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쯤에는 제발 회사 화장실에서 용변 보지 마세요”

한 직장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황당한 글이 올라왔다. 의외로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요즘 같은 때는 서로 이해해줘야 한다” “9시 반까지는 참자”…. 글쓴이도, 댓글 단 이들도 농담을 반쯤 섞어 던지는 말이었다. 여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화장실 칸에 들어가 스마트폰으로 주식 창을 여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2월 말 사상 처음으로 6000을 돌파했던 코스피 지수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급등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시황 속에서 투자자들의 심리 역시 주가 그래프를 따라 출렁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장하는 ‘총수 밈(meme)’. AI 생성 이미지다. 위 사진은 코스피 폭등장 때 온라인에서 확산한 밈, 아래 사진은 하락장에 퍼진 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현기증 장세’에 동기화된 개미들

코스피 시장에서는 지난 3·4·9일 매도 사이드카가, 5·10일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사이드카는 주가 급등락 때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중지하는 장치다. 이보다 강한 조치로 매매를 20분간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도 4·9일 발동됐다.

이처럼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 개미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해 초 주식 투자를 시작한 중소기업 재직자 김모(44)씨는 “요즘 기분이 코스피 지수에 동기화된 것 같다”며 “코스피가 6300을 찍을 때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는데, 하루에 12%가 빠지니 나라를 잃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최근 마이너스통장을 동원해 투자 중인 중견기업 회사원 홍모(48)씨도 비슷하다. 그는 “주가가 크게 빠지는 날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입맛도 떨어지더라”며 “신경을 끄려고 해도 동료들과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마다 주식 얘기가 나오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 모이는 곳 어디든 주식, 주식, 주식

올해 초 코스피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주식 투자에 뛰어들거나 투자금을 늘린 개인 투자자가 적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월 개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하루 평균 8191억원을 순매수했다. 1월(7001억원)보다 1000억원 넘게 증가한 규모다. ‘빚투(빚내서 투자)’도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일 기준 신용거래융자(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 잔고는 33조694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주식 이야기는 일상 대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두 명 이상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주식 얘기가 오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사원 김모(45)씨는 “팀원들 얼굴 표정만 봐도 그날 주식 창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있다”며 “주식이 떨어지면 ‘커피를 사 마실 자격이 없다’면서 탕비실 믹스커피를 타고, 오르면 ‘주식 양전(플러스)했으니 오늘은 회식하자’고 농담한다”고 말했다.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초보 개미들의 불안이 크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29)씨는 “3년 회사 생활로 모은 돈 6000만원을 설 연휴 직후 넣었는데 지금 마이너스 1200만원”이라며 “장이 좋을 때는 ‘이제까지 주식 안 한 내가 바보였구나’ 싶었는데, 요즘엔 ‘내일 반 토막 나면 어쩌지?’란 생각에 잠도 안 온다”고 했다. 회사원 송모(38)씨는 “하도 불안해 무속인을 찾아가 종목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국제 뉴스를 공부하고 장세를 예측하는 투자자도 많다. 온라인에는 결혼 자금을 전부 주식에 넣었다는 공무원, 하루에 150만원이 증발해 우울증이 온 것 같다는 주부 등의 사연이 넘쳐난다.

주식 관련 밈(meme)도 확산 중이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총수 밈’이다. 주가가 치솟는 날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자동차에 탄 AI 생성 이미지에 “설명할 시간 없으니 어서 타!”라는 자막이 붙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도배한다. 반대로 폭락장에는 “당장 내려!”란 자막이 붙은 이미지가 도는 식이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취재진들이 개장 시황을 취재하는 모습. 이날 코스피는 유가 급등으로 3% 하락 개장했다. /뉴스1

◇소외 공포가 광풍 부추겼다

과열된 투자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3월 들어 코스피 일평균 거래 대금은 40조원을 넘어 사상 최고 수준이다. 주식 손바뀜 빈도를 보여주는 회전율도 2%를 웃도는 등 크게 상승했다. 거래 대금과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단타 매매가 많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이 됐다” “나라 전체가 홀짝 도박판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 주식시장은 개인 투자자 비율이 유독 높다. 미국 월가의 베테랑 분석가인 짐 비앙코 비앙코리서치 대표는 지난 4일 X(옛 트위터)에 “뉴욕증권거래소의 개인 거래 비율은 약 20%인데, 한국은 최대 70%가 개인 투자자로 추정된다”며 “개인이 주도하는 시장은 완만하게 상승하거나 조정받지 않는다. 두 배로 폭등하거나 폭락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심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이 투자 열기를 키웠다고 본다. 연초 강세장을 보며 투자 대열에 끼지 못한 이들 사이에서는 ‘포모(FOMO·소외 공포)’가 빠르게 퍼졌다. 치솟은 집값과 자산 격차도 투자 열풍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과 정치권의 ‘코스피 8000’ 같은 낙관적 전망도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식은 손익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 동기화가 강하게 나타난다”며 “예측이 어렵고 보상이 불규칙할수록 투자자들이 더 쉽게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집단적 동조 심리가 강한 우리나라 특성상 투자 열풍이 더 빠르게 번지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은 포모가 전 국민적 현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