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대추·계피 등 약재를 넣어 숙성한 약술 '도수주'. /농촌진흥청

설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왜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태음력을 기준으로 명절을 쇠는 것일까?

답은 달에 있다. 전기가 없던 시절, 인간이 시간을 가늠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는 달이었다. 날짜를 세지 않아도 밤하늘의 초승·보름·그믐달이 지금이 언제인지를 알려줬다. 달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경 사회에서 달의 움직임은 생존과 직결된 정보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중요한 달이 새로 차오르는 정월 초하루에 특별한 술을 마셨다. 맑은 청주나 전통주에 도라지·대추·계피 등 약재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알코올을 날린 뒤 온 가족이 함께 음복(飮福)했다. 바로 ‘도소주(屠蘇酒)’다. 이름만 들으면 독한 소주를 떠올리기 쉽지만, 한자를 뜯어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나타난다. 잡을 도(屠)와 소(蘇), 그리고 술(酒). ‘본초강목’ 등에서 ‘소’는 악귀의 이름으로 해석됐다.

민속학적으로 도소주는 ‘악귀를 때려잡아(屠) 죽이는 술’이라는 강력하고 전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조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역병을 악독한 귀신으로 보았고, 이를 쫓아내는 것을 넘어 아예 도륙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술 이름에 담았다.

흥미로운 점은 도소주를 마시는 규칙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도소주는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노인이 가장 마지막에 마신다. 여기에는 깊은 배려가 숨어 있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에게 먼저 약술을 먹여 악귀로부터 보호하고, 나이 든 사람은 어린 사람들의 생기를 받으며 천천히 마시라는 의미다.

술에 약재를 넣어 악귀(질병)를 잡는 문화는 동양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술(알코올)은 그 자체로 훌륭한 용매이자 방부제다. 약재를 물에 끓이는 것보다 술에 담그면 유효 성분이 훨씬 빠르게 추출되고, 체내 흡수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장기 보관을 위해서도 술을 활용했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역시 이 원리를 알았다. 그는 기원전 400년쯤, 아테네에 역병이 돌자 와인에 쑥과 향신료를 넣어 환자들에게 처방했다. 이것이 ‘비눔 히포크라티쿰’, 오늘날 칵테일의 필수 재료인 베르무트(Vermouth)의 기원이라고도 불린다.

서양의 약술 문화는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의 연금술과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진화한다. 바로 증류 기술의 도입이다. 와인이나 곡물주를 끓여 순수한 알코올 기체만 모으는 증류법이 개발되자, 알코올 도수는 높아졌고 약재의 성분을 추출하는 능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위스키(Whisky)는 원래 게일어로 ‘우스게 바하(Uisge Beatha)’라 불렸다.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이것을 단순한 술이 아닌, 추위를 이기고 상처를 소독하며 소화를 돕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러시아 보드카(Vodka) 역시 어원은 ‘지즈데냐 보다(Zhiznennia Voda)’, 즉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체온을 유지해주는 생존 필수품이었기에, 그들은 이 독한 술을 귀여운 애칭인 ‘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칵테일 베이스로 쓰이는 진(Gin)의 탄생은 더욱 의학적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의사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는 신장병과 통풍 치료를 위해 이뇨 작용이 뛰어난 ‘주니퍼 베리(노간주나무 열매)’를 알코올에 넣어 증류했다. 약국에서 팔리던 이 약술이 영국으로 건너가 칵테일에 쓰이게 된 것이다.

달콤한 맛을 내는 리큐르(Liqueur) 역시 그 어원은 라틴어 ‘리퀴파케레(Liquifacere)’, 즉 ‘녹이다’라는 말에서 왔다. 중세 수도사들이 여러 약초와 향신료를 알코올에 녹여 만든 비법 치료제였다. 이들은 이 신비한 약술을 ‘엘릭서(Elixir)’라 부르며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여겼고, 지금도 일부 리큐르에는 당시 수도사들의 비밀 레시피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콜라의 조상도 약재를 넣은 술이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와인에 코카잎을 넣은 ‘뱅 마리아니’가 인기를 끌었다. 미국 약사 존 펨버턴은 여기에 카페인이 든 콜라 열매를 추가해 ‘프렌치 와인 코카’를 개발했다. 하지만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알코올을 뺄 수밖에 없었고, 대신 탄산수와 설탕을 넣어 만든 것이 바로 오늘날의 코카콜라다.

동양의 도소주든 서양의 위스키나 진이든, 그 뿌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간절함’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