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한상엽

며칠 전에 친언니가 십여 년 만에 이사했다. 언니는 몇 달에 걸쳐 짐을 정리했고 이삿날이 다가올 즈음에는 나까지 언니 집으로 가 ‘일단 다 버려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언니 집은 이사가 끝나고 나서도 버릴 짐이 잔뜩 남았고, 여전히 짐 정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난의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 집만큼은 평소에 짐을 정리해 둬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리 정돈에 소질도 의지도 없는, ‘물건 이고지고 살기 1등 시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리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말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하지만 정리 못 하는 사람은 버릴까 말까 하는 물건 앞에서 어김없이 설렘이 샘솟는다. ‘이건 추억이 깊은 물건인데’, ‘올해는 못 입었지만 내년에는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비싸게 샀는데 버리고 나면 후회하는 거 아냐?’ 등 온갖 합리화를 시작한다. 그 탓에 비장하게 옷방에 들어갔다가도 상념에 젖어 한숨만 쉬고, 서재에 들어가서는 책 탑에 질려 가만히 문을 닫고 나오기 일쑤다.

얼마 전 접한 미니멀리스트 조슈아 베커의 글에는 이런 조언이 등장했다. “옷을 바닥에 두지 마세요.” 괜스레 찔려 집안을 둘러보니 벗어둔 옷들이 방바닥 여기저기에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옷장이 없는 게 아니다. 옷장에 옷을 넣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정리 전문가는 각 물건의 위치를 한 군데 정해둘 것을 권했다. 하지만 정리 못 하는 사람은 정확히 그 반대로 한다. 나라는 사람의 위치만 정해둔 채 대부분의 물건을 손 닿는 곳에 두다 보니 주로 머무는 공간인 식탁과 책상, 소파 및 침대 주변에는 온갖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 과연 이런 내가 정리정돈을 할 수 있을까.

새해가 되고 나서 매일 하는 일 세 가지가 있다. 아침 차려 먹기, 집에서 30분 운동하기, 일기 쓰기다. 신기하게도 나름 잘 지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잘하건 그렇지 않건 일단 하자는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짐 정리도 비슷하게 접근하면 어떨까. 나는 워낙 정리정돈에 젬병이니 잘할 리 없다. 쌓인 짐이 어마어마하기에 단시간에 끝낼 수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한다면 적어도 봄쯤에는 말끔한 집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서툰 솜씨로나마 아침밥을 차리고, 하기 싫다고 투덜대면서도 매트를 깔고 운동하며, 쓸 말이 없어도 자기 전에 일기장을 펼치는 것처럼 짐 정리도 조금씩 차근차근 해 보는 거다.

먼저 책상과 식탁부터 정리했다. 늘 쓰는 공간이기에 나름의 질서를 지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밥 차릴 때마다 쌓인 물건을 밀어두어야 했고, 일하기 전에 책과 필기구를 어딘가로 옮겨놓아야 했다. 그동안 익숙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번거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은 책상과 식탁만 정리했을 뿐인데도 하루가 다 갔다.

다음 날은 싱크대 서랍을 딱 두 개만 정리했고, 그 다음날은 오래된 의약품을 정리해 주민센터 폐의약품 수거함에 넣었다. 또 다음 날은 안 쓰는 가방을 추렸고, 다른 날은 옷이 들어 있는 박스를 꺼내 정리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며 모아둔 화장품 샘플은 모조리 사용기한을 넘겼고, 조만간 살 빠지면 입을 거라며 안 맞는 옷을 보관해뒀지만 살은 결코 빠지지 않았다. 옷도 울고 나도 울고, 짐은 늘고 집은 좁아지고. 설레든 그렇지 않든 한동안 쓰지 않은 물건 앞에서 딱 요즘 날씨만큼 차가워져야 했다.

요즘은 매일 네 가지를 실천한다. 아침 차려 먹기, 집에서 운동하기, 일기 쓰기에 조금씩 버리기가 추가됐다. 거창하게 계획할 필요 없이 잠깐 시간이 나면 서랍 하나만이라도 정리한다. 그 덕에 요즘 나의 애착 아이템은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됐다.

비우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물건 사는 일에도 신중해진다.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꼭 필요하다는 착각에 빠져 무언가를 사지 않으며, 쿠폰에 이끌려 서둘러 장바구니를 채우지 않는다. 생필품을 살 때도 저렴한 반면 양이 많은 묶음 상품 대신, 조금 값을 더 주더라도 그때그때 쓸 수 있게 딱 하나만 산다. 마음 내키는 대로 장 보던 습관을 버리고,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사용해 끼니를 꾸린다. 그동안 돈은 어떻게 아껴 쓰는 건지 아득했는데 짐을 줄이자고 다짐하자 조금씩 지출도 줄고 있다.

조만간 이사할 때는 지금 집의 반 정도 넓이의 집을 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비워야 한다. 물건을 새로 사거나 쌓아두는 일도 자제해야겠지. 아직은 서툰 정리정돈 연습을 통해 새삼 깨닫는 사실은, 정리의 시작은 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비워진 공간에 불필요한 무언가를 다시 채워 넣지 않음으로써 하루에 한 뼘씩은 더 넓게 지낼 수 있다는 것. 빈틈이 있어야 새로운 바람이 들어온다. 이는 비단 정리정돈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