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종로구의 헌혈의 집. 대기실의 헌혈자 20여명 중 15~16명이 젊은 여성이었다. 통상 겨울은 헌혈 비수기이고, 여성은 30% 정도다. 이날 헌혈 창구가 북적인 건 바로 두바이 쫀득 쿠키, ‘두쫀쿠’ 증정 행사 때문이다.
회사원 최연서(26)씨는 헌혈증서와 두쫀쿠를 든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대한적십자사에 전화하니 지점별로 두쫀쿠 재고가 몇 개 남았는지 알려줬어요. 구하기 힘든 두쫀쿠 먹고 좋은 일도 하고, 재밌잖아요.”
실제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국 혈액보유량은 지난달 3.1일분까지 떨어졌는데, 1월 16일 시작된 두쫀쿠 이벤트 덕에 현재 5.5일분까지 급증했다.
이어 ‘두쫀쿠 재료 성지’라는 을지로 방산시장. 상점마다 ‘피스타치오 스프레드 품절’ ‘카다이프면 없어요’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중년 부부는 “아이들이 두쫀쿠를 집에서 만들어보겠대서 ‘피’인 마시멜로와 초코파우더는 샀는데, ‘속’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두쫀쿠 핵심 재료인 피스타치오는 국내 유통 가격이 두 달 새 5~6배 폭등했다.
전국이 두쫀쿠 열풍이다. 이 찹쌀떡만 한 간식이 ‘두친자(두쫀쿠에 미친 자)’의 오픈런과 인증샷, 자영업자 매출 신화, 해외 역수출 등 각종 밈(meme·인터넷 유행)을 쏟아내며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게 뭔데 이 난리냐고? 꺼질 거품이라고? 옳은 말씀. 하지만 그럴수록 제대로 읽어야 한다. 불황과 고독과 불안의 긴 터널을 지나는 지금, 두쫀쿠를 자르면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두쫀쿠 광풍을 이해하는 7대 키워드를 뽑아봤다.
① 아는 맛, 낯선 포장, 쉬운 복제
두쫀쿠의 겉피는 익숙한 재료인 초콜릿이다. 그걸 마시멜로와 반죽해 떡처럼 쫀득한 식감을 낸다. 내용물은 낯설다. 중동식 면인 카다이프를 버터에 볶고 피스타치오를 다져 섞는다. 달콤함과 고소함, 쫀득함(또는 촉촉함)과 바삭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국의 복합적인 입맛에 맞으면서도 이국적이다. “(부서진 면과 견과류 때문에)모래 씹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
소비·디자인 트렌드 전문가인 이향은 LG전자 상무는 “룰을 깨는 맛이다. 맛이라기보단 재미”라고 평했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는 “두쫀쿠는 음식의 완성도 면에선 결함이 많다”면서도 “검증된 맛에 호기심을 일으키는 요소, 구하기 어렵다는 희소성이 더해지며 대란을 일으켰다”고 했다.
두쫀쿠는 레시피의 복제와 전파가 쉽다. 김치처럼 누구나 만들 수 있고 품질도 천차만별이다. 카페는 물론 국밥집, 장어집, 이불집과 철물점에서도 만들어 팔 정도다.
오리지널이 불분명하니 두쫀롤, 두쫀김밥, 두쫀붕어빵, 딸기 들어간 딸쫀쿠 등 변종이 이어진다. 소면과 땅콩 등 대체 재료를 넣은 ‘짭(가짜)쫀쿠’도 나왔다. 맛을 비교하며 여기저기서 사 먹어 보고, 직접 만들어 보며 연쇄 구매가 일어난다. 두쫀쿠를 둘러싼 각종 스토리텔링이 인기에 불을 지피는 구조다.
② 음식이 아닌 경험이다
두쫀쿠 가격은 자연산 회처럼 ‘시가’로 움직인다. 1만4000원대를 뚫었다. 한우보다 비싸다. 배고파서, 맛있어서 먹는 음식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안 된다. 그 열풍의 핵심은 어느 맛집에 찾아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누가 구해다 줬는지, 먹는 순간 소리가 어떤지 같은 ‘핫한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두쫀쿠를 밀어올린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빵지순례, 오마카세, 팝업스토어, 희귀템 오픈런, 텍스트힙, 각종 구독·스트리밍 등 오직 그 순간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경험 소비’의 선두주자다.
물질적 부(富)가 포화 상태에 이르고 불황이 길어지며 필수품과 내구재, 명품 시장이 침체하는 반면, 여행과 미식 등 경험 시장은 팽창하고 있다.
인천대 소비자학과 이영애 교수는 “젊은 층은 끼니로 삼각김밥을 먹더라도 몇 배 비싼 디저트를 사 먹고 공유하는 데서 만족을 느낀다”며 “두쫀쿠는 ‘선물받아 마땅한 소중한 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나’를 증명하는 효과가 커 가성비가 좋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③ 초연결시대의 소외 공포
그러나 그 경험은 ‘개성’과는 거리가 멀다. 두쫀쿠는 대세를 추종하는 디토(ditto·유명인 따라 하기) 소비의 공식을 따른다. 지난해 봄 출시된 두쫀쿠는 9월 장원영 인증샷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의 바이럴(viral·유행의 빠른 전파)로 폭발했다. 본질적 가치에 대한 판단보다는 유행에 뒤처지는 데 대한 공포(FOMO·fear of missing out)가 두쫀쿠 열차에 탑승할 것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한국에선 유독 콘텐츠 유행이 확 달아올랐다 꺼지곤 한다. 이 현상을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한국인은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관계 지향성이 높지만,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심리 또한 강하다. 그래서 유행에 빨리 올라탔다 빨리 벗어난다”고 설명한다.
정신과 전문의 G씨는 “요즘 두쫀쿠를 화제에 올리는 사람들의 동기는 ‘나도 주류 문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회적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고립을 늦추는 데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적어질수록, ‘더 큰 집단’에 속해있다는 연대감과 안정감을 확인할 장치가 절실해진다는 것이다.
④ 힘든 삶 속 작은 성취감
전문가들은 두쫀쿠 유행과 일부 자영업자의 매출 대박은 전형적인 ‘불황 경제’로, 지금이 매우 힘든 시대임을 방증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대공황기 여성들이 립스틱 같은 저가(低價) 사치품 소비에 몰려 화장품 산업만 성장했던 ‘립스틱 효과’에 비견된다. 청년 구직난과 AI의 습격, 고물가와 양극화 등 거대 위기 속 “유일하게 신나는 일”(이용재 평론가)이 두쫀쿠가 됐다는 것이다.
이영애 교수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즉각적 위안과 사회적 확인에 끌리게 된다”며 “디저트는 대표적인 저가 보상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이 경향은 Z세대에서 두드러진다. 삶의 표준이 높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니 그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세대다. ‘큰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도전도 싫다’는 이들에겐 당장 줄만 서면 얻을 수 있는 트로피 같은 두쫀쿠가 주는 성취감이 작지 않다.
⑤ 유행의 시작은 젊은 여성
이 작고 달콤한 사치는 젊은 여성들이 주도한다. 줄 서서 사 오는 건 남성들이다.
한파에도 두쫀쿠를 구해다 줄 수 있느냐가 사랑의 척도가 되는 ‘두쫀쿠 연애’, 남성이 여성의 요구를 무시했다가 파국을 맞는 ‘두쫀쿠 이별’도 나왔다. “두쫀쿠 먹어봤어요?”는 “여자친구 있어요?”와 같은 말이다. 연애와 결혼을 리스크 옵션처럼 여기는 Z세대에게 두쫀쿠는 관계의 밀도를 간편하게 측정하는 이벤트가 됐다.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는 “과자나 간식 유행이 거세지는 건 여성 때문”이라며 “디저트 유행이 2010년대 초 소셜미디어 확산과 함께 시작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의 지배적 문법은 ‘일상의 과시’인데, 이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친밀한 소통으로 관계성을 도모하는 여성이 우위를 갖는 영역이다. 디저트는 그런 소통 방식에 딱 들어맞는 소재라는 것이다.
⑥ 두바이라는 판타지
많은 경쟁자 중 두쫀쿠가 히트한 결정적 요인은 ‘두바이’라는 이름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인 SK네트웍스 이원희 부사장은 “두바이는 아직 한국인에게 경유지에 불과하다. 모두가 잘 모르는 것을 내세워 차별화하려는 욕구가 두쫀쿠에 담겼다”고 했다. 이향은 LG 상무도 “두바이는 미지의 영역인데 발음은 쉽다. ‘두쫀쿠’는 기막힌 네이밍”이라고 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UAE) 7개 토후국 중 하나다. 2000년대 초 오일머니를 앞세워 대규모 외자를 끌어오고, 사막과 바다를 메워 부동산·관광 중심 도시로 재개발됐다. 연예인 홍보 마케팅으로 구축한 미식 도시로서의 위상은 파리와 뉴욕 뺨친다.
이용재 평론가는 “돈으로 하드캐리(이끌어감)하는 지상낙원 이미지로 문화적 상징이 된 두바이와 한국의 두쫀쿠 열풍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⑦ 벌써 끝물? 다음 타자는
대한민국은 자영업 잔혹사의 대명사 ‘대만 카스텔라’부터 폐업률 98% 쇼크의 ‘탕후루’까지, 반짝 유행을 여러 번 학습했다. 변수는 두쫀쿠 열풍이 이전 유행보다 위력적이라는 점이다.
소비 쿠폰에도 살아나지 않은 최악의 경기 침체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두쫀쿠의 끝은 낭떠러지” “두쫀쿠 없이 버텨야 진짜 맛집”이라며 모른 척할지, 두쫀쿠가 롱런할 가능성에 베팅해 뒤늦게라도 올라타야 할지를 고민한다.
나만 아는 맛이 모두가 아는 맛이 되는 순간, 유행은 끝난다. “대기업 편의점에 출시됐다는 건 두쫀쿠의 끝이 보인다는 얘기”(이향은 상무)다.
두쫀쿠 다음 타자는 뭘까. 김용섭 분석가는 “중화권을 모티브로 한 유행은 지나갔고, 두바이의 효력도 재활용하기 힘들 것”이라며 “앞으로 시장에선 일본이나 유럽의 뭔가를 밀어볼 것 같다”고 했다. 분명한 건 ‘넥스트 두쫀쿠’ 역시 꿈결처럼 달콤하고 신기할 것이며, 오래지 않아 잔인하게 돌아설 것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