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츠카 미술관의 최고 볼거리 중 하나인 시스티나홀 모습. ‘천지창조’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과 동일한 크기 그대로 재현했다. /오츠카 미술관

도쿠시마현 나루토 해협 인근의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길게 누운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볼 땐 미술관치고는 다소 아담한 크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거대한 궁전형 미술관에 비하면 소박한 외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곳에 내로라하는 명화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의문은 미술관 설립 배경을 듣고 풀렸다. 이곳은 오츠카 제약 그룹이 지난 1998년 국립공원에 4000억원을 들여 만든 시설이다. 한국에선 ‘포카리 스웨트’ 음료로 널리 알려진 업체인데, 창업주인 오츠카 부사부로씨가 고향인 도쿠시마를 터로 정한 것이다. 주민들은 미술관이 들어오는 걸 기뻐하면서도,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오츠카 그룹이 현(縣)의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츠카 국제 미술관 건물은 위로 솟지 않고 땅속으로 파고드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애초부터 해안가 절벽과 구릉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입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니 지하 3층 연면적 3만㎡의 거대 전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999년 복원된 후 작품과 복원 전 작품을 양쪽에 전시했다. 아래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배경으로 꾸민 야외 정원. /오츠카 미술관

1000년을 유지하는 도판 기술

오츠카 국제 미술관은 전 세계 160개 미술관이 소장한 걸작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모두 도판(陶板) 위에 그려낸 모작이다. 이는 오츠카 그룹의 계열사 오미 도업 주식회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도판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원작과 똑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적외선, X선, 초고해상도 촬영 등 기법을 활용해 원작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소장 박물관, 원작자와 협의는 필수다. 이후 수십만 개의 픽셀 단위로 분해된 안료를 이용해 도자기에 원본과 동일하게 그림을 옮기고, 1300도 고온에서 구워낸다.

도판의 크기가 클수록 휘어짐, 균열, 수축이 발생하기 쉬운데다 작품별로 물감 두께, 표면의 거침 정도, 붓 자국 방향 등이 달라 재현은 극악의 난도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미술계 전문가들은 오츠카 국제 미술관을 일본 특유의 장인 문화가 응축된 곳으로 보기도 한다. 도판에 재현된 작품은 수백 년, 길게는 1000년이 지나도 색과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 미술관의 최고 볼거리 중 하나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을 재현한 ‘시스티나홀’이다. 시스티나홀엔 ‘천지창조’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실제 크기 그대로 재현돼 있다. 우주를 만든 최초의 순간부터 종말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켈란젤로가 구현한 대서사시를 일본에서 느낄 수 있다. 지난해 희년을 맞아 바티칸을 방문했는데, 워낙 사람이 많고 쉬어갈 곳도 마땅찮아 떠밀리듯 구경했던 경험이 있다. 크기, 비율, 공간감이 그대로일 뿐 아니라 실제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균열과 색 번짐 등까지 세밀하게 그대로 표현한 덕에 감상이 수월했다. 더욱이 바티칸에서와 달리 시간 제한도 없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또 다른 인기 공간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배경으로 꾸민 정원이다. 실제 정원처럼 연못과 다리가 배치돼 있어 관람자는 그림 속 풍경 안을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인상주의 특유의 빛 번짐과 색의 떨림도 도판 표면에 섬세하게 살아 있다.

중세 르네상스 전시실로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의 명작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양쪽에 똑같은 두 작품이 전시돼 있는 게 재밌다. 1999년 복원된 후 작품과 복원 전 작품을 각각 전시해 놓은 것이다.

다빈치 시대엔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기법이 일반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은 달걀노른자를 이용한 ‘템페라 기법’이 사용됐다. 이 방식은 섬세한 색감 표현을 가능케 했지만, 한편으론 곰팡이가 생기는 등 손상이 심해져 복원이 불가피한 상황을 만들었다. 두 작품을 한 공간에서 살펴보는 건 오츠카 국제 미술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이들을 위한 미술관

원작보다 더 원작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그래 봤자 진짜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발걸음이 현대미술 구역에 다다르자,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거대한 벽을 채우고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회색빛 화면은 균열까지 재현돼 있다.

도판 명화를 만들기 위해선 원화 저작권자, 소장자의 승낙이 필요하다. 피카소의 경우 아들 클로드가 모작을 만드는 걸 완강히 반대했다고 한다. 작품 재현의 질부터 기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등 반대 이유는 차고 넘쳤다. 오츠카 국제 미술관 측은 수년간 설득에 나섰다. 작품을 상품화하지 않고, 교육과 전시 목적에 한정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클로드는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의견을 바꾼 건 시작(試作) 등을 통해 오미 도업의 기술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다. 이후 미술관의 위치, 개관 목적 등을 듣고는 지지자가 돼 15점의 도판 작품 제작을 허락했다.

이 설명을 듣고 옆을 둘러보니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쿠시마나 인근에 사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실물 크기의 모작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만진다. 다른 미술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츠카 국제 미술관의 다나카 슈사쿠 상무는 “전 세계를 다니며 진귀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시골 학생들이 제한 없이 마음껏 작품 관람을 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게 창업주가 미술관을 건립한 이유”라고 했다. 작년 일본에서만 5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을 다녀갔다.

미술관을 나오며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피카소 유족이 관람의 목적을 고려해 도판 명화를 허락했다는 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으로 느껴졌다. 명작은 캔버스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관람객의 눈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 시일 내 오츠카 국제 미술관을 또 한 번 방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