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죽순 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높이 23.2cm, 보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순회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에 전시돼 있다. /e뮤지엄

입춘 추위가 매서운 시기다. 봄을 기다리는 동안 새 계절에 피어날 싱그러움을 미술로 먼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고려 시대에 제작된 청자 죽순 모양 주자(注子)는 당시 천하제일이라는 명성을 얻은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翡色)이 잘 구현된 명작이다. 뛰어난 조형성도 돋보이는데, 무엇보다도 죽순과 대나무 모티프로 주자 전반을 장식한 모습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우선 몸체는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댓잎이 감싼 모습이다. 댓잎의 윤곽은 양각으로 도드라지게, 잎맥은 음각으로 미세하게 표현했다. 도드라진 윤곽 주변과 음각된 선에는 유약이 고여 더 짙은 푸른색을 낸다. 엇갈리며 올라간 댓잎 끝은 꼬불꼬불하며 때로는 위로, 때로는 아래로 향한 모습이 위트를 더한다. 주구와 손잡이는 대나무 가지를 구부린 모양을 하고 있다. 느슨한 곡선을 그리는 주구는 약간 굵은 가지로, 손잡이는 이보다 얇은 가지 2개를 겹친 모습이다. 맑고 생기 넘치는 푸른빛 속에서 죽순과 대나무 가지의 생명력이 한층 더 실감 나게 전해진다.

‘주자’의 연원에 대해서는 중국 당나라 이광예(李匡乂)의 ‘자가집(資暇集)’ 내용이 자주 인용된다. 9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원화 연간(806~820) 초 술을 따를 때 ‘준(樽·항아리)’과 ‘표(杓·국자)’를 많이 썼는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주자 형태는 앵(罌·항아리)과 같고 뚜껑·부리·손잡이를 갖춘 것으로 설명돼 있다. 주자는 손잡이로 잡아 들 수 있고, 주구를 통해 액체류를 바로 잔에 따를 수 있어 편리했다.

고려 시대에 청자로 만든 주자는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실 때 널리 사용됐다. 형태도 다양한데, 식물 형태를 담은 주자로는 참외와 표주박 모양이 가장 많다. 참외·표주박 모양은 중국에 유사한 사례가 전하지만, 죽순 모양은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고려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 사람들이 죽순을 특별히 좋아한 것일까? 죽순은 고려 문인의 글에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죽순의 왕성한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곳에 모여 자라는 모습에서 임금에 대한 지조를 떠올리기도 했다. 또, ‘창옥속(蒼玉束·푸른 옥 한 묶음)’이라 부르며 죽순의 매력을 표현했다. 이규보(1168~1241)의 ‘죽순을 읊음(詠筍)’에는 죽순에 대한 친숙한 감정과 애정 어린 시선이 잘 나타나 있다. “대는 곧고 굳세지만/또한 아이 안을 때가 있네/아름다운 줄기 되기 전에는/아직 비단 껍질에 싸였도다/뾰족한 뿔 막 나오면/줄기 기다랗게 금세 자라네/그중에는 하늘에 닿는 줄기도 있어/먹으면 배고픔도 참을 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