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에 대한 지배 욕심이 보도될 때면,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덴마크의 국왕 프레데릭 10세(King Frederik X)입니다. 오지랖 넓게도, 그분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 때문입니다.
프레데릭 국왕은 1968년생으로 2024년 초 퇴위한 어머니 마르그레테 2세 여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세자 시절인 2012년 5월 왕세자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부부는 마치 동화 나라의 주인공처럼 기품 있는 미남과 미녀였습니다. 총리 공관에서 환영 만찬 행사가 열렸는데, 행사를 준비하던 젊은 직원들이 두 분을 보고 탄식하듯 감탄하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정도였습니다. 왕세자는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 참석하였다가 호주인인 메리(Mary)를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전화와 이메일로 사랑을 나누었고 마침내 메리가 덴마크에 취업하여 이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처음에는 덴마크 왕실은 물론 국민의 여론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메리가 열심히 익힌 덴마크어로 인터뷰와 연설을 하자 분위기는 바뀌었고 마침내 국민의 축복 속에 결혼하였습니다.
왕세자는 미국 하버드 대학과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덴마크 유엔 대표부와 프랑스 덴마크 대사관에서도 외교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국가 상징으로서 왕실 가족을 넘어 국제 정치와 외교에 전문적 식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IOC 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마라톤을 3시간 초반에 달리는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2000년에는 4개월 동안 개 썰매를 타고 2795㎞를 달려 그린란드 북부를 탐험했습니다. 이 탐험은 덴마크 자치령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하고, 북극 지방의 환경과 기후 문제를 알리는 과학·홍보 목적의 탐험이었습니다. 일본 대지진 때는 현장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왕세자비의 아버지는 KAIST 교환교수로 한국에서 3년간 재직한 인연도 있었습니다.
2012년 방한 시 저는 왕세자와 위와 같은 사정을 중심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최근의 그린란드 사태가 저에게 더 큰 관심사로 다가왔고, 현실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을 프레데릭 국왕의 고민이 어떠할지 궁금해진 것입니다.
그린란드는 한반도의 10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인구는 5만 6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덴마크의 식민지였다가 1979년 자치권을 얻어 주민 선거로 정부 수반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외교와 국방권은 덴마크에 의존하고 덴마크 왕을 국가 원수로 삼지만, 덴마크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무상교육·무상의료의 복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의 국제정세 속에서 그린란드는 원치 않는 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그린란드에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고, 북극 통행권과 그린란드의 광물권을 확보하여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한때 그린란드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거나 강제적으로라도 매입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하였다가, 그린란드나 덴마크 등 유럽 측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자 이제는 방향을 바꿔 ‘전면적 접근권(Total Access)’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유럽 측과 협상을 하겠다고 합니다. 전면적 접근권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주권이 침해되거나 힘에 의한 강요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1951년 체결된 ‘미국·덴마크 그린란드 방위협정’과 기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운영의 틀 그리고 합당한 국제 규범의 틀 안에서의 해결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궁극적 이익에도 부합하고, 미국을 미국답고 위대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프레데릭 국왕의 생각도 그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