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안 돼요. 존댓말 하셔야 돼요.”
챗GPT가 됐든 제미나이가 됐든, 인공지능에는 반말로 명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을 관계가 명확하기에. 그러나 뇌과학자 김대식(57) 카이스트 교수는 “저는 개인적으로 존댓말을 쓴다”고 말했다. 갑을 관계의 역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공지능과 초(超)지능 시대의 전망을 설파하던 김 교수는 “지구 역사에서 덜 똑똑한 존재가 더 똑똑한 존재를 제어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AI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미래를 위한 보험”이라고 말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면 예전부터 존댓말 썼던 사람들은 살려줄 수도 있잖아요.”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마이크로소프트 AI 최고경영자 무스타파 슐레이만(42)은 AI에게 질문할 때 반드시 ‘부탁합니다’와 ‘감사합니다’를 곁들이는 격식파다. 지난달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당신도 그래야 할 것”이라며 “돈 드는 일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퇴 후 청소년을 위한 전화 상담 서비스를 설립했던 슐레이만은 “AI는 일종의 외계인이고 실제 신경망과 유사점이 많다”며 “AI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타인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AI의 진정한 선물”이라고 했다. 외계인과의 교류에도 예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AGI(범용 인공지능) 시대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번역을 돕거나 문답에 응하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의료·법률·경영 등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초강력 인공지능이 5~10년 내 등장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한 술 더 떠 올해를 AGI 달성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공표했다. 사회적 격변이 불가피해지면서, 윤리·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 인공지능과의 ‘평화적 공생’에 대한 고민이 더는 잠꼬대가 아닌 것이다.
◇나이 많을수록 AI에게 깍듯
세계적 현상이 돼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 퓨처PLC가 미국인(510명)·영국인(5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약 70%가 “AI와 대화할 때 예의를 지킨다”고 답했다. 빈말이어도 ‘Please’와 ‘Thank you’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적절한 매너이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차원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로봇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첫 번째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12%)라는 실용적 이유도 적지 않았다.
한국인은 어떨까? 챗GPT에게 물어봤다. “재밌는 질문이네요. 한국어 사용자 중에는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정중하게 시작, 친해지면 반말로 전환, 전문 상담 요청 시 다시 존댓말을 쓰는 패턴을 보입니다.”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국내 이용자들의 대화 6억8544만건을 분석한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존댓말 빈도는 60대 이상(19.7%)에서 가장 높았다. 연령이 낮아질수록 존댓말 빈도도 떨어졌는데, 14세 미만은 3.1%에 불과했다. 젊은 세대는 AI를 놀이 대상으로, 중장년층은 진지한 상담사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는 말 고우면 오는 말 곱다?
AI와의 대화 기술은 학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21세기 신인류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명령어 입력하는 인간)’의 자질은 AI로부터 더 나은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 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공손함이 AI 응답 품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박상돈 교수는 “제조사에서 AI를 학습시킬 당시 막말보다는 정제된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기에 학습된 표현에 가까울수록 더 나은 대답이 도출될 수 있다”며 “무례하게 질문했을 때보다 정중하게 물었을 때 ‘툴 콜링’ 등의 적극적인 외부 검색을 통해 답을 가져오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국내 학술지 ‘커뮤니케이션학 연구’에 지난해 8월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제목이 ‘생성형 인공지능에 존댓말 하기: 인간·AI 상호작용에서 발화 예의가 인공지능에 대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국민대 노신민·나은경)이었다. AI 사용자 5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수치화했는데, 인공지능과의 관계 인식에 따라 발화의 공손성 여부가 달랐다. 한마디로, AI를 의인화해 사람처럼 대우할수록 표현도 공손해졌다. 연구진은 “언어가 예의 바르면 인공지능에 대한 공식·비공식 차원의 관계 인식 수준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다”며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이유는 인공지능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이 우리가 현실에서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AI가 상사가 된다면?
AI와의 대화 습관이 현실에서도 발현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난다. 챗GPT 출범 3년을 맞아 IT 컨설팅 기업 어댑터비스트 그룹이 영국·미국·캐나다·독일 회사원 4000명과 경영진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달 결과를 내놨다. 응답자 26%가 생성형 AI 사용 후 예의가 줄었다고 답했고, AI 실무자의 경우 그 비율이 39%였다. 전체의 49%는 “이제 더 간결하게 말한다”고 답했다. 감정 소모가 적은 AI와의 소통 방식이 익숙해지면서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균열을 일으킬 위험”도 커진 것이다.
AI가 언제나 하급자에 머물지는 않는다. 지난해 7월 일본 대기업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 그룹은 현직 CEO 나카지마 타츠(63)의 실제 모습을 본뜬 AI를 도입했다. 1년간의 강연·회의 내용 등을 학습시켜 직원의 질문에 최고경영자의 철학이 반영된 답변을 내놓도록 한 아바타형 챗봇을 업무 현장에 투입한 것이다. 언제든 직원들이 AI 상사와 상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 고객에게 신속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목표. 인공지능이기는 해도 상사이기에 반말로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돈 드는 예의
AI 시대, 예의와 효율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은 수학·역사·과학 등 객관식 문제 50개를 각각 공손함의 정도만 달리해 챗GPT4o 모델에 입력했다. 그 결과 ‘매우 무례한 요청’이 ‘매우 공손한 요청’보다 정확한 답을 유도한 비율이 4% 높았다. “불쌍한 녀석, 이 문제 풀 수는 있냐?” 같은 모욕적 표현이 “부디 검토해 주시겠습니까?”보다 더 나은 답을 내놨다는 것이다. 통념을 뒤엎는 실험 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예의 표현은 AI에게 단순한 단어열에 불과하며 그 표현의 감정적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면서 “(작업 결과는) 프롬프트 길이와도 관련 있으며 이는 고려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요소”라고 했다.
예의를 차리면 말이 길어진다.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다면 AI를 존대할 때에는 얼마의 비용이 발생할까? 지난해 한 네티즌이 X(트위터)를 통해 물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41)은 “수천만달러”라고 답했다. 말이 길어지면 인공지능의 연산 작용도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전력과 냉각수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다만 비용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왔다. 오픈AI는 연매출 200억달러(약 29조원)를 돌파했다. 1년 새 3배 성장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