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직장인 커뮤니티에 ‘오늘 자랑 좀 할게, 나 돈 좀 쓰고 왔어’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대기업 S사의 30대 직원 박모씨로, “성과급을 받아 피자·과일·견과류 등을 사서 세종시 영명보육원에 후원하고 왔다. 내 인생 가장 현명하고 행복한 소비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취업하면 아이들에게 기부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서 “큰돈을 쓴 것도 아닌데 내가 위로받고 온 기분”이라고 했다.
이 글은 또래 2030 회사원과 공무원, 전문직 네티즌의 폭발적 반응을 낳았다. “멋있다, 이런 건 자랑해야 한다” “나도 가까운 보육원에 연락했다” “아이들 학습 지도 등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는 댓글과 관련 글이 수백 개 달린 것이다.
이에 S사 직원이 ‘2탄’을 올려 “이 보육원이 도서관 리모델링에 필요한 4000만원을 모금 중”이라고 전하자, 5만~50만원의 기부금 송금 인증 샷이 줄줄이 올라왔다. 실제 영명보육원 측은 본지에 “곧 모금액이 채워질 것 같다”며 “다양한 분들의 후원은 꾸준히 있었지만, 젊은 분들의 에너지가 워낙 커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부·봉사 분야에서 그동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던 MZ세대의 참여 열기가 주목받고 있다. 은퇴를 전후해 여유 있을 때 남 돕는 일에 나섰던 기성세대와 달리, 일찍부터 작게라도 사회에 기여하며 자기 효능감을 높이려는 욕구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2024년 서울시민 중 봉사자 연인원은 234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5% 증가했다. 눈에 띄는 것은 20대가 33%로 전 연령대 중 1위를 차지했고, 60대(31%)가 뒤를 이었다는 점이다. 한국 노인 빈곤 해소를 내건 ‘코리아 레거시 커미티’, 저소득층 연탄 배달과 유기견 보호 활동 등을 하는 ‘연봉인상’ 같은 2030 봉사단체가 수년 새 여러 곳 생겨났다.
MZ세대 사이에선 ‘봉케팅(봉사+티케팅)’이란 말이 있다. 봉케팅은 봉사 인력 모집 앱 등에서 각종 봉사 공지가 뜨면 마치 인기 콘서트 매표 경쟁처럼 몇 초 만에 마감되는 것을 뜻한다. 보육원·복지관·환경단체 등에선 “주말엔 대학생·직장인 동아리 활동이 몰려 자리가 없다”고 할 정도다. 운동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역시 MZ가 주도한 활동이다.
서울 마포의 30대 회사원 조모씨는 대학 시절 지체 장애아 교육 봉사를 했고, 요즘은 보육원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그는 “MZ는 일에서 의미를 찾거나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워 자원 봉사를 하는 것 같다”며 “친구 중엔 ‘비혼주의지만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MZ세대는 산업화·민주화 같은 20세기 거대 담론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일상 속 공정과 정의와 관련한 메시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즉각 행동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도덕적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을 매장시키거나, 선한 자영업자의 매출을 올려주는 ‘돈쭐내기’가 그것. 소셜미디어는 이런 여론을 더 빠르고 강렬하게 키운다.
이는 작은 소비에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드러내는 ‘미닝 아웃(meaning out)’ 트렌드로 설명된다. 나눔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30의 기부 동기는 ‘소외계층에 대한 동정심’ 만큼이나 ‘본인의 행복감’이 중요하게 꼽힌다. ‘사회적 책임’이나 ‘종교적 신념’을 내세우는 중장년층과 다른 지점이다.
MZ의 기부와 봉사엔 특징이 있다. 우선 소액이라도 수혜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직장인 허모씨는 “유명 자선 단체는 중간에 사업비·홍보비로 빼먹는 게 많다고 들었다”며 “단 한 아동이라도 직접 후원하면서 어떻게 커가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1원도 빼먹지 않고 전달한다”며 기부 내역과 결과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곧장기부’ 같은 플랫폼이 인기다.
또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봉사를 선호한다. 큰 규모보단 5~10명의 작은 동아리 형태가 활성화돼 있다. 가족·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느슨해졌지만,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자발적 교류는 갈망한다는 분석. 각 기업과 지자체는 젊은 층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봉사 클럽 결성을 독려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