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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지난 1월 새로운 식생활 지침을 내놓았다. 5년마다 발표되는 미 영양 정책의 근간으로, 전국 학교 급식, 연방 영양 복지 제도, 노인·장애인 급식까지 미국인 식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발표된 지침에서 내용보다 먼저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수십 년간 익숙했던 ‘영양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어버렸다. 넓은 밑바닥이 아래에 있고 위로 뾰족해지는 종전의 안정적 모형 대신, 역삼각형 피라미드는 그 자체로 논쟁을 부른다. 뒤집힌 피라미드는 영양학보다 정치를 먼저 말한다. “우리가 판을 다 바꿨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한 번에 각인시키려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인을 위한 식생활 지침’. 단백질, 유제품, 건강한 지방(맨 위 왼쪽)과 채소·과일(오른쪽)을 많이 먹으라고 권고했다. 통곡물은 맨 밑에 있다. /미 농무부

◇과학을 뒤집은 정치 커뮤니케이션

새 지침의 핵심 구호는 단순하다. “진짜 음식을 먹어라(eat real food).” 지침은 단백질을 최우선에 두며 권장량을 기존의 두 배까지 늘렸다. 성인은 체중 1㎏당 단백질 1.2~1.6g 섭취를 목표로 제시하고, 유제품은 전지(whole-fat·全脂) 제품을 권장한다. 요리용 지방으로 버터나 소기름(우지)을 대안으로 넣은 대목도 파격적이다.

이 지침에는 모순이 있다. 본문에는 여전히 “포화지방을 총 열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라”는 문구가 살아있지만, 정작 그림은 스테이크와 치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스테이크와 전지 유제품을 권장대로 먹으면서 포화지방 섭취를 10% 이내로 묶어두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도한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심혈관 질환 위험을 키운다는 과학적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깨알 같은 문구보다 강렬한 이미지에 이끌려 숟가락을 움직인다. 이미 미국에서는 감자튀김을 우지로만 튀기겠다는 패스트푸드 체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최근 발표된 국제적 과학 권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지난해 국제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발표된 EAT-랜싯 위원회의 보고서는 인류와 지구의 건강을 위해 붉은 육류 섭취량을 하루 평균 15g으로 제한할 것을 강조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미 지역의 붉은 육류 섭취량은 이미 권장량의 700%에 달하는 심각한 과잉 상태다. 과학계는 붉은 고기의 과도한 섭취가 제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대장암 및 전체 사망률 증가와 연관된다고 경고하지만, 미 정부의 새 지침은 오히려 고기 섭취의 길을 더 넓게 열어준 셈이다.

저지방보다 전지 유제품을 권장하는 지침도 논란거리다. 전지 유제품이 저지방보다 건강에 더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연구 결과가 상당히 엇갈린다. 어린이가 10세가 될 때까지 첨가당 섭취를 금지하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식물성 종자유가 미국인을 독살하고 있다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장관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식물성 기름을 적당히 먹으면 건강 개선과 관련된다는 연구 결과가 훨씬 많다.

◇영양 피라미드가 놓친 것들

사실 이번 지침의 근본적인 오류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영양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착각에 있다. 정치가 만든 메시지는 단순함을 무기로 대중을 과감하게 만들지만, 영양은 개인의 생애주기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남성은 평균적으로 하루 100g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한다. 지금 단백질 셰이크를 가장 열심히 흔드는 한국의 2030 남성 중에도 이 정도 양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기준으로는 권장량을 넘기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가 제시한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 상으로는 성인의 체중 1㎏ 당 단백질 섭취 권장량이 0.91g이기 때문이다.

정작 단백질이 시급한 건 프로틴 음료를 사 마시는 청년이 아니라, 동화 저항(Anabolic Resistance)으로 인해 근육 생성이 둔해진 60세 이상 노년층이다. 소화가 안 된다며 고기를 줄이는 노인들에게는 더 많은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고, 이미 충분히 먹는 청년들에게는 절제가 필요하다.

천연과 가공으로 음식의 선악을 가르는 이분법적 태도 역시 위험하다. “진짜 음식을 먹어라”라는 구호는 그럴듯하지만, 빈칸으로 남겨둔 질문이 너무 많다. 무엇이 ‘진짜’인가. 버터와 스테이크는 천연이니 선이고, 두유나 두부는 가공이니 악인가. 통밀빵은 가공품이니 죄책감의 대상이고, 소기름은 자연이 주는 선물인가. 요거트도, 김치도, 된장도 인류가 안전하게 저장하고 소화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켜온 가공의 산물이다. ‘천연/가공’이라는 칼로 음식을 자르면, 결국 남는 건 과학이 아니라 편 가르기뿐이다.

◇영양보다 상징을 먼저 먹는 시대

정치라는 렌즈로 보면 새 지침의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미 영양학자 매리언 네슬은 “음식은 정치적이다”라고 단언했다. 국가가 무엇을 먹으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건강 지표를 넘어 국가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이 첫 장부터 “미국의 생산자”를 내세우며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라는 정치 구호와 연결된 점을 보면, 이는 영양 과학 이전에 “누가 이제 주류인가”를 선언하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영양학의 세부 사항보다 이전의 판정 체계를 공격하려는 정치적 장치로 ‘뒤집힌 피라미드’를 활용한 셈이다.

정치가 음식 위에 올라타는 순간, 우리는 영양보다 상징을 먼저 먹는다. 19세기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였던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그가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읽어내려 했다면, 현대 사회는 종종 반대로 누가 그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음식의 가치를 평가한다. 지난 2014년 영국 언론은 김정은의 급격한 체중 증가를 보도하며 “스위스 에멘탈 치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달았다. 이때 치즈는 사치와 비만의 주범이 된다. 반면 2011년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고단백 식단으로 체중을 관리한다는 소식에 치즈와 고기는 ‘우아한 절제’의 아이콘으로 포장됐다. 같은 음식이라도 권력의 흐름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 앉아 이 지침을 보고 내 식단을 급히 뒤집을 필요는 없다. 정치가 만든 메시지는 선명하고 단순하지만 우리 몸은 선거판이 아니다. 피라미드를 뒤집는 건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하지만, 한 사람의 건강한 식습관은 정권의 주기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완성된다. 숟가락을 들기 전,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를 결정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누가 우리 편인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