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스레 주지 스님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물 건너가서 살 관상이야.” 동생이 다니는 절에 따라간 어느 날, 최정자(72)씨가 난데없이 들은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맞선 자리가 들어왔다. 잠시 귀국한 파독 광부 출신 그 남자와 마주한 날, 예감이 꽂혔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뒤스부르크 함보른 탄광의 강당을 찾았던 날.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나가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광부·간호사 할 것 없이 모두가 눈물바다를 이루었더랬죠.”
그의 말을 듣자 마음이 움직였다. 독일로 돌아간 남자와 1년간 편지를 주고받았고, 처음엔 결혼 생각이 없던 33세 노처녀는 짐을 싼다. 1987년 독일 쾰른-본 공항에 발을 디딘 게 어언 39년째.
남편은 광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한 후 제약회사에 들어가 성실히 근무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식당을 차렸고 장사가 잘됐다. 12년 동안 풍족한 생활을 만끽했다. 그는 친구도 좋아하고 잡기에도 능한 활달한 사람이었다. 당구와 골프까지는 괜찮았는데 도박에 빠지면서 서서히 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재산이 많아진 탓이라고 여겨 ‘주님, 돈을 좀 덜 벌게 해주세요. 그이가 정신 차리게요’라는 기도까지 했다. 밤늦게까지 친구 집에서 회식이 있던 어느 날. 남편은 고국에서 누군가 가져왔다던 인삼주를 기분 좋게 먹고 그만 운전대를 잡았다. 큰 교통사고를 냈고 막대한 시련을 겪었다. 사이가 나빠지더니 결국엔 의처증까지. 결국 헤어지기로 하고 2012년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으면서 독립적으로 살기로 했다. 그러다 3년 전 정식으로 갈라섰다.
최씨는 네테탈이라는 독일 서부 네덜란드 국경 마을에 산다. 숲이 울창한 곳. 20여 년 전부터 취미로 말을 탔다. 남편 탓에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에게 승마의 매력을 물어봤다. “승마는 혼자 할 수 있잖아요. 웬만한 운동은 여럿이서 하는데 말이죠. 승마는 외로운 사람한테 좋아요. 승마를 하면 확실히 고독감이 사그라들어요.”
돈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2000년대 초반 독일 기준으로 1만유로(약 1700만원)에 처음 말을 샀어요. 물론 취미⸱레저용이죠. 그리고 전문 관리인이 마장(馬場)과 마방(馬房)에서 말을 관리해 주는 비용이 월 450유로(약 80만원) 정도 들고요. 한국은 말 구입 가격은 비슷한데 관리비가 많이 든다고 알고 있어요.” 말을 타고 싶은데 무서워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내가 건강해지고 위안받는 것보다 말과 교감하는 마음이 먼저예요. 제 경우 2년 동안은 그저 눈 맞추고 쓰다듬어주고 같이 걷고 그랬어요. ‘말 타는 기술은 서서히 익힌다. 말과 우선 친해지자’ 이런 여유가 필요합니다.”
말을 타는 이유는 뭘까. “자유와 해방감이죠. 말이 등을 내주고 스르르 움직이다 마침내 내달릴 때, 마치 최고급 세단을 탄 기분이 나요. 승마의 하이라이트는 외승(外乘)입니다. 맑은 공기로 가득 찬 숲길을 헤쳐 나가는 것. 말 컨디션이 좋을 땐 시속 70㎞까지 달려요. 승마야말로 제 인생의 큰 기쁨입니다.” 중요한 걸 빠뜨렸다고 했다. “장제사(裝蹄師)를 잘 만나야 해요. 말의 신발 격인 편자를 만드는 사람이죠. 충격 완화와 체중 지탱에 절대적입니다. ‘발굽이 없으면 말도 없다’라는 말도 있고요, 말의 수명도 좌우해요.”
최씨는 이번이 셋째 말이다. 첫 말의 이름은 피라트. 적갈색. 14년을 탔다. 온순하고 말귀를 잘 알아들었다. 둘째는 7년을 함께한 검정말 루나. 아주 빨랐다. 지금은 엘미라. 마장에서 그냥 힐끗 보고 떠나려 했는데 자동차까지 졸졸 따라왔다. 운명이다 싶어 데려왔고, 지금껏 같이 있다.
최씨를 알게 된 건 소셜미디어 덕분이다. 독일의 한적한 시골에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 SNS 속 글과 사진이 놀라웠다. 급기야 계간 ‘문장’의 수필 부문 신인 작가상 수상차 고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체류 일정을 하루 미루는 소동 끝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는 전북 부안 태생이다. 학창 시절 교대에 합격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은행원이 됐다. 손이 빠르고 영리했기에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중급 병원 사무장으로 스카우트돼 잘나가고 있었다. 운명처럼 파독 광부와 결혼을 하고, 남남이 되고, 이젠 승마에 푹 빠져 있다. 말과의 일상을 담담히 적은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고 당당히 수필가가 됐다. 어느덧 고희를 넘긴 나이. 굴곡 많은 삶이었지만 다행히도 말과의 교감과 소통이라는 고삐를 자연스레 쥐었다. 이젠 글 쓰는 삶이 보태져 문장의 들판을 유유히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