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남친. 단 세 글자가 여러 감성을 자아낸다. 지나간 사랑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혹은 지긋지긋한 애증의 드라마?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 단어가 요식업계에서 잔잔한 흥행 키워드로 떠올랐다.
시작은 ‘전남친 토스트’다. 2018년 한 네티즌이 “전 남자친구가 만들어줬던 식빵 토스트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창피를 무릅쓰고 연락해 만드는 법을 물어봤다”는 사연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전 남친은 정말 (내가 아닌) 토스트만 궁금한 거냐고 어이없어하면서도 레시피를 담담히 알려줬다고. “구운 식빵에 크림치즈와 블루베리 잼을 얹어 전자레인지에 10초 돌리면 돼.”
굳이 옛 애인에게 물어봐야 하나 싶은 단순한 음식이지만, “다정했던 전남친처럼 미련이 남는 달콤짭짤한 맛”이란 입소문과 함께 레시피가 확 퍼졌다. 당시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같은 재료를 넣은 ‘전남친 샌드위치’와 ‘전남친 호떡’ ‘전남친 팬케이크’ 등을 내놨다.
이 음식은 해외에서 K 문화가 본격 인기를 끈 2020년대 이후 ‘K 전남친 토스트(Korean ex-bf toast)’로 알려졌다. 지금도 외국 소셜미디어와 요리 매체에선 이에 대한 언급이 상당하다. 뉴욕 카페에 이 메뉴가 등장할 정도가 되자, 이 유행이 7년 만에 역수입됐다. 지난해 한 방송에서 “전남친이 들어 있지 않은 전남친 토스트”라며 다시 소개한 것. 이에 최근 대형마트와 유명 제빵업체가 ‘전남친 토스트’와 ‘전남친 도넛’을 차례로 출시했다.
이는 유명인이나 자본의 힘이 아닌, 단순한 스토리텔링의 힘만으로 유행을 만든 드문 경우다. 졸업식날 자장면이나 군대리아(군대에서 주말마다 먹던 햄버거 세트)처럼 특정 세대나 집단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이 있다.
전남친 토스트는 연애가 어려워진 시대에 풋풋한 인간미가 담긴 연애담, 또는 옛 연인이나 배우자와도 쿨하게 소통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한국 버전’이란 새로운 추억을 안겼다. 요즘 기혼 여성들은 전남친을 ‘연애 시절 자상했지만 지금은 다소 변한 현재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너그러운 전남친은 상표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1년여 전 부산 청년들이 “가끔 생각나는, 잊지 못할 맛”을 내걸고 ‘전남친 순대’라는 푸드트럭 사업을 창업했다. ‘전남친 막걸리’도 판다. 크림치즈나 블루베리 잼 대신 ‘전남친 감성’만 가져왔다. 이 브랜드가 경상도 일대에서 줄 서서 사 먹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고 가맹점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