는 앱, 사진을 찍어 일본어 단어를 자동으로 추출·정리해주는 앱, 감정을 기록하면 AI가 이를 분석해주는 앱 등 자신이 만든 앱을 소개하는 이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코딩 언어를 하나도 모르는데 챗GPT와 협업으로 8개월 걸려 만들었다” “앱스토어에 올리는 게 어렵지, 앱을 만드는 것은 코딩을 몰라도 가능하더라”는 경험담도 이어졌다. 앱 개발 계기는 대부분 개인적이고 실용적이었다. 한 30대 아빠는 아이의 예쁜 말을 기록하기 위해, 스마트폰 잠금화면에서 바로 녹음해 텍스트로 남기는 앱을 만들었다. 한 워킹맘은 영어 공부를 겸해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휴대폰 화면에 영어 명언을 띄워 주는 앱을 제작했다. 농수산물 시세를 확인하는 앱, 주식 배당 일정을 정리하고 예상 배당금을 계산해 주는 앱 등 출시를 염두에 두지 않고 개인용으로 앱을 만드는 사례도 많았다.
이처럼 기성 앱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직접 해결하거나 일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현해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강모(41)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해 육아 일기 앱 ‘키즈그램’을 출시한 그는 코딩을 배운 적 없는 비전공자로, AI 코딩 도구 커서(Cursor) 등을 활용해 2주가량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앱을 만들었다. 5세 아들을 키우는 그는 “시중에 관련 앱이 많지만 쏙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직접 만들게 됐다”며 “만들다가 막히는 부분은 챗GPT나 클로드(Claude) 등 여러 AI의 집단지성을 빌려 해결했다”고 했다. 사진과 함께 짧은 음성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앱의 특징이다. 강씨는 “아이 목소리는 그 시기에만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해 꼭 넣고 싶었던 기능”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써보려는 목적이었지만, AI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앱 기획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을 내 손으로 끝까지 완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며 “좋은 취미이자 자기 계발 프로젝트였고, 앞으로도 관련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취미부터 수익 창출까지
재미나 호기심에서 출발해 앱을 만드는 이도 적지 않다. 최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는 ‘서울 벚꽃 지도’ 웹앱(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되는 앱)이 인기를 끌었다. 한 게임업체 UI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앱은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서울에 있는 가로수 왕벚나무 3만6023그루의 위치를 알려준다. “벚꽃 시즌에 딱이다” “목련 지도도 만들어 달라”는 호응과 함께, “비개발자 결과물이 더 재밌어 보이는 이유는 본업이 아닌 취미이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왔다. 중견기업 직장인 김모(35)씨는 꿈 해몽, 사주 풀이, 스도쿠, 수수께끼 등 간단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었다. 지난해 AI 관련 유튜브 영상으로 앱 개발에 입문했고, 개발 포럼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다. 김씨는 “AI 도구 구독료로 한 달에 약 15만원 정도 쓰고 있는데, 가성비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며 “광고를 붙이거나, 사용자에게 구독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익화도 노려볼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대 출신 직장인 이모(43)씨도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쪼개 여러 웹앱을 만들었다. 서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레이싱 게임은 약 25시간 만에 완성했고, 세종대왕·이승만·니체 등 역사적 인물들이 대화하는 콘셉트의 AI SNS ‘고스트 소셜 클럽’은 주말 하루 만에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동문 모임을 주선하는 웹앱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씨는 “졸업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기획하게 됐다”며 “AI 덕분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 확장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익이 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 만족한다”고 했다. 필라테스 강사 최이슬(33)씨는 유튜브 무료 강의를 보며 명상 앱을 만들고 있다. 개발 경험은 없지만, 모르는 부분은 그때그때 무료로 구독 중인 ‘제미나이(Gemini)’에 질문하며 해결해 나간다. 기능 구현 방법부터 오류 수정까지 AI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최씨는 “AI 기술을 활용해 나만의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라며 “조만간 이를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왕초보도 ‘뚝딱’ 완성
직장인 앱 개발자들은 “앱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코딩 지식이 없는 기자가 직접 메모장 웹앱 제작에 도전해 본 결과,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10분만에 기본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챗GPT에 “검색 기능이 있는 나만의 메모장을 쉽게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자, AI 코딩 플랫폼 ‘레플릿(Replit)’을 활용한 제작 방법을 단계별로 안내했다. 안내에 따라 AI가 짜준 코드를 입력하고 실행하자 메모 저장과 검색 기능을 갖춘 웹앱이 완성됐다. 이후 “여러 기기에서 메모를 확인하고 싶다”고 하자, AI는 앱 데이터를 저장·관리하는 백엔드 플랫폼 ‘수파베이스(Supabase)’를 연동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알려준 대로 한 웹앱을 배포하자 여러 기기에서 메모장을 쓸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실제 소셜미디어에는 ‘코딩 몰라도 괜찮아요. 앱, 그냥 만들면 됩니다’ ‘코딩 모르는 일반인도 모바일 앱 만들기’ ‘모바일 송금도 못 하던 아줌마가 앱 개발할 수 있었던 방법’ 등 일반인들의 앱 개발 경험담과 튜토리얼(사용법 안내)이 넘쳐난다. 유튜브 영상 ‘10분 안에 무료로 나만의 앱 만들기’는 31만회, ‘완전 쌩초보도 말로만 앱 만드는 법’은 28만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비전문가, 이른바 ‘시민 개발자(citizen developer)’의 부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시장조사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앱스토어 신규 앱 등록 건수는 23만58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급증했다. 업계는 이 같은 증가의 배경으로 AI 기반 개발 도구 확산을 꼽는다. 글로벌 IT 연구 기관 가트너는 올해까지 신규 앱의 70%가 로우코드·노코드 기술을 활용해 개발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2028년에는 전체 기술 제품의 80%가 비전문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4일(현지 시각) 앱 개발을 부업으로 삼는 ‘시민 개발자’ 사례를 조명했다. 매체는 “과거에는 앱을 만들려면 코딩과 소프트웨어 개발 지식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프롬프트(명령어) 입력만으로 몇 분 안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영리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