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를 타고 몽블랑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에귀유 뒤 미디를 향하면서 내려다 본 빙하. 몽블랑(Mont Blanc)은 이탈리아에서는 몬테 비앙코(Monte Bianco)로 불린다./박병원 제공

몬테 비앙코(Monte Bianco·4810m)는 몽블랑(Mont Blanc)을 이탈리아어로 표현한 것이다.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몽블랑이라면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게 상식적이지만 몽블랑 터널의 남쪽에 있는 이탈리아 꾸르마이외르(Courmayeur)에서 올라가면 샤모니보다 훨씬 덜 붐비고 물가도 더 싸다. 우선 몬테 비앙코 스카이웨이에 가서 360도 회전하는 8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푼타 헬브론너(Punta Helbronner·3466m)까지 갔다. 여기에서 4인승 케이블카가 세 대씩 매달린 파노라믹 몽블랑으로 갈아타고 해발 3000m가 넘는 빙하를 내려다보면서 기둥 하나 없이 5093m를 가로질러 몽블랑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에귀유 뒤 미디(Aiguille du Midi·3842m)까지 갔다. 에귀유 뒤 미디의 여러 전망대에서 몽블랑을 보고 난 다음에는 낭떠러지에 설치된 유리 상자에 들어가 보는 ‘허공으로 내딛기(Pas dans le Vide)’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푼타 헬브론너에서 에귀유 뒤 미디까지 가는 파노라믹 몽블랑. 4인승 케이블카가 세 대씩 매달려 있다. /박병원 제공

해발 3000m가 넘는 곳은 만년설의 세상이기 때문에 올라가서 조망을 하는 곳이지 노는 곳은 아니다. 오래 머물러 놀기에는 해발 2000m 안팎의 고도가 좋다. 나무 없는 풀들의 세상이어서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어 트레킹하기에 최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케이블카가 2000m 안팎의 고도에 중간 정류장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서 트레킹 코스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그런 곳이 파빌리온(Pavillon·2173m)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TH호텔이 케이블카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필리에 당글(Pilier d’Angle)호텔의 식당이 좋았다.

메종 비에유에서 최고의 트레킹

발 페레 계곡. 캠핑 사이트가 많고 길가 주차장이 곳곳에 있다. /박병원 제공

꾸르마이외르를 북쪽으로 벗어나 서쪽으로 가면 발 베니(Val Veny), 동쪽으로 가면 발 페레(Val Ferret) 계곡인데, 양쪽 다 캠핑 사이트가 많고 길가 주차장이 곳곳에 있다. 몽블랑 둘레길(Tour de Mont Blanc)을 걸을 때 지나는 곳이다. 꾸르마이외르 중심 주차장 출구에 이 두 계곡에 주차 공간이 몇 개나 남아 있는지를 표시해 주고 있다. 발 베니 쪽은 샬레 뒤 미아쥬(Chalet du Miage) 외에는 밥 먹을 곳이 없다. 발 페레 쪽 부근에는 어린이놀이터(Club de Sports)와 난이도 조절이 가능한 미니 골프장 등이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 미라발레 식당(Miravalle Hotel & Restaurant)에서 1.25㎏짜리 쇠고기를 구워 주는 것이 좋았다.

프티 생 베르나르 고개./박병원 제공

계속 더 가면 프랑스와의 국경에 있는 ‘프티 생 베르나르 고개’(Col du Petit St Bernard·2188m)가 나온다. 딱 걷기 좋은 곳이다. 고지대라 야생화가 만발하는 초여름에 가면 더욱 좋은 곳이다. 베르네 호수(Lac du Verney)를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길이 좁고 진창이 많아 트레킹 코스로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 식사는 고개로 향하는 길목에 로 리옹데(Lo Riondet)라는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돌아 나오는 길에 저녁도 여기서 먹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루토르 삼단 폭포. /박병원 제공

등산다운 길을 한번 걷고 싶어 라 튀일(La Thuile) 부근의 루토르 삼단폭포(Cascate del Rutor)에 가봤다. 출발점인 라 주(La Joux)의 주차장에서 1시간 20분 걸리는, 등산 코스 중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E 급의 길이다.

그런데 통행제한구역(ZTL Zona a Traffico Limitato)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작년 7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통행금지였다. 이탈리아에서 자가 운전으로 여행할 때 ZTL은 정말 주의해야 한다. 운영 시간이 따로 적혀 있지 않은 구역은 24시간 단속 중이라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어기면 몇 달이 걸리기는 하지만 100유로 이상의 벌금이 날아온다. 라 튀일의 식당은 라 메종 드 로랑(La Maison de Laurent)이 괜찮았다.

꾸르마이외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돌론네 케이블카(Telecabina Dolonne)로 잡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플랑 셰크루이(Plan Chécrouit·1709m)에 도착했다. ‘레 담 앙글레즈(Les Dames Anglaises·영국부인들)’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가능하다면 저녁에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스키 리프트로 갈아타고 메종 비에유(Maison Vieille·1960m)까지 이동한 뒤 해발 2161m의 셰크루이까지 걸어갔다 왔다. 정말 부담 없이 최상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였다. 왕복 21유로인데 경로 할인을 받으면 12.5유로. 어디서든지 돈을 낼 때는 일단 경로 할인 혜택이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수도원에서 만난 김인중 신부 스테인드글라스

산토르소 회랑 주두 조각. /박병원 제공

베이스캠프를 아오스타(Aosta)로 옮겼다. 아오스타의 압권은 산토르소 회랑(Chiostro Romanico di Sant’Orso)의 주두(柱頭)에 있는 조각이다. 입구에서 40개 기둥의 조각을 설명해 주는 종이 한 장을 받아서 하나하나 잘 보기를 권한다. 따로 입장료를 낼 가치가 있다. 다음은 아오스타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e San Giovanni Battista)인데 합창단석에 있는 귀여운 나무 조각을 꼭 보기를 바란다. 그 외에도 거석 문화 유적을 실내에 보관한 박물관부터 로마 시대의 성벽까지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 고고학박물관(Museo Archeologico)은 상대적으로 볼 것이 적어 아쉬웠다.

아오스타 대성당 합창단석에 있는 나무 조각./박병원 제공

아오스타에서 추천할 만한 식당으로는 ‘트라토리아 디 캄파냐(Trattoria di Campagna)’를 꼽고 싶다. 베리를 듬뿍 얹어 내오는 디저트 수레가 압권이다. 시내의 프레토리아 문(Porta Praetoria)의 식당 ‘이아누아(Ianua)’도 식사가 좋았다. 아오스타와 인근 마을 곳곳에는 섬세한 나무 조각품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곳은 프랑스 동남부의 사부아(Savoie)에서 시작한 사보이아 공국이 후일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근거지인 만큼 사보이 가문의 성이 많이 남아 있다. 생피에르성(Castello di Saint-Pierre)은 자연사박물관으로 조성돼 있다. 사리오 드 라 투르 성(Castello Sarriod de la Tour)에는 오래된 벽화가 남아 있다. 사이렌 인어(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의미하는 스타벅스의 로고에 있는 인어)와 악귀를 악귀로 쫓는다는 의미의 괴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머리들의 방(Sala delle Teste)’ 천장에는 170여 개의 까치발(corbel) 조각이 저마다 재밌는 형상으로 새겨져 있다. 부조가 새겨진 나무 가구들과 조각도 가득하다. 사레 왕가 성(Castello Reale di Sarre)은 성 내부 전체가 아이벡스 산양의 머리 박제로 장식되어 있어 다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리오 드 라 투르 성에 남아 있는 벽화. 사이렌 인어(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의미하는 스타벅스의 로고에 있는 인어)와 악귀를 악귀로 쫓는다는 의미의 괴물이 그려져 있다. /박병원 제공

페니스 성(Castello di Fénis)과 이소뉴 성(Castello di Issogne)이 특히 좋았다. 페니스 성은 오전에 갔는데 오후 표를 예매해 놓고 아오스타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다시 와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일대의 성들은 대개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로만 입장이 가능하니 표를 예매하는 게 좋다. 주차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이소뉴 성은 성 전체가 벽화로 가득 차 있는데 1층에 있는 평민들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들이 이색적이었다. 2층과 3층에는 성화와 귀족들의 모습을 그린 벽화들이 있다. 중정에는 쇠로 만든 조각이 있는데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열매와 장수를 상징하는 참나무 잎을 한 나무에 표현하고 있다.

그랑 생 베르나르 고개 올라가는 길. /박병원 제공

그랑 생 베르나르 고개(Col du Grand St Bernard·2469m)는 아오스타에서 50분 거리로,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큰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스위스 양쪽에 다 주차장, 숙박 시설, 식당 등이 완비되어 있고 스위스 쪽에는 호스피스 수도원도 있다. 스위스 쪽에 있는 식당 ‘몽 주(Mont Joux)’에서의 점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도원 안 아담한 교회의 벽화도 좋았지만 작은 미술관에서 만난 김인중 신부의 추상 스테인드글라스가 선사한 감동이 상당했다.

그랑 생 베르나르 수도원에 있는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박병원 제공

이곳에서 사방으로 걷는 길이 뻗어 있다. 고도가 높다 보니 한여름에도 꽃이 좋다. 봄용담, 자주용담, 엉겅퀴 중에도 가시가 제일 많은 가시엉겅퀴, 캄파눌라와 아데노스틸레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은 단연 압권이다.

가시 엉겅퀴. /박병원 제공

물에 비친 마테호른의 모습

마테호른(Matterhorn·4478m)은 이탈리아에서 체르비노(Cervino)라고 불린다. 브뢰일-체르비니아(Breuil-Cervinia·2050m) 마을에서 6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플랑 메종(Plan Maison·2554m)에 이른 뒤 치메 비앙케 라기(Cime Bianche Laghi·2814m)까지 가는 케이블카로 갈아타는데 이 케이블카는 좌석이 없고 천장이 높은 스키용이다. 이어 손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대형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플라토 로자(Plateau Rosa·3480m)에 닿으면 스키어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소박한 산장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이곳에서 클라인 마테호른으로 가는 대형 케이블카가 2023년에 새로 만들어져 스위스 쪽의 체르마트(Zermatt)까지 구간이 연결되었다.

마테호른은 이탈리아에서 체르비노라고 불린다. /박병원 제공

여기에서 사람들이 주로 즐겨 찾는 곳은 플랑 메종이다. 식당이 몇 개 있고 그 주변에 걷기 좋은 트레일들이 뻗어 있다. 그중에서도 ‘로체 네레(Rocce Nere)’ 식당이 좋았다. 나오는 길에는 마을 입구 근처의 라끄 블뢰(Lac Bleu·푸른 호수)에 들러보길 권한다. 물에 비치는 마테호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릴라즈(Lillaz)에 차를 세우고 마을을 지나서 폭포(Cascate di Lillaz)로 향했다. 가는 중에 마실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식수대가 두 개나 있어서 빈 병들을 채울 수 있다. 알프스의 모든 마을은 물을 공짜로 리필할 수 있는 식수대가 곳곳에 있다. 빈 병만 가지고 다니면 된다. 마을 곳곳을 장식한 나무 조각들을 구경하며 폭포에 닿았으나, 정작 폭포 자체는 큰 감흥이 없다. 오히려 꼬뉴(Cogne)까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넓은 길이 걷기 좋았다. 로마 시대에 지었다는 아찔한 높이의 다리 퐁 다엘(Pont d’Aël)도 한번 가볼 만하다.

퐁 다엘 다리./박병원 제공

아오스타에서 필라(Pila)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중간에 레 플뢰르(Le Fleurs), 플랑 프라즈(Plan Praz)라는 두 역을 지나서 필라에 도착했다. 탑승 시간이 20분 이상 된다. 다시 8분 정도 걸어가 리프트로 갈아타고 샤몰레(Chamolé·2310m)에 도착했다. 하산하는 리프트에서는 몽블랑을 비롯한 설산들의 연봉이 멀리 보인다.

여정의 마무리는 미쉐린 스타 식당에서

아오스타를 떠나 ‘그란 파라디소(Gran Paradiso)’라는 이름에 이끌려 꼴 니볼레(Colle del Nivolet·2635m)로 향했다. 정상부의 경치도 좋고 걷는 길도 좋은데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으니 유의할 일이다. 식사도 가는 길에서 해결해야 했다. 올라가는 길에 보았던 ZTL 표지판이 내내 마음에 걸려 돌아오는 길에 자세히 살피니, 한정된 주차 공간 때문에 주차비를 선납한 차량만 진입을 허용하는 단속 구역인 듯했다. 이탈리아 자가 운전 여행자라면 역시나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꼴 니볼레./박병원 제공

마을이 예쁘기로 소문난 발레 소아나(Valle Soana)에 들렀으나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 저녁 식사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데 토리노로 향하는 길에 들른 깔루소(Caluso)라는 마을에서 2024년 미쉐린 스타를 받은 식당 ‘가르데니아(Gardenia)’를 마주쳤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우리를 반갑게 받아준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호사를 누리며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