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는 2023년 유로본드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개발도상국들 대열에 합류했다. 부패인식지수(CPI)가 작년 100점 만점에 38점으로 세계 96위에 머물렀다. 이런 국가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구매해서 기꺼이 소비하려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까?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오늘도 에티오피아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즐기고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커피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일까? 그 비결은 에티오피아가 구축한 철저하고 객관적인 커피 등급 시스템에 있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등급 심사는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일단 수분 함량 등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항목은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고 기계로 판정해 부정이나 실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인간의 판단이 불가피한 커피의 향과 맛 테스트의 경우 생산자를 알 수 없도록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한다. 공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미 등급 판정이 끝난 커피 원두를 다시 새로운 원두인 것처럼 검사에 투입해 검사자가 일관되게 판정하는지 재확인한다.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국민의 25%가 커피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그런 에티오피아가 커피 등급 시스템만큼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농장에서 커피 열매를 말리는 모습. 에티오피아는 2023년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패 문제도 심각하다. 하지만 커피 등급 시스템만큼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품질 관리 덕분에 에티오피아 커피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이유는 명백하다.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검사자는 ‘낮은 등급의 커피에 좋은 등급을 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등급을 속여서 커피를 팔다가 발각되면 에티오피아 커피 전체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는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생산자는 자신이 만든 상품이 고품질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이렇게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는 것을 게임이론에서 ‘시그널링(signaling)’이라고 한다. 가장 잘 알려진 시그널링으로 광고를 생각할 수 있다. 기업은 막대한 돈을 들여 자사 상품을 광고한다. 2008년 현대차가 미국에 제네시스를 처음 소개하면서 사용한 광고 비용은 8000만달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제네시스라는 자동차를 만들어 소개하기 위해서 사용한 개발 비용은 5억달러로 발표돼 있다.

미국 내 광고비만 8000만달러인 만큼 전 세계적으로 투입된 제네시스 광고비는 1억달러를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네시스 차 연구·개발비의 20%가 훨씬 넘는 돈을 광고비로 사용한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기술 개발에 더 투자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를 통해 신형 자동차의 우수한 품질을 알리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광고를 ‘캐시 버닝 시그널(Cash Burning signa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광고비로 쓰고 있는데 만일 우리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다면 우리는 막대한 광고비를 낭비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시그널링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엄청난 비용의 광고를 한 제품을 소비자들이 사용해 봤더니 품질이 기대 이하라면 그 평가는 빠르게 퍼져 나가고 시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엄청난 광고비를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품질에 자신이 없는 기업이라면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높은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주체가 기업들만은 아니다. 능력이 우수한 청년들이 기업 입사 면접에서 자신의 역량을 아무리 강조해도 기업의 인사 책임자들이 이 말을 그대로 믿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능력이 부족한 지원자라고 할지라도 면접에서는 자신이 능력을 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는 ‘에듀케이션 게임(education game)’이라는 그의 연구에서 기업이 광고를 통해서 자신의 제품을 시그널링하듯 청년들은 ‘대학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시그널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의 주요 기능은 학생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기능은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해 기업에 알려주는 시그널링 역할이라는 점이다.

소비자가 커피나 자동차를 구매할 때에도 품질을 꼼꼼히 따지지만,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느끼는 부담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 번 20대 신입사원을 뽑으면 30년 이상 상당한 연봉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업이 기대와 맞지 않는 성향과 역량의 신입사원을 채용한다면, 그 손실은 개인이 커피나 자동차를 잘못 구입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다. 따라서 기업은 청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쉽게 고용을 결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이 이런 시그널링 기능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을 안배해야 하고, 학생부 전형에서는 교외 활동 기재를 제한해 세계 수학경시대회 입상 같은 성과조차 반영되지 않는다. 여기에 수능 시험의 난도는 너무 높지 않아야 하는 등 변별력을 줄이는 정책이 수두룩하다.

물론 우리의 입시와 대학 교육이 과연 우수한 인재를 제대로 구분해 잘 시그널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등급 판별에서도 지나치게 객관적 지표를 중시한 나머지 특별한 취향에 맞춘 색다른 커피 원두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듯이, 너무 판에 박힌 대학 입시와 교육은 특수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한계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일부 학생들의 특별함을 고려하느라 대다수 학생들의 능력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별하고 시그널링하는 기능이 저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심사의 객관성이 무너지면 아무도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를 사지 않게 되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들 역시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시그널링할 수 있는 대학 입시와 교육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에티오피아 커피 등급 심사처럼 정치적 고려나 개인적 사정을 배제하고 객관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대학 입시와 교육을 개선해 청년 실업 문제를 줄여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