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출동했다. 화장실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매장에 들어선 한 남성이 화장실을 사용한 뒤 곧장 나가려 하자 직원이 “화장실을 썼으면 음료를 구매하라”며 제지한 이후였다. 이후 옥신각신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며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업주가 영업 방해를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곳 카페 벽면에는 ‘공중 화장실 아님! 결제 후 이용’ ‘화장실 이용 요금 5000원’ 등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14일 전주 한옥마을에 들른 본 기자 역시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다. 근처 대형 카페를 발견해 들어갔는데, 화장실 표지판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눈치 빠른 종업원이 달려나와 “혹시 화장실 찾으시냐”며 “이용하려면 과자 같은 간단한 거라도 결제를 하라”고 말했다. “화장실도 엄연히 영업용 공간인데 당연하다는 듯 볼일만 보고 나가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고 했다. 빈정 상하는 경우도 다반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카페에서 아이들과 화장실 썼다고 1인 1메뉴 주문을 강요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게 정상적인 건가요?”
‘카페=공짜 화장실’ 공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에는 키오스크에 ‘주문 없이 화장실 이용(1인 1회) 2000원’ 결제 항목을 추가한 카페가 등장했다. 화장실이 어엿한 ‘메뉴’가 된 것이다. 급할 때 찾기 쉽고 공공 화장실보다 비교적 쾌적해 발길이 잦았던 카페 화장실, 이제는 비싼 몸이 돼가고 있다. 민폐 고객이 한몫했다. 급하다고 소변기에 대변을 누고 도망치거나 세면대에 이물질을 부어 막히게 하는 등의 봉변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강릉의 한 커피숍 주인은 “관광버스 두 대가 와서는 화장실만 쓰고 간 적도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세계적 현상이 돼가는 중이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미국 내 약 1만개 매장에서 무료 화장실 개방 정책을 폐기했다. 노숙자에게 점거되는 등 외부인으로 인한 고객 불편이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자 내린 조치다. “화장실을 포함한 카페의 모든 공간은 고객과 직원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돈을 써야 고객이고 고객만이 서비스를 누릴 권한이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불청객을 발견하면 즉시 매장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하고 불응 시 경찰을 부르도록 하는 직원 교육 방침도 하달됐다.
결제 시 영수증에 화장실 비밀번호를 인쇄해 주는 식으로 카페 인심이 변화하자 이를 뚫는 ‘파훼법’도 등장했다.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 대만 남성이 “서울 홍대 인근에서 화장실을 찾기 어려울 때 사용하라”며 KFC·쉑쉑버거·투썸플레이스·할리스커피 등에 딸린 화장실 비밀번호 리스트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1만개 넘는 ‘좋아요’가 쏟아졌지만, 일종의 데이터 유출이라는 지적 또한 제기됐다. 대만 TVBS는 현지 여행 전문가를 인용해 “카페에서는 주문한 뒤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사용자 부담 원칙을 따르고 가게를 존중하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상가 및 빌딩 내 민간 개방 화장실 운영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무료 화장실 접근성을 높이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자체가 관리비 일부를 지원해 무료 화장실을 늘리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방문객이 급증한 서울 성동구 측은 최근 “인파가 몰리면서 자발적으로 화장실을 개방해 온 건물주의 관리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며 “휴지·세정제 등 지급 규모를 늘리고 올해부터 최대 월 17만원의 관리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남 순천시도 소모품 무상 공급에 더해 관리비(20만원)까지 지원 범위를 넓혔고, 경기 성남시는 민간 무료 화장실 15곳에 총 4500만원의 개·보수 비용을 전달하기로 했다.
공짜가 사라지는 시대, 역으로 ‘공짜 화장실’을 적극 내세우는 카페도 등장했다. 베트남 관광지 하노이 쭉박(Truc Bach)의 카페·식당에는 지난해부터 ‘Free Restroom’ 간판이 나붙었다. 자영업자를 통해 부족한 공공 인프라를 보완하고 방문객의 발길을 유도해 상권 활성화를 꾀한 것이다. 다만 술에 취했거나 행색이 의심스러운 경우 업주가 출입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뒀다. 하노이타임스는 “이 계획이 계속되려면 모든 주민이 공공 위생 유지에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려는 격려로 답해야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