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래코드’가 운영하는 업사이클링 체험 프로그램. 영어 오타로 판매할 수 없게 된 양말을 세상에 하나뿐인 양말로 만들고 있다. /코오롱FnC

직장인 차성원(32)씨는 옷장에서 구멍 난 양말이나 해진 바지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오래전 사놓고 입지 않던 옷을 찾아 뒤지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한 ‘사시코(刺し子) 자수’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시코 자수란 여러 줄의 홈질로 무늬를 만드는 일본식 자수다. 옷감과 대조적인 색상의 실이나 패치 등을 사용해 오히려 눈에 띄게 고치는 방식으로,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가시적 수선)’의 대표적 기법이다. 차씨는 “사시코 자수로 디자인이나 패턴을 넣으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명품’을 가질 수 있다”며 “옷을 버리지 않아 환경을 파괴한다는 죄책감도 덜게 된다”고 말했다.

새 옷을 사는 대신 고쳐 입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수선한 옷이 럭셔리 브랜드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옷을 수선하는 일은 낡고 궁상맞기보다 개성을 드러내고 환경을 보호하는 힙한 행위로 인식되며, 수선의 흔적은 가치 소비의 ‘훈장’처럼 드러낸다. 서울 성수동이나 연남동 등을 중심으로 ‘수선 클럽’ ‘다닝(짜깁기) 워크숍’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클래스 101’ 등 취미 플랫폼에서도 사시코나 다닝 기법 강의가 꾸준히 인기다.

‘죽음의 바느질 클럽(죽바클)’은 태국 치앙마이식 손바느질 기법을 알려주는 워크숍으로 유명하다. 혼성 듀오 ‘선과 영’으로 활동하는 복태·한군 부부가 치앙마이로 여행 갔다가 배운 태국 고산지대 바느질을 가르친다. 단순하면서도 멋스러워 인기가 높다. 2018년 처음 개설한 워크숍에 모인 이들이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녹초가 되도록 ‘죽도록’ 바느질에 빠져 워크숍 이름이 지어졌다.

고쳐 입는 문화는 하나의 산업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의류 수선 및 개조(alteration)’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성장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의류 수선 시장 규모는 올해 48억300만달러(약 7조1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오는 2035년까지 연평균 6.5%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의류 수선 및 맞춤 서비스 시장은 작년 8500만달러(약 1260억원) 규모에서 2034년까지 연평균 약 4.9% 성장해 1억3000만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시장조사 기관 딥 마켓 인사이츠). 수선은 전문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명품 수선 플랫폼 ‘패피스(Pappis)’는 2024년 거래액이 전년 대비 330% 증가했고, 누적 가입자 수는 15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최초 업사이클링(버려지는 제품을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것) 패션 브랜드 ‘래코드’는 업사이클링을 고객이 직접 체험하는 원데이 클래스 ‘리테이블’을 운영한다. 수선·바느질 전문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죽바클과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는 ‘THINKING’이 ‘THINGKING’으로 잘못 찍힌 양말을 알록달록한 색실로 치앙마이식 바느질을 해 세상에 하나뿐인 양말로 재탄생시켰다. 수선 키트를 온라인 판매하고, QR 코드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수업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래코드는 입던 옷을 업사이클링해주는 ‘MOL(Memory of Love) 서비스’도 운영한다. 디자이너와의 상담을 통해 고객의 옷을 해체·재작업해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준다. 래코드를 운영하는 코오롱FnC 관계자는 “작고한 아버님 유품을 고객 본인의 옷으로 새롭게 만들거나, 입지 않던 옷들을 반려견 우비로 재탄생시키는 등 사례가 다채롭다”고 했다.

씨피컴퍼니가 일본 사시코 걸스와 협업해 한정판으로 출시한 재킷. /SNS

수선한 옷이 힙하게 여겨지면서 아예 신제품을 수선한 것처럼 출시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브랜드 ‘씨피컴퍼니(C.P. COMPANY)’는 일본 최고 사시코 장인 그룹으로 평가받는 ‘사시코 걸스(Sashiko Gals)’와 협업해 주머니 가장자리, 패널 이음선, 옷깃 등 부위에 촘촘히 바느질한 아웃도어 재킷을 지난해 출시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한정판으로 출시됐고, 27만5000~143만엔(약 260만~134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완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