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와인 시음회에 갔을 때 일이다. 한 참가자가 강렬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그날 나는 와인 향을 제대로 맡지 못했다. 짙고 무거운 향수가 시음장을 지배해 테이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다가 옆 테이블 손님이 몸에 뿌린 향수가 너무 강해서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요가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짙은 머스크 계열 향을 풍기며 들어오자 다른 수강생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향수와 방향제 사용을 금지하는 ‘무향(無香) 공간’이 늘고 있다. 카페나 병원, 스터디 카페에 ‘향수 사용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이 붙고 있다. 서울의 한 고급 일식당은 온라인 예약창에 ‘향수를 과도하게 뿌린 손님은 퇴점 조치될 수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맛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항의가 이어지면서다. 서울의 일부 병원은 의료진의 향수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해외에서는 향기를 ‘공해’로 규정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선 ‘향해(香害·향수+공해)’라는 신조어가 2020년 사전에 등재됐다.
향수는 나뿐만 아니라 남도 맡는다. 문제는 향수 냄새가 선택의 여지 없이 공유된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은은하다고 느껴지는 향이,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망치는 시끄럽고 요란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식당이나 도서관, 기내(機內), 요가 스튜디오, 사무실처럼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머무는 공간에서는 향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밀폐된 공간에 갈 때는 아무리 좋아하는 향수라도 한 번 뿌리면 충분하다.
어떤 향수든 세 번 이상 몸에 분사하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운동 후 땀 냄새가 신경 쓰인다면 손목이나 목처럼 바로 퍼지는 부위 대신, 등이나 발목처럼 확산이 느린 곳에 가볍게 분사하는 게 좋다. 와인·커피 등을 시음·시식하는 자리에서는 향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매너다. 식사하러 갈 때에는 가볍게 사라지는 레몬·자몽 등 시트러스(감귤) 계열 향수를,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는 바닐라·초콜릿 같은 디저트 계열 향수를 뿌리면 공간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역시 사용할 때 절제가 필요하다.
향수는 나를 설명하는 가장 친밀한 후각 언어다. 가까이 왔을 때 느껴지고, 스쳐 지나간 뒤에는 기억으로 남는다. 향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공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에게는 향기로운 향수가 누군가에게는 악취가 될 수 있다. 이 사실만 기억해도 당신은 훨씬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