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는 인플루언서 코트니 쿡 베일스(오른쪽)와 소피 더글러스./틱톡

#1. 금발의 서양 여성이 군고구마에 김치까지 듬뿍 얹어 한입 가득 베어 문다. 눈을 치켜뜨면서 “달콤한 고구마와 맵고 짠 김치의 ‘맵단짠 조합’이 기막히다”며 감탄한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근무하는 교사이자 팔로어 2900만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 코트니 쿡 베일스(Bales)가 틱톡에 올린 이 영상은 1000만회를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틱톡·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에는 “베일스를 따라서 군고구마를 먹어봤는데 맛이 환상적”이라는 ‘간증’이 이어지고 있다.

#2. 미국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군고구마가 뉴욕 직장인의 점심 메뉴로 인기”라며 “록펠러센터부터 코리아타운까지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에 줄을 섰다”고 최근 전했다. 뉴욕 직장인들이 군고구마를 점심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물가 폭등으로 패스트푸드마저 부담스러워지자 더 저렴한 대안을 찾게 된 점이다. 하지만 군고구마를 먹어본 이들은 “밍밍하고 질척한 미국 고구마와 달리 한국식 군고구마는 꿀처럼 달고 마시멜로처럼 폭신한 식감”이라며 “시럽이나 소스를 뿌리지 않고 굽기만 해도 맛있다”며 감탄하고 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겨울 간식 군고구마가 미국인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샌드위치 대신 군고구마가 든 종이봉투를 쥐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직장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초기에는 한인 마트 등을 중심으로 팔렸지만 판매처가 확대되고 있다.

군고구마를 판매하는 뉴욕 코리아타운 카페./뉴욕포스트

군고구마 인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가성비다. 뉴욕 내 맥도날드 세트 메뉴는 15달러(약 2만2000원), 샐러드 한 그릇은 20달러(약 2만9000원) 수준이다. 군고구마는 개당 2~3달러(약 2900~4300원)에 불과하다.

가격은 저렴한데 포만감은 있다. 식이섬유를 다량 함유해 두어 개만 먹어도 허기를 잊을 수 있다. 항암 효능을 지녔다는 베타카로틴부터 비타민C 등 영양도 풍부하다. 미 공익과학센터(CSPI)는 고구마를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뉴요커들에게 ‘건강한 한 끼’라는 인식을 심어준 이유다.

아무리 싸고 영양이 풍부해도 맛이 없으면 인기를 얻기 어렵다. 미국인에게 한국식 군고구마는 엄청나게 달다. 천천히 오래 굽는 과정에서 고구마 속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또 수분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당분이 더 진하게 응축되기 때문이다. 한국식 조리법이 단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는 “미국에서 고구마는 맛은 밍밍한 데다 수분이 많고 질어 식감이 감자보다 떨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깍둑썰거나 으깬 뒤 각종 양념을 추가해 조리해야 그나마 먹을 만하다고 여겼다”며 “하지만 한국식 군고구마가 미국인들의 이런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다만 뉴요커 입맛을 사로잡은 군고구마가 ‘한국식’이지 ‘한국산’은 아니다. 미국에서 팔리는 고구마는 대부분 캘리포니아산이다. 한국 품종도 일부 재배하지만, 비슷한 당도와 식감의 일본 품종이 주를 이룬다. 한국산 신선 고구마는 미국 검역이 타결되지 않아 수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뉴욕 한식당 '주아'의 고구마 주악. 브라운 버터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서빙된다./주아

고구마를 활용해 만든 다양한 간식·빵·디저트가 ‘K고구마’라는 범주 안에서 함께 주목받고 있다. K고구마가 군고구마에서 음료와 빵,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디저트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코리아타운 ‘그레이스 스트리트’ 카페는 ‘스위트 포테이토 라테’가 대표 메뉴 중 하나다. 빵·페이스트리 반죽에 고구마 앙금을 넣고 구운 고구마빵은 미국 내 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22년 미쉐린가이드로부터 별 1개를 받은 한식당 ‘주아(Jua)’에서는 코스요리를 마무리하는 디저트로 ‘고구마 주악(Goguma Juak)’을 낸다. 주악은 찹쌀가루에 소를 넣고 빚어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바른 전통 한과로, 도넛과 맛과 모양이 흡사해 ‘코리안 도넛’이라 불리기도 한다.

주아의 고구마 주악은 고구마를 껍질째 구워 찹쌀가루와 함께 반죽해 튀기고, 구운 고구마에서 나온 즙을 졸여 만든 청을 발라 완성한다. 김호영 셰프는 “한국적 맥락은 유지하면서도 현지 손님들이 비교적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 주악과 고구마를 결합하게 됐다”며 “손님 반응이 매우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