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성동구 한 예식장에서 열린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출판기념회 모습. 정 구청장 측은 행사에 약 5000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1일 경기도의 한 행사장. ‘축하합니다’ 리본이 붙은 화환이 2열 종대로 늘어서 있고, 입구 맞은편에는 접수대가 마련돼 있었다. 참석자들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고, 쌓여 있는 흰 봉투를 하나씩 집어 들어 이름을 적고 돈을 넣었다. 언뜻 보면 결혼식장 풍경 같지만, 이곳은 6·3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의 출판기념회였다. 봉투를 접수함에 넣은 참석자들은 책을 받았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소책자 뒤표지에는 ‘값 2만5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값으로 얼마를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접수대에 서 있던 이는 “원하는 만큼 내시라”고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토·일요일에 집중적으로 열린다. 지난 주말인 1월 31일과 2월 1일 이틀 동안 전국에서 최소 70건 이상이 진행됐다.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장례 및 추모 일정으로 일부 행사가 연기됐음에도 적지 않은 규모다.

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정치권의 오래된 관행이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실린 본지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출판기념회는 꿩 먹고 알 먹는 행사. 자신이 쓴 책에 대한 홍보 효과에다 기념회 참석 인사들이 내놓는 봉투가 만만찮아 일석이조를 거두는 것. 선거 때만 되면 의원들이 급조해 내는 책들에 대한 출판 기념회가 줄을 잇지만 최근엔 특히 성행하는 느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정은 달라졌을까.

시장 선거를 준비 중인 한 출마 예정자가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을 향해 큰절을 하는 모습(위 사진). 군수 선거에 나서는 한 출마 예정자의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페이스북·유튜브

◇책은 안 중요한 출판기념회?

출판기념회 러시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화돼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3월 4일)까지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경북의 한 출마 예정자 A씨는 “출판기념회는 출마를 알리는 사실상의 출정식”이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를 설명하고 지역민들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정치 신인인 충북의 출마 예정자 B씨는 “현직 열에 아홉은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보면 된다”며 “홍보를 넘어 조직 점검, 세 과시, 자금 모금까지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사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1일 찾은 출판기념회도 정형화된 순서대로 진행됐다.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 먼저 책을 구매하고 방명록을 적었다. 행사 시작과 함께 국민의례가 진행되고, 이어 단체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이후 내빈 소개 순서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 전직 의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차례로 호명됐다. 축하 영상도 빠지지 않았다. 소속 당 대표, 국회의원, 고위 당직자, 지자체장, 연예인 등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여기까지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이후 40분가량 북토크가 진행됐다. 출마 예정자가 유력 정치인들과 얼마나 가까운지, 그동안 당을 위해 어떤 공을 세웠는지 등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패널들은 주로 “당선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출마 예정자는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갔다.

일부 출판기념회에서는 책과 관련 없는 코너가 행사를 채우기도 한다. 한 출마 예정자는 단상에 올라 큰절을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고, 다른 출마 예정자는 유튜버와 대담을 나눴다. 성악이나 악기 연주 공연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몇몇 행사에서는 참석자들이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출마 예정자의 사진과 이름이 크게 박힌 책이나 플래카드를 들고 “○○○ 파이팅”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는 순서는 정치인 출판기념회의 단골 메뉴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 책에 대해 논하는 출판 기념회 본래 의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연예인에 비유하면 유력 정치인들이 여는 출판기념회는 팬미팅, 정치 신인이 여는 출판기념회는 데뷔 무대”라고 했다.

◇화보집 뺨치는 ‘자전적 에세이’

‘○○○의 꿈’ ‘△△△의 도전’ ‘☆☆☆입니다’…. 대부분 출마 예정자들의 책 제목에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다. 출마 지역명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표지에는 저자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보통 ‘자전적 에세이’ ‘정책 에세이’ ‘정치 에세이’를 표방한다.

책의 앞머리는 대개 정치권 인사들의 추천사가 채운다. 구청장에 도전하는 C씨는 13명의 추천사를 담았는데, 대부분 같은 당 소속 전·현직 의원들이다. 본문은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골에서…” “나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이어 성장 과정과 가족사가 나온다. 대학 시절 경험이나 학생운동 참여 이력,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등이 차례로 등장한 뒤, 정치 입문기가 펼쳐진다. 현직이거나 과거 공직 경험이 있는 출마 예정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치적을 정리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구청장에 출마하는 시의원 D씨는 본인이 발의한 조례안을 책에 담았고, 과거 언론 인터뷰 전문으로 수십 쪽을 채웠다.

사진 비중이 큰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 얼굴 사진이 통째로 들어간 페이지가 불쑥 튀어나온다. 어린 시절 사진, 학생증 사진, 가족 사진, 군 복무 시절 사진 등 다채롭다. 지역 풍경과 특산물 사진, 심지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을 담은 이도 있다. 현직 군수 E씨는 사진을 100장 넘게 실었는데 ‘사진으로 보는 ○○○의 삶과 꿈’이라는 별도 부록도 덧붙였다. 자작시를 싣거나, 직접 요리하는 사진과 함께 레시피를 소개한 경우도 있다. 가족이 쓴 편지와 배우자와의 연애담을 싣기도 한다.

이런 책 가운데는 온·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을 통해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출판기념회만을 위해 제작된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 페이스북 등에 올린 글을 짜깁기한 책, 출판사나 보좌진이 대필한 책 등 급조된 책이 속출한다. 이 때문에 일부 출마 예정자는 대필 없이 직접 집필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하기도 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주문형 출판이 보편화되면서 출판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고, 그 결과 일회용 출판물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책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낸 책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지난해 말 낸 책 두 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 구청장은 서울 자치구를 순회하는 출판 기념 북토크에 이어 지난 2일 대형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지난 1일 열린 한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의 출판기념회장 입구에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위 사진) 같은 날 열린 다른 출마 예정자의 출판기념회장모습도 비슷하다. /페이스북

◇하루에도 ‘억’이 오간다는데…

경실련에 따르면, 2020년 6월 1일부터 2024년 1월 10일까지 현역 국회의원이 연 출판기념회는 91건에 달했다. 이 중 67건이 총선(2024년 4월)을 앞둔 2023년 11월 이후 70일 동안 집중적으로 열렸다. 이렇듯 선거 전 출판기념회가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으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반복돼 왔다. 책의 내용이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과는 별개로, 논란의 핵심에는 돈 문제가 있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이 아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둔 수익은 선관위에 신고·공개할 의무가 없고, 모금할 수 있는 금액에도 상한이 없다. 책 한 권을 건네고 수백만원을 받아도 이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손쉬운 모금 수단으로 인식되곤 한다.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개최할 수 있다’는 제한을 제외하면, 사실상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출판기념회에서 오간 돈이 문제가 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게 2013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던 신학용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유관기관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일이다. 법원은 그가 뇌물을 받고 법안을 발의했다고 보고 실형을 선고했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뇌물죄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2015년에는 당시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었던 노영민 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산자위 산하기관 등에 자신의 시집을 판매해 논란이 됐다. 당시 노 의원 측은 “북 콘서트 뒤에도 책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 카드 단말기를 잠시 사무실에 설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뒤에도 여러 정치인이 집에 쌓아둔 거액의 현금이 발견되거나, 재산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 출판기념회 수익을 그 출처로 설명하는 일이 이어졌다.

최근 사례로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 김 총리는 작년 6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두 차례 출판 기념회를 통해 2억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린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출판 기념회는 권당 5만원 정도의 축하금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 일반의 눈으로 봐서는 큰돈이지만 (정치권) 평균으로 봐서는 그다지 과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 총리 청문회 이후 야당은 출판기념회를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통한 모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으로 관리하자는 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논의는 없는 상태다. 앞선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나온 바 있지만 모두 폐기됐다. 이번 주말(7~8일)에도 전국에서 출판기념회가 100건 가까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