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극지 체험’이 하나의 흐름처럼 자리 잡았다. 20대 직장인부터 60대 은퇴자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오지와 고산을 찾는다. 방송인 기안84의 극지 마라톤 도전은 이러한 분위기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
남·북극 마라톤, 사하라 사막 울트라마라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트레킹은 더 이상 소수 탐험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산을 좋아하는 한국인 사이에 히말라야는 도전의 개념이 분명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에베레스트는 해발 8848m라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상징으로 인해 도전의 최종 단계처럼 인식돼 왔다. 직업과 재산, 사회적 지위가 의미를 잃는 환경에서 오직 호흡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장소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에베레스트 도전은 매력적이다. 고산은 인간을 시험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감각을 제공한다. 해 뜨는 순간 설산이 붉게 물드는 장면, 적막한 능선 위에서 들리는 자신의 숨소리, 극한 환경 속에서 유지되는 집중력. 이 모든 것이 남기는 강한 인상은 덤이다. 이러한 경험은 무엇보다 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
더구나 ‘상업 등반(Commercial Expedition)’이 보편화하면서 에베레스트는 이제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해졌다. 고정 로프 설치, 산소통 제공, 셰르파 지원, 식량 공급 등 일정 자체가 패키지화됐고, 수천만 원에서 1억원 이상 비용을 내면 일반인도 8000m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히말라야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한국인의 네팔 방문객 수는 작년 약 3만1000명(잠정)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 역대 최고치였던 2019년(2만9817명) 기록을 갈아치웠다. 에베레스트 지역을 방문한 한국인도 지난해 약 1만500명으로 2019년(8500명)을 넘어섰다.
히말라야 500구 시신 영혼히 잠들어
하지만 상업 등반의 확산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무모한 도전을 부추기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정상 직전 능선에서 수십 명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병목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산소통을 멘 채 영하 30도의 강풍 속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동안 체온과 산소는 급격히 떨어진다. 대기 시간 증가는 하산 지연으로 이어지고, 오후 기상 악화와 겹치면 사고 확률이 높아진다. 2023년 에베레스트 사망자가 급증한 배경으로 과밀 문제가 지적됐다.
에베레스트는 1920년대 첫 등반 시도 이후 현재까지 산악인들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경의 첫 등정 이후 작년까지 에베레스트 누적 등정 횟수는 1만 3737회(중복 포함)로 집계된다. 중복을 제외한 순수 정상 정복자는 7563명이다. 등정자 중 약 52%는 고용된 셰르파, 48%는 외국인 등반가로 알려졌다. 네팔 히말라야 전체를 기준으로 매년 1000~1500명이 8000m급 봉우리에 도전한다.
등반객이 많으면 희생자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역대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의 8000m급 14좌 전체 사망·실종자는 약 1100~1200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희생자도 약 100명 내외다. 에베레스트에서는 한 해 평균 5~10명 정도가 사망한다. 그러나 2023년에는 에베레스트에서만 18명이 숨져 역대 가장 치명적인 해로 기록됐다. 과밀과 이상 기후가 맞물린 결과였다.
현재까지 에베레스트에서의 누적 사망자는 339명으로 등정자 대비 사망률은 1% 내외다. 특히, 안나푸르나는 한때 등정 대비 사망률이 25~30%에 달해 가장 위험한 봉우리로 꼽혔다. K2 역시 13~15% 수준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역이다. 현재 에베레스트에는 약 200구 이상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말라야 전체로는 400~500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산의 시신은 방치된다. 8000m 이상 ‘데스 존’에서는 구조 활동 자체가 생명을 건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하 30~40도의 환경에서 얼어붙은 시신은 150㎏ 이상으로 굳는다. 산소 농도는 평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시신 한 구를 수습하려면 셰르파 8~10명이 로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비용은 최소 5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이 든다.
산악인들은 시신이 경로를 방해할 경우, 합의하에 빙하 틈(크레바스)으로 밀어 넣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심연으로 떨어뜨려 영원히 산에 잠들게 하는 행위다. 사지(死地)에서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베푸는 마지막이자 가장 비정한 예우로 알려졌다.
등반 사고 60% 이상은 하산 때 발생
히말라야 등반 사고의 60% 이상은 정상 이후 하산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눈사태가 가장 치명적이지만, 체력 고갈과 집중력 저하가 겹친 상태에서의 추락도 대표적인 사고 원인이다.
2014년 쿰부 빙폭에서 눈사태로 셰르파 16명이 사망했고,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산병과 저체온증도 목숨을 노린다. 고도 5000m 이상에서 산소는 평지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고산 뇌부종(HACE)과 고산 폐부종(HAPE)이 발생하면 몇 시간 안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이달 초 네팔 쿰부 지역 3패스(Three Passes) 코스에서 60대 한국인 C변호사가 실종 한 달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이러한 위험을 재차 환기시켰다. C변호사는 2025년 12월 23일 ‘히말라야의 종합판’이라 불리는 3패스 트레킹에 나섰다. 하지만 나흘 후 팡보체 인근에서 지인에게 활기찬 표정의 사진 한 장을 전송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C변호사의 귀국 예정일(2026년 1월 10일)이 지났는데도 행방이 묘연하자 소속 법무법인이 그의 행적 추적에 나섰다. 네팔 현지 입산 기록은 확인됐지만, 하산 기록이 없자 실종 신고를 했다.
실종 소식을 접한 대학 동기이자 판사 출신 K변호사는 사고를 직감했다. 히말라야 현지 사정에 정통한 석채언 혜초여행사 회장을 찾아가 실종 사실을 알리고 수색을 간청했다. 석 회장은 네팔 카트만두 지사에 비상 지시를 내렸고, 주(駐)네팔 한국대사관 한정희 영사 팀이 가세했다. 구조대는 실종 한 달 만인 지난 7일 해발 5535m 콩마라 패스 인근 빙하 지형 아래에서 C변호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 발견 당시 배낭이 없고 한쪽 신발이 벗겨진 상태였던 점에서 저체온증과 판단력 저하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은 남아있다. 여러 제보와 사진에서 C변호사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가이드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이 가이드는 사고 신고는 물론 구조 요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체크포인트 어디에도 가이드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구조대 관계자는 “네팔 경찰이 C변호사와 트레킹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가이드의 신원과 행적 파악에 나섰다”고 전했다.
주네팔 한국 대사관과 산악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에서 발생하는 잇단 사고와 관련, 네 가지 철칙을 당부했다. 저가 비인가 업체와의 접촉을 피하고 공신력 있고 검증된 여행사를 통할 것, 자격증이 있고 신원이 확실한 인증 가이드를 고용할 것과 체크포인트 기록을 철저히 남겨야 안전과 생명을 보장한다고 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흔적을 남겨야 만약의 경우 수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히말라야를 버킷리스트로 하는 트레커들에게 안전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체력 훈련, 장기간 심폐지구력 중심의 저강도 훈련을 권한다. 또 하루 고도 상승 폭을 300~500m 이내로 제한하면서 고소 적응을 할 것과 두통, 구토, 보행 이상 등 고산병 신호가 나타나면 즉시 하강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셰르파들은 충고한다.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는 상징성과 통계를 동시에 지닌 공간”이라며 “버킷리스트가 개인의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고산 환경은 개인의 의지와 별개로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히말라야 도전은 선택이지만, 생존은 선택이 아니다’라는 화두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