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땅 끝에 자리한 전남 해남은 시방 계절의 경계에 있다. 겨울이 슬며시 내어준 자리에 봄기운이 파고들어 늦겨울과 초봄, 두 계절의 풍경이 공존한다. 지난해 해남군을 찾은 관광객은 전년보다 6.6%가 늘어난 984만8576명(해남군 자료)으로 1000만명 돌파가 코앞이다.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해남 8경 중 이 계절에 놓칠 수 없는 풍경들을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달렸다.
◇해남 여행의 시작점 ‘대흥사’
거대한 산성(山城) 안의 큰 마을처럼 보였다. 해남 대흥사의 풍경이다. 연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싼 두륜산 능선은 마치 대흥사를 감싸기 위해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해탈문 앞에 선 대흥사 총무 법은 스님은 “두륜산 능선은 누워있는 부처님 형상”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오른쪽 바위에선 부처님 얼굴의 매부리코가 보이고, 배꼽 부분엔 마주 잡은 두 손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누워서 뻗은 다리가 보이는 듯했다. 편안히 누워있는 비로자나 부처님처럼 평화로운 땅이다.
대흥사는 조계종 전국 25개 교구 중 제22교구 본사(本寺). 미황사와 백련사 등 해남·영암·강진 등의 수려한 사찰 40곳 가까이가 대흥사의 말사(末寺)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지 승원(僧院)’ 7곳 중 하나(다른 6곳은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로 꼽힌 명찰이다.
대흥사는 봄 매화부터 가을 단풍까지 다 좋다. 하지만 겨울도 좋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나는 가을보다도 겨울날의 대흥사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벌거벗은 나뭇가지가 보드라운 질감으로 산의 두께를 느끼게 해주고 비탈길에는 파란 산죽들이 눈 속에서 싱싱함을 보여줄 때, 그때는 왕후장상만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님을 말해준다”고 적었다. 겨울 대흥사 해탈문 앞에 서보면 그 말의 뜻이 충분히 짐작된다. 이파리를 떨궈 맨얼굴을 드러낸 두륜산은 아무런 장식 없이 대흥사와 암자들이 지닌 스토리와 전설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대흥사는 일반적인 사찰과는 가람 배치가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입구에서부터 일주문-천왕문-해탈문 등 여러 문을 거쳐 대웅전을 향해 직진하는 구조다. 그러나 대흥사는 일주문에서 90도로 좌회전, 다시 90도로 우회전해야 해탈문 앞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야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이 굽이굽이 휘어가는 인생길처럼 디자인돼 있다.
대흥사는 크게 3원(院)으로 구성돼 있다. 개울 건너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침계루와 명부전, 응진전, 백설당 등이 위치한 곳이 북원(北院). 천불전(千佛殿)과 용화당, 봉향각 등이 자리한 곳은 남원(南院)이다. 서산 대사의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와 대광명전 등이 있는 일대는 별원(別院)이다. 과거엔 북원·남원·별원에 각각 주지가 따로 있었다고 할 정도의 대가람이다.
◇천불전, 연리근 보고 일지암으로
대흥사는 조선 후기 불교를 주도한 사찰이다. 중흥의 시작은 서산대사다.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을 이끌고 왜적을 물리친 서산대사는 입적할 때 자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의발(衣鉢·가사와 발우그릇)을 대흥사로 보내라고 유언했다. 호국의 영웅을 모시게 된 대흥사에 정조는 1788년 직접 쓴 현판을 내려 사당을 세웠다. 표충사 출입문을 무심코 지나다 이마를 쾅 받았다. 문은 높이가 낮았다. 허리 숙여 겸손하게 서산대사의 호국 정신을 새기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대흥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곳에서는 13대종사(大宗師)와 13대강사(大講師)가 배출됐다. 큰스님들의 발자취는 일주문 옆 유명한 부도(浮屠) 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흥사는 호국의 전통을 이어 2024년 단일 전각으로 국내 최대인 호국대전을 지었다.
남원의 중심은 천불전. 꽃살문이 아름다운 천불전엔 경주 옥돌로 깎은 주먹 크기 1000명의 부처님이 방문객을 맞는다. 1811년 화재로 천불전이 전소된 후 스님들이 옥돌 산지인 경북 경주로 가서 불에 타지 않을 옥돌로 천불을 만들었다. 1817년 배 두 척에 나눠 싣고 해남으로 오던 중 불상 700여 점을 실은 배가 풍랑을 만나 일본으로 표류했다가 1년 후에 돌아왔다. 노란색 가사를 입은 천불 중 일본에 다녀온 불상들의 어깨엔 표시가 있다고 한다.
천불전 옆 스님들의 거처로 쓰이다 현재 보수 공사 중인 용화당 앞엔 대흥사의 명물인 800년 수령(樹齡)의 연리근(連理根) 느티나무가 우람하다. 가지가 붙은 연리지(連理枝)와 달리 뿌리가 연결돼 한 몸이 된 이 나무는 ‘사랑의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800년을 이어온 사랑의 나무다.
이튿날 아침, 두륜산 능선의 배꼽 부분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오른다. 대웅보전에서 1.6㎞, 도보 40분 정도의 오르막길. 영하의 날씨, 이마에선 쉴 새 없이 땀이 흐르는데 뒷머리 머리카락엔 땀이 엉겨 얼어붙었다. 숨이 턱밑에 차오를 때쯤 북미륵암이 나타난다. 고려 시대 4.2m 높이 화강암에 새긴 편안한 얼굴의 국보 마애불 위에 전각을 씌워 용화전을 만들었다. 이 높은 곳, 저 큰 바위에 부처님을 새긴 선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용화전 옆 소로를 따라 바위에 오르니 보물로 지정된 고려 시대 3층 석탑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대흥사 전각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길을 20분쯤 내려오자 일지암(一枝庵)이 나타난다. 해탈문 앞에서 볼 때 ‘매부리코’ 바위 아래에 지붕이 살짝 보이던 암자다. ‘차의 성인[茶聖]’ 초의(1786~1866) 선사가 세우고 차밭을 가꾸며 40년을 보낸 차의 성지다. 네 개의 돌기둥이 연못에 발을 담근 누각 ‘자우홍련사’에 다가서자 예상치 못한 방문객 등장에 놀란 개가 짖어댄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산행. 겨울 대흥사와 두륜산을 독차지하는 기분이다.
◇초의선사부터 원교, 추사 일화도
산에서 내려와 침계루를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한다. 이곳은 원교 이광사(1705~1777)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1840년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30대 때부터 교유해온 동갑 ‘절친’ 초의 선사를 만났다. 당시 대웅보전엔 이광사의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광사도 80여 년 전 인근 완도군 신지도로 유배 왔다가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한다. ‘유배 선배’의 글씨였지만 추사는 이광사 글씨를 싫어했다. “내가 써줄 테니 저 현판 떼시라”고 했다. 유배 가는 길이었지만 자존심은 전혀 꺾이지 않았던 것. 7년 3개월의 유배가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다시 대흥사에 들른 추사는 물었다. “그때 그 현판은 어디 있는가.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네. 다시 달아주게.”
지금 대흥사 대웅보전엔 원교의 현판이, 대웅보전 왼쪽 백설당에는 추사의 ‘무량수각’ 현판(원본은 성보박물관 보관)이 걸려 있다.
제주도로 가는 길 대흥사에 들렀을 때 추사는 땅끝이 아니라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숙성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땅끝은 추사체의 완성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법은 스님은 “땅끝은 바다 쪽에서 거꾸로 보면 땅의 시작이기도 하다”며 “큰일을 앞두거나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스님 역시 어느 고민의 순간에 땅끝을 찾았다가 대흥사에서 인생의 새 길을 찾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새 봄, 새 출발을 꿈꾸는 이들에게 땅끝은 인생에 한 챕터를 여는 첫 페이지가 될 만하다.
◇고산의 ‘오우가 정원’에서
‘두륜연사(頭輪煙寺·운무에 싸인 두륜산과 대흥사, 일지암, 표충사 일원의 빼어난 경관을 뜻하는 말)’라 하여 해남 8경 중 하나인 대흥사를 돌아봤으니, 이를 시작으로 해남의 비경을 찾아다녀 볼 일이다.
대흥사에서 가까이 있는 연동리 덕음산 자락 고산윤선도유적지의 녹우당(綠雨堂)과 비자나무 숲 일대는 연봉녹우(蓮峯綠雨)라 해 풀과 나무가 푸릇해 초록비[綠雨]가 내리는 듯한 풍경을 으뜸으로 친다. 연봉녹우 역시 해남 8경 중 하나. 입춘이 갓 지난 후의 ‘해남 윤씨 녹우당 일원’은 난대성 원림(園林)에 둘러싸여 벌써부터 봄기운이 완연하다. 한쪽에선 동백이 빨간 꽃망울을 터뜨렸다.
고산윤선도유적지는 조선조의 문신이자,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시조시인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고산은 25세 때 해남으로 내려와 이곳 녹우당에서 6년, 현재 고산의 묘소가 있는 금쇄동(현 해남 현산면 구시리)에서 9년 정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유적지의 중심인 녹우당은 봉림대군이 왕위(효종)에 오른 후 자신의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집으로, 고산이 원래 수원에 있던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와 사랑채를 만들고 후대에 녹우당이라는 당호를 붙인 것이다.
유적지 초입의 고산윤선도박물관에선 고산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금쇄동기’ 외에 고산이 8세 되던 해 큰집으로 입양되었음을 알 수 있는 보물 ‘고산 양자 예조입안문서’, 그의 증손이자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영인본) 등 해남 윤씨 가문이 간직해 온 가보들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녹우당은 해남 윤씨 어초은파 종택으로 일반 관람이 어렵다. 녹우당 뒤편 비자나무 숲은 멧돼지 등 산짐승이 출몰할 수 있다고. 아쉬운 대로 박물관 옆 오우가 정원에선 자연에 깃들어 사는 옛 선인들의 풍류를 잠시나마 누려볼 수 있다. 고산의 대표 작품이자 해남 금쇄동에서 지은 연시조 ‘오우가(五友歌)’ 속 다섯 벗, 오우(五友·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를 만날 수 있는 정원이다. 서서히 푸릇해지는 잔디밭 사이로 걸어가면 ‘오우’가 마중 나온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 수석과 송죽이라 / 동산에 달 떠오르니 긔(그것) 더욱 반갑고야 /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다섯 벗이 있어서였을까. 홀로 거닐어도 어쩐지 외롭지가 않은 정원이다.
대흥사에서 고산윤선도유적지를 오가는 길에 두륜산케이블카(대인 왕복 1만5000원)가 있다. 두륜산 고개봉 전망대(해발 586m)까지 가장 빠르고 편하게 오르는 방법인데 대흥사에서 올려보던 두륜산과 대둔산 등 일대의 능선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여서 지나치면 아쉽다. 겨울에 백소사나무 군락에 핀 상고대와 일대 설산을 감상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눈이 내렸다면 뜻밖의 비경을 만날 수 있었겠지만, 케이블카에 동승한 안내 직원은 “올겨울엔 눈이 적게 와 설경을 서너 번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며 “그마저도 이상 기후로 다음 날 오전에 다 녹아버렸다”고 전했다. 눈이 없어도 전망대에 서면 웅장한 산세와 다도해를 품은 남쪽 바다만큼은 실컷 볼 수 있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엔 가까이 강진의 주작산을 비롯해 광주 무등산과 제주 한라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울돌목에서 노도(怒濤) 위를 거닐며
해남 8경의 일부 명소들은 해남과 인연이 깊은 역사 인물로도 연결된다.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원교, 추사의 이야기가 깃든 대흥사에서 시작해 고산윤선도유적지를 거쳐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만나는 명량해협(鳴梁海峽)까지, 조선시대 주요 인물들의 서사가 이어진다.
8경 중 하나인 ‘명량노도(鳴梁怒濤)’는 해남 문내면의 학동리와 진도 군내면 녹진 사이의 약 2㎞ 협수로인 명량해협의 무서운 파도를 가리키는 말. ‘우수영국민관광지’ 내 ‘울돌목스카이워크’가 명량노도를 감상하기에 최적지다. 바다 위로 돌출돼 있는 형태의 스카이워크에 서면 발아래로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광경이 마치 영화 CG를 보듯 생생하다.
울돌목은 ‘서·남해 바다에서 밀려오는 급물살이 암초에 부딪히는 소리가 매우 커 마치 바다가 우는 것 같다’는 데서 유래한 우리말 지명이다. 곡선형 스카이워크의 투명 유리 바닥 아래로는 거친 회오리 물살의 위압감이 더해져 아찔하게 느껴진다. 이곳 해설사는 “밀물 땐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명량해협을 통과해 서해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조류가 평균 11.5노트(초속 5.9m 정도) 이상으로 매우 빠르다”며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당시 이를 역이용해 13척 대 133척의 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선군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기지를 발휘해 나라를 구한 영웅의 이야기가 울돌목의 거친 파도 소리에 섞여 영화보다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몰 무렵이라면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해남 목포구등대’로 이어가볼 만하다. 해남 8경 중 ‘주광낙조’라 불리는 명품 일몰과 마주할 수 있다.
겨울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싶어 고천암 철새 도래지(고천암생태공원)를 찾았을 때 가창오리 수백 마리가 갈대 군락 위로 날아올랐다. 기대했던 해남 8경 중 겨울철에만 볼 수 있다는 철새들의 군무, ‘고천후조(庫千候鳥)’는 볼 수 없었지만, 겨울이 물러가는 땅끝에서 떠날 채비를 하는 철새를 배웅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어 보였다.
다시 추위에 못 이겨 발걸음을 돌리니 두륜산 어디쯤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단지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토록 즐겁지 않을 것이다’.
[뜨끈뜨끈 짱뚱어탕 한 그릇 할까, 싱싱한 닭 육회 맛볼까?]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도립공원 주변엔 식도락을 만끽할 만한 맛집들이 모여 있다. 해남 8미(味)에 선정된 ‘보리쌈밥’을 대표 메뉴로 내세운 식당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떠오른다면 짱뚱어탕을 맛볼 일이다. 짱뚱어탕은 해남을 비롯해 인근 영암군과 순천시, 신안군 등 남도 지역에서 추어탕처럼 즐겨 먹는 보양식이자 토속 음식. 대흥사 아래 먹거리촌에 있는 ‘해남식당’ 등에서 사계절 내내 짱뚱어탕을 맛볼 수 있다. 해남식당 주인은 “원래 짱뚱어는 9~10월이 제철이고 겨울엔 동면에 들어가는데, 사시사철 찾는 사람들이 많아 제철에 물량을 확보해 냉동시켜 두고 쓰고 있다”고 했다. 짱뚱어와 우거지를 넣고 푹 끓여 내는 해남식당의 짱뚱어탕은 구수하면서도 투박한 식감이 느껴진다.
해남 식도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닭 코스요리’는 토종닭 한 마리를 육회·구이·백숙·닭죽·똥집볶음 등 코스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닭 육회를 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겨울은 닭 코스요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두륜산도립공원 부근 50년 전통의 닭요리촌에 들어서면 닭 코스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이어진다. 그중 ‘원조장수통닭’은 3대째 닭 요리를 선보이는 이 구역 원조로 꼽힌다. 지난해 해남 맛집으로 꼽힌 ‘돌고래식당’은 닭과 생갈비를 숯불에 구워 내는 맛집이다. 닭 코스요리가 부담스러울 때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보양식 먹고 보양 차 한잔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면 ‘카페 유선’의 대추차와 대추생강차를 추천한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들에겐 대표 메뉴인 ‘해풍쑥 아인슈페너’가 인기지만, 직접 담근 청을 넣은 대추생강차 한잔 하면 으스스했던 몸에 금세 온기가 돈다. 해남의 명소이자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택 ‘유선관’의 운치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