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된 영상 속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 이후 전 세계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중 일본에서 들려온 소식이 눈길을 끕니다. 화장지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일본 SNS에는 “근처 드러그스토어에 화장지가 다 떨어졌다. 다들 비축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화장지 구매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본에서는 과거에도 비슷한 소동이 있었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 때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화장지 품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일본 제지업계에 따르면, 화장지의 약 97%는 자국 내에서 생산되며 중동 의존도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중동 전쟁이 일본 내 화장지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왜 화장지를 집에 쌓아두는 걸까요.

제조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우려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다수의 선택에 동조하는 ‘밴드왜건 효과’에 더욱 주목합니다. 화장지 묶음은 부피가 크다 보니 몇 개만 빠져나가도 마트 매대가 텅 비어 보입니다. 이를 본 소비자들의 마음이 급해질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위기 상황에서 겪었던 막연한 불안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동해 이성적 대응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화장지를 쌓아 두며 심리적 안도감을 찾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대체재가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음식이 떨어질 경우에는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배설이라는 기본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위생을 유지해 주는 화장지만큼은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보관이 쉽다는 점도 사재기 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현상이 일본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때 미국에서 대형마트의 화장지 매대가 텅텅 비었습니다. 당시 북미 지역의 화장지는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인간은 큰 위기 앞에서 본능에 먼저 흔들리고, 그 불안이 전염돼 비이성적인 집단행동을 보이는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