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를 열면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힙한’ 느낌이 드는 과거 사진이 쏟아진다. #2026isthenew2016 #2016vibes #backto2016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부터 일반인들까지 앞다퉈 2016년 사진을 올리고, 그때와 현재를 비교하는 콘텐츠도 제작되고 있다. ‘10년 전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 향수(鄕愁)의 물결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직은 자유로웠던, 순수했던 시절
시작은 영미권의 Z세대였다. 누런 빛이 얹혀진 저화질 셀카와 다소 조악해 보이는 강아지 얼굴, 왕관 같은 필터로 장식된 사진이 쏟아져 올라왔다. 4억명의 팔로어를 가진 미국의 모델 겸 사업가 카일리 제너가 올린 2016년 사진은 500만개의 하트를 얻었고, 국내에서는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안유진, ‘레드벨벳’의 조이 등 연예인이 과거 사진을 공개하며 열풍을 이어갔다.
10년 전쯤의 모습이라면 유행이 지난 ‘흑역사’쯤으로 치부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2016년 사진 챌린지’는 아련하고 사랑스러운, 돌아가고 싶은 어떤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월 첫 주 틱톡에서 ‘2016’ 검색량은 450% 이상 급증했고, 2016년 분위기를 추억하는 영상은 160만개 이상 업로드된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에 유행한 노래를 모은 재생 목록도 수십~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이 현상과 관련해 “2016년은 인터넷이 지금보다 덜 정교하고, 덜 상업적이었다”며 “SNS는 알고리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덜했고, 사람들은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 강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이 찍어낸 듯한 그럴싸해 보이는 콘텐츠나 비슷한 알고리즘, 정치적 갈등에 점령당한 지금보다 2016년을 더 ‘진짜’ 같고 재미있던 시절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2016년의 주요 문화 현상으로는 낯선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불러모은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과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애플 에어팟이 등장해 무선 이어폰 확산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페이스북 라이브가 도입됐고 여러 형태의 ‘밈(meme·인터넷 유행)’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밈으로 평범한 일반인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일도 가능해졌다. 오늘날의 디지털 일상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인데, 그래서 ‘아직은 순수했던 시절’로 그려지는 셈이다. 또 2016년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사람들이 오프라인 소통에 완벽히 열려 있던 시절이었다.
팍팍한 현실의 도피처?
10년 전 대한민국은 어땠을까. 영미권에서 시작된 유행이긴 하지만, 한국도 문화적 에너지가 응축돼 있던 시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우선 BTS와 블랙핑크·트와이스·엑소 등이 데뷔 직후 급부상해 K팝이 ‘글로벌 트렌드’로 넘어가기 직전의 ‘내수 황금기’ 시절이었다. 영화 ‘부산행’ ‘곡성’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장르물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고, 드라마 ‘도깨비’와 ‘응답하라 1988’, ‘태양의 후예’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유튜브 등을 통해 각자 취향에 따라 콘텐츠 소비가 파편화된 지금과 달리 같은 시간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이튿날 “그거 봤어?”로 대화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심리학자 클레이 라우틀리지(Clay Routledge)는 영국 BBC에 “세상이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더 강한 향수에 빠지기 쉽다”며 AI의 확산과 불안한 고용 환경 등을 주목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요즘 20~30대가 보낸 지난 10년은 기성세대가 수십 년간 경험한 것보다 훨씬 폭발적이고 급격한 변화의 연속이었다”며 “10년 전 시절에 대한 향수는 겉보기엔 낭만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격차가 심화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려는 심리적 회피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