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상대의 카카오톡이 시시각각 울렸다. 그때마다 그의 눈빛은 한순간에 날카로운 ‘서전(surgeon·외과 의사)’으로 돌아갔다. 새벽 3시에도, 공휴일에도, 아내의 생일날에도 이 휴대전화는 무음인 적이 없다.
이달 초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대서울병원에서 만난 송석원(53) 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은 초록색 수술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원래 이날 오후엔 외래 진료만 있어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응급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으로 인한 동맥경화가 흔해지면서 대동맥 질환을 앓는 환자가 늘고 있다. 이 질환은 심혈관 질환 중에서도 치사율이 가장 높다. 치료 시기를 놓쳐 병원 문턱도 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대동맥류의 파열 및 급성 대동맥 박리(剝離) 수술은 분초를 다투는 초응급이자 수술 사망률이 통상 15% 정도에 달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이대서울병원 안에 있는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은 그런 대동맥 환자만을 전문적으로 치료한다. 1년 365일 상시 움직인다. 2023년 6월 문을 열었을 때부터 송 원장이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이 병원에선 1200건의 대동맥 수술이 이루어졌다. 한 달 평균 100건, 주말과 공휴일 포함해 매일 3~4회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다. 1200건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명의’로도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된 그의 방송 영상 아래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저승사자가 번번이 빈손으로 온다고 염라대왕이 하소연하더니…. 이 의사 때문이었구나.”
◇응급실 돌며 명함 600장 돌린 의사
2018년 방영된 ‘흉부외과’란 의학 드라마가 있다. 복부 대동맥류 환자를 급하게 전원(轉院)해야 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 그때 응급실 간호사가 비상시 연락하라며 한 흉부외과 교수가 남기고 간 명함을 내민다. 실제 송 원장 이야기다. 2008년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그는 “대동맥 응급 환자가 있으면 365일 24시간 대기하며 전원받겠다. 보내만 달라”며 전국 응급실과 중소 병원을 돌아다니며 명함 600여장을 돌렸다. 2023년 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이 된 후에는 브로슈어를 만들어 1000여곳에 보냈다. 송 원장은 늘 휴대전화 두 대를 들고 다닌다. 하나는 개인 업무용,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연결된 ‘핫라인’이 가동되는 전화다.
-그 휴대전화가 울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송(전원)이 필요한 응급 대동맥 환자가 있다는 건데, 연락이 오면 상태가 어떻든, 시각이 몇 시든 무조건 전원시킵니다. 카톡 채팅방에 177명이 있습니다. 의사·간호사뿐 아니라 원무팀·총무팀·경비팀까지 들어와 있어요.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모든 절차가 이 안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지죠. 채팅방에 환자 정보를 전달하면, 원무과에서 환자번호를 생성합니다. 그러면 의사가 수술에 필요한 혈액이나 승압제 등을 미리 오더 낼 수 있어요. 이를 통해 간호사가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마칩니다. 수술방에선 마취과 의사가 대기하고요. 환자가 도착하면 준비가 다 된 수술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동맥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 줄일 수 있는 모든 시간은 다 줄였다. 의료진뿐 아니라 행정 파트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병원 도착부터 검사, 입원, 수술 조치 등이 동시에 진행된다. 응급 환자를 위한 별도의 복도와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마련했다. 언제든 수술할 수 있도록 수술실 하나는 무조건 비워 놓는다. 그 결과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후 수술에 들어가는 시간은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병원 옥상에서는 수시로 헬기가 뜨고 내린다. 대동맥 환자만을 위한 별도의 중환자실도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요.
“모든 환자가 그렇겠지만 1분 1초가 대동맥 환자들에겐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기존 병원에선 응급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올 경우, 보통 응급실로 먼저 전화합니다. 그러면 응급의학과에서 흉부외과 전공의에게 알리죠. 그럼 전공의가 교수에게 이런 환자가 있다고 알리고요. 그 시간만 해도 30분이 걸립니다. 그렇게 해서 환자가 오면 어떤가요. 피검사하고 수술 동의서 쓰고, 환자 등록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사이 수술방 알아보고, 가능한 마취과 선생님 확인해서 응급실에서 수술실 올라가면 최소 30분에서 1시간이 더 소요되고요.”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신체 곳곳에 공급하는 혈관이다. 위치에 따라 흉부, 복부 대동맥 등으로 나뉜다. 정상적인 대동맥은 지름이 2~2.5㎝지만, 노화나 질병 등에 의해 5㎝ 이상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대동맥이 비정상적으로 부푸는 질환을 ‘대동맥류’라고 한다. 대동맥 내벽이 찢어져 내층과 외층으로 분리되는 질환은 ‘대동맥 박리’, 아예 혈관이 터져 버리는 상황을 ‘파열’이라고 한다. 급성 대동맥 박리는 발생 후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1%씩 올라가며, 파열은 더 급박해서 한두 시간 내에 해결이 안 되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수술실을 상시로 비워 놓는 건 병원 입장에선 엄청난 손실 아닌가요.
“대동맥 환자는 대부분 응급이기 때문에 날짜와 시간을 정해 놓고 수술할 수가 없어요. 수술실을 비워 놓지 않으면 정작 환자가 왔을 때 기다려야 하거나, 응급도가 낮은 다른 과에 양해를 구해 수술방을 빼내야 합니다. 국내 병원 현장에선 더 급한 응급 환자를 위해 마취에 들어가고 있는 환자를 빼는 경우도 있어요. 이대 의료원이 엄청난 결단을 한 거죠. 그런데 이대병원은 사립 병원이잖아요. 이런 시스템을 사립 병원에서 희생정신만으로 감당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결국엔 국가 차원에서 뭔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100% 전원을 받으신다고요. 그만큼 사망 확률이 높은 환자를 떠안을 텐데.
“사망 가능성이 높은 걸 알면서 수술하죠. 신기한 건, 그렇게 해서 세상을 떠나는 환자도 있지만 살아나는 분도 많다는 점입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외래 환자 보는 중에 갑자기 오늘처럼 환자 전원 문의가 왔습니다. 외래 진료 중에 뛰쳐나갔는데 혈압이 너무 낮고, 어레스트(심정지)가 난 상태였어요. 그래도 끝까지 수술했습니다. 장담할 수 없는 환자였는데 서서히 의식이 깨어나더니 지금은 멀쩡하게 외래 다니거든요. 수술 당시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유명한 아나운서이더군요. 이 환자는 수술하면 살 것 같고, 저 환자는 아니고….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그 답은 영원히 모를 것 같습니다. 다만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제 역할을 끝까지 해야죠.”
◇따뜻한 심장에 반했다
송 교수는 비뇨기과 의사인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의사를 꿈꿨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인턴부터 흉부외과 전공의를 거쳐 2008년 모교 교수가 됐다. 그때도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환자를 살려 놓는 의사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새로 생긴 이대대동맥혈관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을 때, 동료는 물론이고 대학 은사까지 그를 말렸다.
-그런데도 왜 옮기셨나요.
“처음엔 저도 제안을 받고 ‘내가 왜?’ 했죠(웃음). 그런데 2022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그 당시로는 엄청난 기록이었던 620건의 대동맥 수술을 하고, 너무 지쳤었거든요. 주말에 한번 구경이나 가자고 해서 이대서울병원에 왔는데, 일단 이 병원이 너무 예쁜 거예요(이대서울병원은 2020년 서울시 최우수 건축상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지금 혈관병원으로 쓰는 C관 5·6·7층은 비어 있었는데, 이 자리가 국내 최초의 대동맥혈관병원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마음을 굳혔죠.”
-당시 옮기는 조건 중 하나가 함께 일한 영상의학과·마취과 교수 및 간호사를 포함한 10명이 함께 이동하는 것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팀이 다 함께 이동한 건 처음일 겁니다. 새 병원에서 빨리 적응하려면 15년을 함께 손발을 맞춘 팀이 다 같이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군소리가 많았죠(웃음). 저랑 같은 심정이었겠죠. ‘내가 왜?’ 제가 생각하는 대동맥혈관병원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며 모두 일대일로 설득했습니다.”
그 팀이 수술 1200건 신화를 함께 썼다. 늘어난 수술 건수만큼 놀라운 건 수술 시간을 과거의 절반가량으로 줄였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술 시간이 짧아지면 합병증과 사망률이 줄고, 환자의 회복 속도는 빨라진다. 의학 학술지에 나오는 대동맥류의 파열 및 급성 대동맥 박리 수술 사망률은 통상 15% 정도다.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은 이를 3% 내외까지 끌어내렸다.
-의료진도 버티기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우리 팀이 여기로 오기 전인 2022년 수술을 620건 했을 때 정말 모두가 탈진 직전의 상태였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불태웠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상은 없을 거라고 했었죠. 그런데 작년에 1200건을 했는데 의외로 모두가 멀쩡한 거예요.”
-왜 그런 거죠?
“그사이 팀워크가 더 탄탄해지고 수술 실력이 향상된 것도 있겠지만 시스템 덕을 크게 본 겁니다. 수술방이 없어 타과에 양해 구할 필요도 없고요, 수술이 끝난 뒤에는 환자 상태를 관찰할 중환자실도 확보돼 있고요. 그러다 보니 수술 건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스트레스는 훨씬 낮아지고 시간 효율은 높아진 겁니다.”
-올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 결과 흉부외과 충원율이 25%에 그쳤다고 하더군요. 필수의료 분야 중에서도 기피하는 과인데, 왜 흉부외과를 선택하셨나요.
“흉부외과 실습할 때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스승이신 유경종 교수님이 심장을 만져보게 하셨는데, 수술할 때는 심장을 멈춰놓거든요. 뛰지 않는 심장은 차갑습니다. 그런데 메인 수술을 다 마친 심장은 엄청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거예요. 너무 드라마틱하잖아요. 심장에 반한 거죠(웃음). 의사에게 중요한 건 사명감이지만, 그 못지않게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레지던트 때부터 응급 연락이 오는 것도 좋았어요. 남들은 스트레스받는다는데, 저는 지금도 이 전화기(핫라인)가 울리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단 생각에 힘이 나요. 응급 상황에서 제가 환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좋습니다.”
-그만큼 사망률도 높고, 의료 소송 등에 휩싸이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처음 환자가 숨지거나 합병증이 생길 땐 죄책감이 컸어요. 환자 네 명이 연속해서 죽는 일이 있었는데, 다섯 번째 환자를 수술해야 할 땐 엄두가 안 나더군요.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 걸 조금씩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다음 환자를 살릴 수 없으니까. 지금은 내가 의사로서 한 이 수술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까지 왔어요. 흉부외과, 그중에서도 대동맥 수술을 맡는 의사가 점점 줄어드는 건 중간에 이 과정을 극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 거예요.”
송 교수는 가톨릭 신자다. “결국 환자에 대한 최종 결정은 오롯이 내 몫이겠지만 가끔 결정이 너무 힘들 땐 마음속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기피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예전보다 의료 수가가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턱도 없거든요. 미국에선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의사가 최고로 대우받습니다. 의료 수가 현실화도 필요하고, 또 의료 소송에 대해서도 병원에서 전담팀을 운영하는 등 의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흉부외과 의사가 사회에 꼭 필요하단 걸 저 같은 사람이 보여주는 거겠죠.”
올해 그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도 선출됐다. 의학한림원은 의학 및 보건 의료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다.
◇간호사 중 유일하게 안 싸운 이와 결혼
송 원장은 2000년 의약 분업으로 의료 파업이 벌어졌을 때 아내와 만났다. “파업으로 할 일이 없어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는데, 함께 일하던 간호사 60명 중 유일하게 안 싸운 사람이 지금의 아내 한 명뿐이었다”고 했다. 교제한 지 6개월 만에 결혼해 남매를 두고 있다.
-여전히 안 싸우시나요.
“결혼한 지 26년 됐는데, 두 번 정도 싸운 것 같아요. 아내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저를 제일 잘 이해해주는 동료입니다. 저는 퇴근했다가도 응급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가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운전을 아내가 다 해줍니다. 어떨 때는 그게 하루에 다섯 번도 더 되거든요. 아내에게 고맙죠. 만약 엄마가 아빠한테 불만이 많았다면, 아이들도 바쁜 아빠를 싫어했을 거예요. 아이들 생일, 졸업식 한 번도 제대로 못 챙겼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제 일을 존중해주니, 아이들도 아빠를 이해하고 좋아해 줘요.”
송 원장의 아들도 의대생이다. 그는 “흉부외과에 오면 좋겠지만, 강요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보람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있다”고 웃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갈이 심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나요.
“지금도 주변에선 ‘50대 중반인데 아직 응급 수술하느냐’고 해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이게 제일 즐겁거든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활력소고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운동도 시작했어요. 사실 그전까진 운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외래 진료를 받는 80대 환자가 그러더군요. ‘선생님, 나 죽을 때까지 봐주시려면 선생님이 건강해야 한다’고.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의사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면 환자를 못 보잖아요. 수술하고 환자 보는 일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그걸 못하면 안 되니까 처음으로 헬스를 끊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 PT도 받아요.”
-개인 블로그에 직접 그린 그림도 여러 점 올리셨던데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반이었거든요.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으니 엄두를 못 냈죠. 이대 병원으로 오면서 처음으로 병원 앞 미술 학원에 등록했어요. 일주일에 2시간은 온전히 그림만 그립니다. 그러다 응급 생겨 몇 번 붓 던지고 왔지만요, 하하!”
송 원장은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이후 한 번도 일대일로 저녁 약속을 잡아본 적이 없다. 10년 전 골프는 더 이상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세 달에 한 번 동료들과 식사하는 게 거의 유일한 친목 자리다.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을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힘들 때는 많았어요. 그렇지만 흉부외과 의사가 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까.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송 원장이 답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