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3월, 나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다달이 내야 하는 원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잔병을 달고 사는 허약 체질이기는 했어도 단체 생활을 못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낯선 환경의 두려움 탓이었으리라.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유치원에 입학한 날부터 쉴 새 없이 울었다. 물도 밥도 먹지 않았고 혼내며 달래며 어르며 어렵게 먹여도 이내 게워내기 일쑤였다고 했다.
한 달 실랑이 끝에 결국 부모님은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섯 살의 시간을 집에서 텅 빈 동네에서 혼자 보냈다고 했다. 여섯 살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다시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난해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실패했다. 그러자 대안을 찾았다. 학원을 보내는 것이었다. 호연지기를 길러준다는 태권도 학원과 자신감을 함양시켜준다는 웅변 학원을 연이어 거부한 나는 결국 집 앞 미술학원에 가게 됐다. 하지만 2시간 남짓 머무는 미술학원에 가는 날 나는 아침부터 울었고 점심밥은 걸렀으며 학원에 다녀와서도 잠들 때까지 울었다. 집에서 미술학원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두 살 터울의 누나가 도맡았는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누나는 학원까지 5분 남짓 걸리는 길을 30분 넘게 오열하는 나를 질질 끌고 가야 했다.
여덟 살의 3월에는 학교에 입학했다. 이제부터는 기억이 생생하다. 그쯤 나는 속으로 우는 법을 터득했다. 학교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다. 가뜩이나 힘없는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고 고개를 들어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대신 땅을 자주 내려다봤다. 내가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한 것은 5학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주말이 심심할 수 있다는 것, 친구들과 선생님이 보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 어서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는 것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됐다. 하루하루 시간을 아끼며 또 아까워하며 보내다 보니 졸업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3월, 나는 다시 다섯 살 아이처럼 아침에 집을 나서는 일을 두려워하게 됐다. 모래 위에 겨우 쌓은 작은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가고 군에 입대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의 성향은 줄곧 이어졌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마음이 낮게 내려앉고 눈이 질끈 감겼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낯섦은 반드시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시간만이 생경함과 거북함을 지울 수 있다.
요즘은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새로 단골이 된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정문이 한눈에 보인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보기 힘들다는 것. 그 대신 부모 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점이 있다면 학교와 유치원 앞은 생동감으로 분주하다는 것. 그리고 오래전의 나처럼 정문 앞에서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풍경 위로 3월의 햇살이 공평하게 내린다.
3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되뇌는 시가 한 편 있다. 도종환 시인의 ‘처음 가는 길’이다. 시작을 두려워했던 과거의 어린 나를 위해. 여전히 변화를 못 마땅히 여길 미래의 나를 위해. 그리고 시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