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은 매우 불안했다. 2주 사이에 내각이 세 번이나 무너져 다시 짜야 할 정도였다. 한 언론인이 이탈리아 사람에게 인터뷰에서 물었다. “이번 사태는 매우 중대하지요?”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탈리아 문화에서는 ‘3F’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가족(Family), 친구(Friend), 그리고 음식(Food).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도 이 셋만 괜찮다면 삶은 버틸 만하다. 영국의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Charles Handy·1932~2024)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경영자들은 숫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버드 출신으로 포드 자동차 사장까지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수치의 달인이었다. 계산에 밝았던 그는 모든 것을 숫자로 이해하려 했다. 첫째, 측정할 만한 것은 모두 숫자로 표시한다. 둘째,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눈짐작으로 값을 매긴다. 셋째, 수로 나타내지 못할 것은 사소한 요소로 처리한다. 넷째, 아예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다룬다.
맥나마라처럼 세상일을 다룬다면 판단은 딱 부러지게 명료해진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우수한지는 시험 점수로 가려내면 된다. 우리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도 수입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알게 될 터다. 하지만 맥나마라는 미국을 베트남전의 패배로 몰아넣은 국방부 장관으로 손가락질을 받곤 한다. 그의 계산으로는 언제나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투자 대비 효과로만 설명되지 않는 법. 맥나마라는 숫자로 가늠하지 못한 시민들의 마음이 미국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놓치고 있었다.
이러한 ‘맥나마라의 실수’는 우리 일상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학생들을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기는 쉽다. 그래서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도덕성, 공감 능력, 협동심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다. 많은 수입이 곧 행복은 아니다. 가족과 건강, 좋은 인간관계 등 좋은 인생을 꾸리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찰스 핸디는 “셀 수 없는 것이 셀 수 있는 것보다 더 강하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숫자 너머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바람직할까?
찰스 핸디는 ‘옥스퍼드식 일상’을 소개한다. 이는 영국군 장교였던 그의 장인이 보냈던 하루의 일과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에 치열하게 군사 훈련을 한다. 가급적 그날 해야 할 일도 정오 전에 모두 끝낸다. 점심에는 칵테일을 두어 잔 마신 뒤, 오후에는 말을 타는 등 스포츠를 즐긴다. 저녁에는 부대 내 클럽에서 동료들과 어울린다. 장인은 이런 삶이 균형 잡힌 삶을 만들어 준다고 강조했다.
경영 사상가로서 찰스 핸디는 ‘시그모이드 곡선(Sigmoid Curve)’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조직과 개인의 꾸준한 성장을 이끄는 공식으로, 약해지고 무너지기 전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후에는 백약이 무효인 터다. 마찬가지로 내 삶이 튼실하고 여유 있을 때 미래를 바라보며 미리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 조급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도 성말라지는 탓이다.
그러려면 삶은 여러 겹이어야 한다. 일에만,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에만 매달리다 보면 이내 무리를 하게 된다. 이를 망치면 실패자로 남을까 봐, 인생이 의미가 없어질까 봐 두려운 탓이다. 반면, 일터 밖의 삶도 건강하고 따뜻하게 가꾼 이들은 눈앞의 과제에만 목매달지 않는다. 그래서 되레 현실을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현명한 대책을 내놓곤 한다.
찰스 핸디는 자신의 삶으로 자기 철학이 옳음을 증명했던 사람이다. 다국적 석유회사 셸의 임원으로 경력의 정점일 때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창립에 힘쓰다가 학교가 자리를 잡자, 교수직에서 자진해서 내려왔다. 일이 자신을 삼켜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성을 쏟을 일이 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득하더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행복의 문턱에 있다.” 찰스 핸디의 삶의 신조는 이러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을 스토아 철학자라고 불렀다. 스토아 철학은 주어진 운명을 충실하게 따르라고 가르친다. “신이시여, 저에게 바꾸지 못할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둘을 가려내는 지혜를 주소서.” 그가 좋아했던 ‘평온을 비는 기도문(Serenity Prayer)’의 내용이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결국 친절, 믿음, 정직, 공정 같은 잘 드러나지 않는 미덕이다. 당신이 받은 상이나 돈이 아니다.” 찰스 핸디의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주변인들이 그대의 묘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다고 적기를 바라는가?” 삶에는 성취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건강하게 일상을 가꾸며 좋은 인격으로 거듭나고 있다면 그대의 인생은 이미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