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은 돈이 된다. 의뢰를 받고 누군가의 현관문에 똥칠을 하거나 협박 전단을 뿌리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 ‘보복 대행’ 조직 총책이 구속 송치된 지난 3일에도, 서비스는 정상 영업 중이었다. 여전히 소셜미디어 X에는 ‘채무 관계 해결’ ‘학교 폭력 해결’ ‘직장 내 괴롭힘 해결’ 등을 내건 보복 대행 24시 상담 홍보 글이 여럿이었다. 텔레그램으로 채팅을 걸었더니 곧바로 답이 왔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텔레그램이니 눈치 볼 거 하나도 없습니다.” 본 기자가 의뢰인을 가장해 “대략적인 가격이 궁금하다”고 운을 뗐다.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사고사 원하세요?”
◇“보디캠으로 촬영, 보복 인증제”
대화만으로 덜컥 겁이 났다. “사(死)는 좀…. 그냥 겁만 주는 정도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상반신·하반신 장애 가능하며 가격은 250만~850만원”이라는 답변이 왔다. “보디캠을 착용한 직원들이 결과본을 촬영해 텔레그램으로 전송해준다”며 “착수금으로 50%를 선입금하면 작업이 시작되고 가상화폐(테더·USDT)로 받는다”고 했다. “어떻게 믿느냐”고 하니, 구독자가 300명에 달하는 텔레그램 공지방 링크를 보내줬다. 일종의 사용 후기(?)에 해당하는 의뢰인과의 여러 대화 캡처본이 올라와 있었다. “가성비가 좋다”는 리뷰도 있었다.
과거 흥신소·심부름센터에서 은밀히 행해지던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류의 민원 해결이 이제는 간편 온라인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텔레그램과 가상화폐로 거래하는 까닭에 “의뢰인은 추적에서 자유롭다”고 호객한다. 올해만 해도 지금껏 피해가 신고된 보복 대행 범죄는 53건.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만 23명이 붙잡혔고, 부산에서도 최근 주택과 사무실 등에 페인트·오물 등을 뿌리고 비방 유인물을 살포한 혐의로 5명이 검거됐다. 텔레그램으로 개인 정보를 입수한 뒤 보복을 저지른 이들은 인당 10만~100만원의 대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보복하려 ‘위장 취업’까지
수법도 정교해지고 있다. 보통은 총책이 일명 ‘특공대원’을 모집해 대리 보복을 수행케 하는데, 일부 업체는 일부러 신원 추적이 어려운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개인 정보를 캐내려 위장 취업도 불사한다. 지난 1월 서울 양천구와 경기 시흥시 일대 아파트를 돌며 보복 대행을 일삼은 일당의 경우, 조직원을 배달앱 ‘배달의민족’ 외주 협력사에 상담사로 취업시켜 집 주소 등 개인 정보 약 1000건을 무단 조회해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6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경찰에 “관련 범죄를 적극 수사해달라”고 주문했다.
금융 테러도 보복 수단으로 횡행하고 있다. 주거래 통장을 봉쇄해 경제 활동에 타격을 입히는 ‘통장 묶기’가 대표적이다. 은행마다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시행 중인 지급 정지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제3자의 계좌에 일부러 10만원 내외의 이른바 ‘핑거 머니’(Finger Money)를 잇따라 입금한 뒤 은행에 신고해 ‘보이스피싱 연루 의심 계좌’로 만들어 해당 명의의 통장을 모두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소명 자료를 제출해 결백을 입증해야 하고, 입증될 때까지 한 달 가까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관련 텔레그램 ID로 문의해보니 “해당 계좌번호와 예금주만 알려달라”고 했다. 비용은 40만원어치 테더였다.
◇너무 먼 법전… 가까워진 범죄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드립니다.” 최근 시즌3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모범택시’의 캐치프레이즈다. 힘없고 백 없는 자들을 위한, 사법의 울타리에서는 불가능한 실질적 복수라는 줄거리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같은 ‘사적(私的) 제재’의 카타르시스는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는 논리가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SK커뮤니케이션즈가 2023년 성인 7745명을 대상으로 한 ‘사적 제재’ 관련 설문 결과, 응답자의 49%가 “적절하다”는 지지 의견을 나타냈다. “부적절하다”는 4%에 그쳤다. 악행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처벌 형량 등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24년 발표한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 제도 신뢰도(33%)는 OECD 평균(54%)을 크게 밑돌았다.
보복 대행 업체는 보복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보복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1월 한 투자 자문 채팅방에서 “돈을 불려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혹해 수천만 원을 송금한 A씨, 그러나 다음 날 사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돈 인출을 막으려 은행에 계좌 지급 정지를 요청했다. 곧장 “계좌를 풀라”는 협박이 시작됐다. 이튿날 집 앞은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였고, A씨를 음해하는 유인물까지 나붙었다. 투자 조직 일당의 의뢰로 보복 업체가 A씨의 집 주소를 알아내 벌인 짓이었다. 공포에 떨던 A씨는 가족과 모텔 등을 전전하다 결국 이사를 택했다고 한다.
◇복수하려다 더 크게 당한다
비대면·비공개 익명 거래는 늘 허위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착수금만 받고 잠적해 버리는 ‘먹튀’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복 의뢰 자체가 불법성을 띠는 탓에 업체 측이 되레 ‘역(逆)협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신고하겠다”거나 “상대방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며 금전을 요구할 경우 코너에 몰린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법의 허점과 그로 인한 무력감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사적 보복 의뢰 역시 범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폭력을 돈으로 구입하는 행태가 만연해질수록 사회의 무법 지대는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마다 “텔레그램과 가상화폐 덕에 의뢰인 추적은 불가하다”며 고객을 안심시킨다. 텔레그램의 경우 서버가 해외에 있어 대화 내역을 국내 수사 기관이 텔레그램 운영사를 통해 확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상화폐 역시 탈중앙화 시스템의 특성상 추적 및 사용자 특정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찰 측은 “텔레그램 협조 없이도 의뢰자를 특정할 수 있는 수사 기법이 있다”고 했다. 최근 서울경찰청은 보복 대행 업체 수사 전담팀을 구성하고 “의뢰자 정보와 추가 피해자 등을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의뢰자 역시 공범 또는 범행 대가를 제공한 공여자로 처벌될 수 있다”며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당초 목표로 했던 범죄의 형량을 의뢰인이 그대로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