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같이 그만두자고 했다. “이번 여름에는 그만둔다. 진짜다.” 그해 여름이 됐을 때 사표를 낸 것은 나 혼자였다. 십수 년 전이었고 그때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그걸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지 서로의 몸을 하나로 묶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요리를 한다며 외국인 노동자 신세로 영국과 호주를 떠돌았다. 선배의 회사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상사와 대표가 바뀔 때마다 감사와 징계가 줄넘기를 하듯이 반복됐다. 줄에 걸렸다가 다시 뛰었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을 때 선배는 임원이 됐다. 새로운 명함을 받으러 약속을 잡았다. 사케를 알고 싶다던 선배를 데리고 간 곳은 ‘사케 마스터 태오’라는 청담동의 작은 식당이었다.

서울 강남구 ‘사케마스터태오’의 코스 요리에 포함된 솥밥.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을 때 보인 것은 식당 앞을 쓸고 있는 주인장이었다. 그가 식당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렸다. 작은 가게 안에는 바 테이블 다섯 개밖에 없었다. “혼자 하니까 편해요”라고 말하며 웃는 주인장 얼굴이 가벼워 보였다. 강박적으로 말끔하게 정리된 기물과 그만큼 예리하게 빗어 넘긴 주인장의 머리카락이 하나처럼 보였다. 술잔을 고르라며 내어놓은 상자 안에는 작은 잔 열한 개가 제각각의 빛깔로 누워 있었다. 거친 도기 잔, 안쪽에 금박을 입힌 목기 잔, 유리를 깎아 별 모양을 새긴 잔. 잔 하나를 고르는 일이 그날 밤의 첫 번째 요리 같았다.

선배는 가장 두툼한 잔을 고르고 손안에 두었다. 잔을 가득 채워도 넘치지 않을 것같이 단단해 보였다. 송이버섯 수프가 먼저 나왔다. 호박빛 국물 속에 송이 조각이 가라앉아 있었고, 들어 올린 숟가락 위에서 버섯 향이 김처럼 피어올랐다. 다음은 연어를 김과 해초로 감싸 구운 이소베야키였다. 잘게 썬 찻잎이 이끼처럼 생선 위를 덮고 있었고, 그 위에 연어알 몇 개가 이슬방울처럼 맺혀 있었다. 다음에 모둠회가 유리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전갱이의 은빛 등과 참치의 붉은 살, 새우의 투명한 몸이 나란히 놓였고 그 사이에 생와사비 한 덩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송이버섯으로 말아 구운 제주 은갈치가 그 뒤를 이었다. 칼처럼 납작한 생선이 숲의 옷을 입은 모양이었고, 위에 올린 바삭한 튀김은 벌집을 닮아서 손대면 부서질 것 같았다. 소라는 껍데기째 불 위에 올라왔다. 일본에서 츠보야키라 부르는 방식, 소라를 제 집에 둔 채로 굽는 것이다. 소금 위에서 작은 불꽃이 일렁이는 사이로 소라의 내장이 제 즙에 졸아들고 있었다. 대게 튀김은 게딱지를 그릇 삼아 나왔는데, 실처럼 가느다란 튀김옷이 게살 위에 새 둥지를 틀듯 쌓여 있었고, 곁에는 식빵 사이에 게살을 눌러 구운 작은 산도가 벽돌처럼 서 있었다.

술과 음식이 짝이 되어 하나로 나왔다. 애초에 여러 사케를 맛보기 위한 공간이기에 쌓이는 술의 양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면 딱’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선배는 잔을 털어 넣다가도 출렁이는 잔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다. 일본 시즈오카 특산품이라는 ‘사쿠라에비’를 넣은 솥밥이 나왔다. 작지만 가득 찬 솥밥을 보고 지금까지의 요리가 음표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악보가 된 솥밥 위에 사쿠라에비가 한 움큼 올라가 있었다. 벚꽃새우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빛깔은 동백꽃에 가까운 처연한 붉은색이었다. 곁에는 은행과 우엉, 당근, 송이버섯, 표고버섯이 빈틈없이 솥을 채우고 있었다. 밥을 비벼 공기에 담자 쌀알에서 잘 닦은 유리창처럼 윤이 났다. 입에 넣은 밥알은 한데 뭉치지 않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쏟아져 내렸다. 졸인 설탕처럼 단맛이 팽팽하게 차오른 새우는 눈을 감아도, 숨을 들이쉬어도, 몸속에 들어찬 달달한 기운이 빠지지 않았다. 흙의 맛을 가진 당근과 우엉이 뼈대를 잡고, 민물의 단맛을 쌀알이 책임졌는데, 여기에서 바다 새우가 곁들여져 하루와 한 달이 아닌 사계절 전체가 몸 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목구멍으로 넘기기 바빴던 밥을 여러 번 씹었다. 선배는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더니 오래 홀로 웃고 있었다.

사람은 때로 물건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게를 지키던 주인장은 오래된 가구처럼 매일매일 손때가 쌓여 윤이 나고 깊이가 생긴 것 같았다. 그 앞에 앉은 선배는 솥과 같아서 한번 차오른 열기를 쉽게 내어주지 않고 차가운 밤과 겨울을 버티고 버텼다. 밖으로 나왔을 때 늦은 밤의 청담동은 고양이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문 너머로 숨소리처럼 주인장이 바 테이블을 닦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케마스터태오: 단일코스 12만원, 사케 별도. 010-4030-6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