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1. 2004년 3월 9일,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발의했다. 집권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본회의장에서 철야 농성을 벌인다. 3월 11일 오후 박관용 국회의장이 표결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박 의장의 단상 접근을 저지했다. 3월 12일 노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박 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해 의장석을 점거 중이던 여당 의원들을 끌어낸 뒤 표결에 들어간다. 여당 의원들은 책상 위로 올라가 “투표 중단하라” “헌정 유린이다”를 외쳤지만, 투·개표를 막을 수는 없었다.

투표에 참여한 195명 중 찬성한 이는 193명, 의결 정족수였던 181석을 넘어선, 헌정 사상 첫 번째 탄핵안 가결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 반면, 여당 의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 과정은 TV로 생중계됐고, 여기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후폭풍은 엄청났다. 잘못된 탄핵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한 달 후 예정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200석 이상을 얻을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였다.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은 새 대표로 박근혜 의원을 선출했지만, 열린우리당이 사상 최초로 원내 1당을 차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 2015년 10월 정보위 국감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IS에 내국인이 가담한 건이 이슈가 됐다. 앞서 그해 1월 18세이던 김모군이 터키에서 실종된 후 IS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고, 내국인 2명이 추가로 가담을 시도했다 적발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1월에는 프랑스 파리 시내 6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벌어져 130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들의 배후도 IS였다.

이에 따라 테러조직에 가담했거나 테러를 시도한 사람을 무겁게 처벌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을 발의하지만,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민간인 사찰 등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고, 국정원의 힘이 커진다는 이유로 이 법안에 반대했다. 여당 소속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민주당 대변인은 이렇게 말한다. “본회의 날치기를 강행할 경우 온몸으로 막을 것이다.”

2016년 2월 23일, 민주당은 의석수가 적은 당이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하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인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 첫 주자인 김광진 의원은 5시간 33분, 두 번째 주자인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으로 3선개헌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했던 박한상 의원의 종전기록(10시간 15분)을 깬다.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은 필리버스터는 9일째인 3월 2일 저녁, 38번째 주자였던 이종걸 원내대표를 마지막으로 종결된다.

결국 테러방지법은 필리버스터 종결 후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필리버스터의 성과는 엄청났다. 2015년 11월만 해도 테러방지법은 압도적 지지(찬성 64.8%, 반대 22.6%)를 받았지만, 필리버스터가 끝날 때쯤에는 입법 반대 또는 수정 통과가 48.9%로 원안 통과(42%)보다 높아졌으니 말이다. 이 여론은 한 달여 뒤 치러진 총선에도 영향을 줘,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1석 많은 123석으로 제1당이 된다.

“국민의힘(이하 국힘)은 왜 정부·여당과 싸우지 않느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가 대한민국 시스템을 빠르게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한 지 9개월이 넘도록 특검을 가동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상 ‘4심제’ 도입과 법왜곡죄 등은 헌법에 보장된 3권분립의 침해 소지가 있다. 경제에 큰 악영향을 가져올 노란봉투법도 통과시켰다. 방미통위법을 만들어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쫓아낸 것도 희대의 코미디. 하지만 국힘은 이 중 어느 하나도 막지 못했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원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한다 해도 열심히 싸우는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힘은 내내 무기력했다. 무능한 야당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것은 당연한 귀결. 심지어 이참에 국힘이 해체되고 제대로 된 야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국힘은 정말, 무능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한 것은 일명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불리는 국회선진화법. 이 법안은 2008년 시작된 18대 국회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놓고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하고, 한 민노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는 등 국회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잇따라 연출됨에 따라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2년 만들어졌다. 소수정당의 몸싸움을 금지하는 대신, 원내 1당이라고 단독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내용. 그 취지는 좋았지만, 이 법안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한 정당이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획득해 버리면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한 정당이 그렇게 압도적인 의석을 얻겠느냐는 생각이었을 테지만,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고, 2024년에는 다른 야당과 합쳐 192석을 확보했다. 그 후 민주당은 내내 폭주에 폭주를 거듭했다. 물리적 저지는 불가능하고, 필리버스터마저 의원 180명이 반대하면 바로 중단되는 상황.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기사가 수도 없이 재생됐다. ‘국회는 ‘법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국힘 의원들은 법안 처리 강행에 항의하며 표결 직전 퇴장해 참여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거리로 나서는 것뿐이지만, 극우 프레임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정말 답답하다. 국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