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한기(寒氣)가 남아 있으나 봄은 정녕 봄입니다. 봄꽃들도 순서를 다투며 피어납니다. 봄은 새 생명의 계절이자 새 출발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이 4월을 노래합니다.

4월이 오면 흔히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荒蕪地)’ 가운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 구절이 인용되곤 합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4월이 왜 잔인하다는 것일까? 이 구절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의문입니다. 이어지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죽은 듯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 생명이 돋아나는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오히려 역설적으로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자연 현상만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냉기가 뒤덮인 겨울에는 감정이 마비되어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봄이 와서 생명이 움트면 사람은 자신이 잃어버린 생명력과 사랑, 감정을 되살리며 오히려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2년 작품으로 전쟁으로 물질적·정신적·도덕적으로 황폐해진 시대 상황에서 그동안 성취해온 서구 문명의 몰락과 전쟁에 대한 비판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4월을 맞아 자연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인간 삶의 고통과 허무함은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 봄은 자연이 부활하고 재생하는 시기이지만, 시인은 오히려 삶의 고통과 허무함만을 느낍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결국 이와 같은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것이 잔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무지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죽음과 소멸의 상태에서도 변화와 재생의 힘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시의 마지막은 옛 인도의 철학서 ‘우파니샤드(Upanishad)’의 구절,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를 뜻하는 “다타(Datta) 다야드밤(Dayadhvam) 담야타(Damyata)”로 끝을 맺습니다. 지금의 삶과 문명이 거칠고 황폐하여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는 서로 주고, 공감하고, 자제함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음을 노래합니다. 지금 거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인지 모르겠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생략)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시 ‘4월의 노래’입니다.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박목월 시인이 작시하고 김순애가 작곡하여 학생 잡지 ‘학생계’에 실은 시입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된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새롭게 시작할 희망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 무렵 시인이 재직한 이화여고 교정 목련나무 밑 잔디밭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괴롭고 지루했던 피란살이와 구차한 생활에서 해방되어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 등을 연상하며 쓴 시입니다.

이처럼 박목월의 ‘4월의 노래’는 4월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만을 노래한 시는 아닙니다. T.S.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고통스러운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으로 새출발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은 시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벗어나 4월을 순수하게 노래한 임보(본명 강홍기) 시인의 ‘4월’을 만나면 봄이 진정한 봄으로 다가옵니다. 온갖 시름은 잊어버리고 밝은 봄 그대로를 즐기게 하는 시입니다.

“도대체 이 환한 날에/ 누가 오시는 걸까/ 진달래가 저리도/ 고운 치장을 하고/ 개나리가 저리도/ 노란 종을 울려대고/ 벚나무가 저리도 높이/ 축포를 터뜨리고/ 목련이 저리도 환하게/ 등불을 받쳐들고 섰다니/ 어느 신랑이 오시기에/ 저리도 야단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