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에 재학 중인 김현진(왼쪽)씨와 조선대에 다니는 안성연씨. 이들은 “세상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한 영향력을 꿈꾼다”고 말했다. /강성곤 제공

한국장학재단 대학생멘토링 사업에 8년째 참여하고 있다. 나는 언론⸱방송 직역이다. ‘말하기⸱글쓰기 스킬업’ 팀을 지도하면서 매년 7~8명 안팎의 우수한 대학생들을 만난다. 지난 기수 가장 뛰어난 두 명은 공교롭게도 광주의 전남대와 조선대 여학생. 수업이 토요일이고 서울역 인근이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둘은 한 번도 결석이 없었다. 12회의 전 과정을 마치고 따로 만났다. 호남과 호남인에 대한 젊은이로서의 진솔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동안 쌓은 유대감을 발판 삼아 민감성 질문 위주로 인터뷰했다.

안성연(23)씨. 조선대 K-컬처공연기획학과 4학년. 한국 최초 민립(民立)대학이라는 ‘조대인(朝大人)’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3년 전 5⸱18민주화운동기념식 때 광주의 대학생 대표 4인에 뽑혀 경과 보고를 했던 기억을 뿌듯하게 갖고 있다. 공연 기획사나 문화재단 쪽에서 일하는 게 목표다. 김현진(24)씨. 호남의 대표 명문 전남대 학생. 공대 생물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광주를 사랑하고 가족과 있는 게 좋아 전대생(全大生·전남대 학생)이 됐는데 고향에 일자리가 부족해 서울 쪽을 바라봐야 하는 게 안타깝다. 아나운서를 목표로 차근차근 스펙을 쌓고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를 잘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어요. 답이 정해져 있다시피 하는 건 문제라고 봐요. 사안에 따라 다른 생각을 때때로 갖게 되지만 의견을 드러내면 오해나 논란이 생길까 봐 쉽사리 할 말을 못 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죠(안).”

“어려서는 정치 얘기 잘 안 나왔는데 스무 살 넘으니까 집에서도 종종 하게 되더라고요. 지난 대선 때 첫 투표권을 얻은 고3 동생이 이것저것 따져보고 소신껏 투표했노라고 당당히 말해 더 놀랐었습니다(김).”

타인으로부터 호남인에 대한 편견⸱선입견을 경험한 적이 있나? “인천 출신 친구한테 ‘광주에서는 집안에 수류탄이 하나씩 있다며?’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친구가 급히 농담이라며 수습해서 응대 안 했지만 광주와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해 당혹스럽고 불쾌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더구나 청년들에게 여태 이런 인식이 있다니, 기가 막히고 너무 놀랐어요. 저는 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남대학교가 그 시작점이었고, 그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김).”

“아직까지 그런 경험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취업하는 데 약간의 걱정도 없지는 않아요(안).”

미래에 나의 이상적 모습은? “롤모델이 옛날 배우 오드리 헵번이에요. 아나운서가 돼 직업적 성과를 내고 그 커리어를 확장해 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김).” “고등학교 때까지 제가 어느 정도의 크기의 사람인지 가늠이 안 됐어요. 그럴 때마다 ‘해보니까 나도 되더라’ 이런 용기를 주는 친구⸱선배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 그게 제 목표예요(안).”

열차 시간이 다가와 마지막 질문은 문자메시지로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광주 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밤늦게 도착한 답은 묵직하고 근사했다.

“광주 정신은 5⸱18정신과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을 떠올릴 수가 없네요. 5⸱18정신은 모두가 하나 돼 뭔가를 바꾸겠다는 마음가짐일 거예요. 광주 사람들은 단합하고 함께 목소리를 합쳐 외치는 것에 강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광주 정신은 주위 사람들과 하나 되려는 태도와 연대, 그리고 깊은 정(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안).”

“광주 정신은 광주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뜨거웠던 1980년 5월이 광주 정신을 만들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맞섰던 그 용기가 모든 대한민국 땅으로 확장됐습니다. 그저 시작점이었던 광주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뿐. 다른 지역과 분리되는 이념이 아닌, 국민들 모두가 갖고 있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김).”

이 땅의 민주화는 광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광주라는 이름의 서까래가 민주주의의 지붕을 버텨온 것은 기득권의 독점적 영토를 구축하기 위함이 아닐 터. 광주의 숭고한 정신이 배타적 성벽이나 일부의 사익으로 변질됨을 경계한다. 성연과 현진, 맑고 건강한 두 청춘에게 배울 일이다. 100여 일 뒤면 6월 지방선거다. 뻔한 승부보다 다수가 긴장하고 소수가 유의미한 약진을 보였으면 좋겠다. 광주가 역시나 ‘변화의 묘판(苗板)’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