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키우고 싶어요. 엄마가 안 된다고 했어요. 인형으로 만들어주세요.” “고마저씨♡ 잘 만들어주세요. 내 친구 인어공주!” “보들한 토끼가 너무 좋아요. 엄마만큼 좋아요~”
편지에 그림을 그려 보내면, 인형이 돼 돌아오는 특별한 우체국이 있다. 이름은 ‘고마우체국’. 이곳에선 아이들이 보낸 그림이 세상에 하나뿐인 인형으로 변신한다. 우체국 주인인 북극곰 고마저씨는 크리스마스 무렵 아이들에게 인형을 보낸다. 산타 할아버지 썰매에서 떨어진 선물을 고마저씨가 주웠다는 이야기와 함께.
동화 속 이야기 같지만, 고마우체국은 실제 13년째 운영 중이다. 아이들이 ‘고마저씨’라 부르는 이는 인형 제작 업체 고마컴퍼니의 박성일(59) 대표. 크리스마스까지 한참 남은 이달 중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마컴퍼니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계절은 이제 막 봄을 향했지만, 박 대표 마음은 이미 크리스마스에 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알록달록한 그림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공주와 강아지, 공룡과 자동차,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형상…. “정말 잘 그리죠? 피카소가 따로 없어요. 매번 깜짝 놀란다니까요.”
작년 900여 통의 그림 편지가 고마우체국에 도착했다. 저마다의 바람이 삐뚤빼뚤한 그림과 글씨로 담겼다. 잘 때 나를 지켜주는 화살 쏘는 공주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일하러 나가는 엄마를 위해 자신을 닮은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이가 7개나 빠졌는데 이빨 요정이 오지 않았다며 요정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아이…. 박 대표는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고 했다.
그가 인형을 만든 지는 올해로 34년째.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던 인형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사명이 됐다. “절망에 빠져 있던 저를 일으켜준 게 ‘나만의 인형’이죠.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위한 인형을 만들고 싶어요.”
◇고마우체국에 온 8914통의 그림 편지
-‘나만의 인형’은 어떻게 만드나요.
“2월부터 아이들이 보낸 그림 편지를 받기 시작해 여름쯤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요. 그리고 성탄절 즈음에 아이들에게 보내죠. 2014년에 첫발을 뗐으니 올해가 12주년이네요. 작년까지 총 8914통의 편지를 받았고, ‘나만의 인형’ 1384개를 만들어 선물했습니다. 올해는 한 달여 만에 벌써 200통 가까이 왔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형,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순수하게 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미국의 ‘버지스(Budsies)’라는 회사가 맞춤 인형을 만드는 걸 보고 알게 됐어요. 다만 그쪽은 수익 사업이고, 저는 그걸 아이들과 소통하는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버지스에서 맞춤 인형을 제작하려면 최소 20여만원이 든다. 반면 고마우체국은 1만8000원의 신청비(그림 편지 키트 비용)를 받는다. 고마우체국은 접수된 그림 편지 중 일부를 선정해 인형으로 만든다.
-어떤 그림이 선정되나요?
“기성 캐릭터를 그대로 베낀 그림이나 너무 추상적인 표현, 부모님의 손길이 많이 느껴지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그다음에 ‘이건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편지를 중심으로 고릅니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있는 게 좋고요. 아이들은 자기랑 가장 친한 친구를 그리기도 하고, 할머니 댁 강아지를 그리기도 해요. 낙서처럼 선만 끄적여 보내는 아이들도 있지요. 상상력과 창의력이 엄청나서, 제가 항상 놀란답니다. 작년에 아이들이 그동안 어떤 그림을 보냈나 헤아려봤더니, 공룡, 유니콘, 인어공주가 많더군요.”
-선정 안 된 아이들은 실망이 크겠습니다.
“모든 아이의 바람을 다 들어줄 수 없어서 늘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다음 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재도전 키트를 보내거나, 다른 인형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그림 편지를 그리는 시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상상하고,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고, 마음을 담아 그리는 그 과정이 결국 아이에게 남는 추억이니까요.”
-수익이 나나요?
“항상 적자죠. 모든 게 수작업이다 보니, 비용이 꽤 들어요. 하지만 매출 올리는 건 다른 인형 사업으로 충분히 하고 있어요. ‘나만의 인형’은 3년 전까지만 해도 돈을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편지가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정말 원하는 아이들만 참여하도록 소정의 비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내년부터는 다시 무료로 돌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아이들 그림을 인형으로 구현하는 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그림 구석구석에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어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고양이를 그려 보냈는데, 그걸 놓치고 눈을 그냥 검은색으로 두 개 만들어 버리면 안 되는 거죠.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림을 여러 번 들여다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디자인이나 원단을 정하는 초기 과정이 오래 걸려요. 고마저씨와 펭귄 오로라(봉제인형팀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하죠. 패턴 메이킹(옷본 만들기), 자수 펀칭(자수 입히기), 봉제 스타핑(솜 충전) 등 실제 제작 공정은 이틀 정도 걸립니다. 저와 오로라들이 전부 투입돼 작업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형은요?
“작년에 휴대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분의 아이가 편지를 보내왔어요. 고양이 그림과 함께 ‘우리 아빠는 휴대폰을 만드셔서 항상 손에 휴대폰을 들고 계셨어요’라고 적었더군요. 큼직한 휴대폰을 들고 있는 파란색 옷차림의 흰 고양이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빠 고양이’라고 적었고요. 또 한 아이는 ‘하늘 사진가’가 꿈인 친구였는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날개 달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내왔고, 그 그림 그대로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우리 아이가 너무 힘들어요. 내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란 연락을 받은 적도 있어요. 밤새 긴 사탕 인형을 만들어서 간신히 전달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청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어요?”
◇암 투병 아내 위해 시작한 ‘나만의 인형’
박 대표에게 ‘나만의 인형’은 생업이 사명으로 바뀐 분기점이었다. “의상 디자이너였던 아내와 1993년에 창업했어요. 사실 제게 인형 만드는 일은 그저 ‘빵값’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둘이 밤낮없이, 휴일도 반납한 채 치열하게 일해서 사업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 교육 시키고, 남들처럼 살았어요. 그러다 우울한 일이 제 인생에 찾아들었습니다.”
-어떤 일인가요.
“2012년 아내의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잘 이겨내는가 했는데, 2014년 재발해 국립암센터에 입원했어요. 아내는 인형 만드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일을 할 수 없으니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더군요. 제가 ‘암 병동에 있는 아이들 줄 인형이라도 만들까’ 제안했어요. 아내를 위해서요.”
-아내를 위해서요?
“솔직히 그때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어요. 아내가 다시 인형을 만드니까 웃음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때 고마우체국 얘기를 처음 했어요. ‘만약에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우리 돈 벌기 위한 인형 말고 이런 인형 만들자’ 같은 얘기도 했고요. 인형을 받은 소아암 아이들 어머니들이 제게 감사하다고 할 때마다, 사실 너무 송구했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위해 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내 장금신 디자이너는 2016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다. 회사 일도 내려놓은 채 산을 오르내리며 시간을 보냈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너무 슬펐죠.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신에게도 화가 났고…. 다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러다 정신을 차린 게 2017년 6월이에요. 아이티에 사는 굴리에란 소녀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어요. 제가 예전부터 후원해온 아이더라고요. 한 연예인 부부가 해외 아동 결연 후원을 한다기에 아내와 ‘우리도 해볼까?’ 해서 자동이체 걸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거든요. 편지에는 ‘이번 달에도 보내주신 걸로 공부하고 있다, 감사하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굴리에가 편지에 그려 보낸 그림 그대로 인형을 만들어 보내줬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죠.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인형을 만들었는지를요.”
-그래서 ‘나만의 인형’을 이어가신 거군요.
“지금은 아이들에게 인형 만들어주는 게 너무 행복해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입니다. 결연 아동 후원도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고요.” 박 대표는 현재 72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고, 암 병동 아이들에게도 매년 ‘나만의 인형’을 선물한다.
-아내가 지금의 고마우체국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회사 이름 왜 바꿨느냐고 타박하지 않을까요? 하하. (원래 고마컴퍼니의 이름은 장금신아트워크였다.) 저한테 참 잘했다고 해줄 것 같아요.”
◇‘수호랑’과 ‘반다비’의 아버지
박성일 대표는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를 비롯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마스코트(비추온·바라메·추므로)와 2017 FIFA 20세 이하 월드컵 마스코트(차오르미) 인형을 박 대표가 만들었다. ‘뽀로로’와 ‘캐치! 티니핑’, ‘로보카폴리’ 등 인기 캐릭터는 물론, 경찰청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 등 여러 관공서의 탈 인형도 그의 손을 거쳤다. 지금껏 만든 인형이 3만 종이 넘는다. 18명의 정규직원이 근무하는 고마컴퍼니는 봉제 인형부터 탈 인형, 대형 패브릭 조형물까지 제작 가능한 국내에 몇 안 되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인데, 어떻게 ‘수호랑’과 ‘반다비’를 만들 수 있었나요.
“당시 입찰에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큰 회사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IOC 조직위원회 샘플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죠. 저희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처럼 참가한다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큰 회사들은 의사 결정이 늦을 수 있지만, 저희는 대표가 함께 작업에 들어가면서 빠르게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었던 게 강점이었습니다. 제가 평창 올림픽 준비 초창기부터 마스코트 자문을 맡은 것도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업계에서는 거물로 통하신다고요.
“거물까지는 아니고. 34년 했으니까 웬만한 분들은 다 알죠. ‘박성일’ 하면, ‘아, 그 뾰족한 사람?’ 하는 것 같아요.”
-뾰족한 사람이요?
“이 업을 하면서 평생 을(乙)로 살았어요. 무리한 납기나 단가를 요구해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일을 맡곤 했죠. 그런데 ‘나만의 인형’을 시작한 뒤로는 할 말은 해요. ‘단가 그렇게 낮춰서 쥐가 득실득실한 공장에 맡겨도 되겠느냐’ ‘QC(품질관리) 생략하지 말아라’….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형을 만들려다 보니 때론 까칠해 보일 수도 있었겠죠.”
-유튜브 활동도 활발하시더군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회사가 흔들렸어요.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캐릭터·콘텐츠 관련 전시회를 다녀보니까, 한두 번 나간다고 계약이 이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 번 나갈 때마다 수천만원씩 들어가는데, 감당할 수도 없고요. 고민하다가 유튜브를 시작했고, 탈 인형 제작 과정 등을 공개하고 있어요. 유튜브 덕을 많이 봤습니다. 미국의 500만 유튜버 ‘버벌레이즈’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었고, 지금은 ‘라부부’로 유명한 중국 팝마트의 의뢰로 크라잉베이비란 인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속 박 대표는 ‘고마저씨’ 그 자체다. 아이들이 본다는 생각에,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도록 웃는다. 때로는 춤을 추며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한다. 뮤지컬 ‘넘버블럭스’의 탈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조회 수 39만회를 기록했다. ‘나만의 인형’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여기에 계신 것 같아요. 모든 아이들이 고마저씨 덕분에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제페토 할아버지의 환생 같아요. 좋은 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지금껏 만든 인형 중 가장 의미 있는 인형은요?
“수호랑과 반다비도 있지만, ‘나만의 인형’을 고르고 싶습니다. 절망에 빠졌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줬고,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기쁨을 알게 해줬으니까요.”
◇인형은 ‘동심을 가둬두는 오브제’
계원예고와 서울예대를 나온 박 대표의 원래 꿈은 배우였다. 대학 졸업 뒤 극단에 소속돼 연극 무대에 섰고, 마임(무언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이후 롯데월드에서 캐릭터 쇼 연기자로 무대에 서다가 무대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때 대학 선배이자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아내의 권유로 1993년 대전 엑스포 때 인형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인형과 무관한 삶을 사셨겠네요.
“그렇죠. 철없던 시절엔 아내에게 ‘배우가 하고 싶었는데, 이게 웬 고생이냐’며 투덜대기도 했어요. 반면 아내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넘치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어요. 아내가 떠나고 ‘나만의 인형’의 바통을 이어받고 나서야 비로소 인형의 가치를 알게 됐죠.”
-인형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형은 ‘동심을 가둬두는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기억이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존재라고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인형이 참 귀했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책상 위에 올려두셨던 못난이 인형 세 마리는 아직도 생각나요. 인형을 좋아했던 어릴 적 제 모습도 기억나고요.”
그는 지난해 말 ‘어른이를 위한 나만의 인형’ 이벤트를 진행하며 확신을 얻었다. “모든 사람은 동심을 품고 평생을 산다”는 사실이다. 인형을 받은 아이의 엄마가 “어른을 위한 ‘나만의 인형’도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시작된 이 행사에는 300여 명이 참여했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 그림 편지를 보내면, 생일에 맞춰 인형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동심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 즉 재생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하니까요.”
-요즘 인형은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흔해져서 그냥 공산품처럼 여겨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은 손으로 만지고, 안고, 함께할 수 있는 존재잖아요.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요. 디지털 콘텐츠가 많아진 시대지만, 인형의 역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만의 인형’을 만드는 거고요.”
-인형을 만들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아이들이 ‘고마저씨 고맙습니다’ 할 때 기쁘더라고요. 인형을 껴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마냥 좋아요. 얼마 전엔 7년 전에 ‘나만의 인형’을 받은 남매가 인스타그램으로 연락해 왔어요. 인형을 들고 찍은 7년 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보내줬어요. 뿌듯했습니다. 이런 행복감을 계속 느끼려고 고마저씨 일을 멈출 수가 없나 봅니다.”
-지금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어딘가에 ‘고마우체국’을 실제로 짓고 싶어요. 내가 어릴 때 그렸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으로요.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를 모두 간직하고 있거든요. 그 편지들과 제가 만들어온 인형들을 함께 전시해놓고 싶어요. 그곳에서 고마저씨와 오로라들은 365일 아이들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고, 인형을 만들고 있겠죠?”
‘고마저씨’로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 있는 곳, 고마우체국으로 그림 편지 보내줘! 고마저씨가 멋진 인형으로 보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