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홍대 앞 거리 건물들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1. 서울 상수동에 사는 직장인 신민수(43)씨는 요즘 홍대 앞을 지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신촌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년이 넘게 마포 생활권에서 살고 있는데 요즘처럼 썰렁한 때가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홍대 앞 주요 상권에 ‘임대 문의’가 붙은 곳이 수두룩하고 대학 때 자주 가던 술집은 대부분 없어졌다”며 “신촌·홍대가 젊은이들로 늦게까지 북적였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2.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김주현(33)씨는 지난해 말 송년회 때 금주를 선언했다. 김씨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사회생활한다고 5년쯤 마셨으면 됐다 싶었다”며 “이제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도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비주류(非酒流)’로 분류돼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술 한잔하자’가 인사말처럼 쓰이고, 소주와 맥주 등 여러 주종을 섞는 ‘폭탄주’ 제조법만 수십 가지에 달한다. 그렇게 남달랐던 한국인의 ‘술 사랑’도 그 거침없던 기세가 꺾인 모양새다. 음주율은 떨어지고 문 닫는 호프집은 늘어가고 있다.

◇문 닫는 호프집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말 크러시(20L)·클라우드(20L) 등 생맥주 제품 2종 운영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롯데칠성은 “주력 제품군에 집중해 효율적인 비즈니스를 전개하겠다”며 “캔과 병 라인에 집중하고 논알코올 맥주와 같은 기능성 맥주를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호프집 등에 납품하는 생맥주가 수요 감소로 사업성이 없다는 얘기다.

호프집 감소세는 통계로 확인된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서울시의 호프·간이주점은 데이터가 공개되기 시작한 2019년 1분기 1만6887개로 집계됐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줄어들다 2023년 들어 회복세를 보이며 그해 4분기 1만6391개로 반등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작년 3분기에는 1만4357개로 나타났다. 2년여 만에 2034개(12.4%) 사라진 것이다.

회식 등 단체 모임 감소와 건강 중시 분위기로 인한 음주 문화 변화가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종로 인근 회사에 다니는 이상준(41)씨는 작년 말 오랜만에 자주 다니던 O 호프집을 찾았다가 폐업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씨는 “종로·광화문 인근 직장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독일식 수제 맥줏집의 대명사였다”며 “20년 가까이 추억이 쌓인 곳이라 이 동네 사람들한테는 이 호프집의 영업 종료가 나름 충격이고 꽤 큰 뉴스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수제 맥주 레스토랑으로 소개해온 이 가게는 2002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23년간 영업했다.

서울시 호프·간이주점 감소 현황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마포구에서 가장 많은 242개가 줄었다. 강남구(162개), 송파구(121개), 강서구(118개) 등에서도 많이 사라졌다.

대학가 상권인 마포구에서 가장 많은 주점이 사라진 것은 MZ세대의 ‘술 안 마시는 문화’ 확산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홍대·신촌 거리는 ‘임대 문의’라는 딱지가 붙은 매장이 즐비하다. 홍대 정문에서 상수역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메인 상권도 공실이 부지기수다. 마포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모(53)씨는 “연세대가 신입생을 송도로 보내고 코로나 이후 대학생도 집단 음주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며 “수요가 줄었는데도 이 동네는 임대료가 높아서 공실이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성인 음주율(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은 1%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최근 5년간만 놓고 보면 57~59%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중 20대의 경우 2020년 64.4%에서 2024년 63%로 내려갔고 30대는 같은 기간 69.2%에서 65.3%로 감소했다. 다른 연령대는 모두 음주율이 올랐는데 20~30대만 떨어졌다. 고위험 음주율(최근 1년간 1회 평균 음주량이 남성은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마시는 비율)을 보면 MZ의 술 기피 현상이 더 뚜렷하다. 20대는 2018년 15.9%까지 가기도 했지만 2024년 처음 한 자릿수(9.9%)로 떨어졌다.

서울 연남동의 논알코올 편집숍 ‘아티스트보틀클럽’에서 손님이 논알코올 음료를 찾아보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취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서

음주 문화 변화의 중심에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라는 새로운 흐름이 있다. 소버 큐리어스는 술을 마시지 않는(sober) 삶에 호기심(curious)을 갖고 의도적으로 술을 줄이거나 끊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헬시 플레저는 말 그대로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소비 행태다. 대기업에 다니는 노은지(33)씨는 “스트레스를 야식과 폭음으로 풀다 보니 취업 이후 5㎏ 넘게 살이 쪘다”며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살을 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버’가 됐고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의 나 자신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노씨의 친구·지인 모임에도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다.

서울 연남동에 있는 ‘아티스트보틀클럽’은 마포 술집 상권 변화상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작년에 문을 연 이 가게는 ‘논알코올 편집숍’이다. 논알코올 맥주뿐만 아니라 논알코올 와인·칵테일 등 전 세계 70~80종의 논알코올 음료를 선정해 팔고 있다. 이재범(31) 대표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는 “소주가 싫은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좋아해서 혼자 논알코올을 직구해 먹다가 사업까지 하게 됐다”며 “해외에는 이 시장이 엄청 큰데,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논알코올 전문 가게는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찾아보고 마셔보는 경험을 한 뒤 온라인 단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애주가인 김도명(37)씨는 최근 들어 술과 논알코올 음료를 섞어 마시고 있다. 하루 술을 마셨다면 이튿날은 마시지 않거나 논알코올을 마시고, 1차에서 술을 꽤 마셨다면 2차에서는 논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식이다. 김씨는 “술을 끊기는 어렵고 음주 습관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려고 시작했다”며 “논알코올 맥주 품질이 계속 좋아지고 있어서 나름 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음주 소비 패턴을 가리켜 ‘지브라 스트라이핑(Zebra Strip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흑백이 이어지는 얼룩말 무늬처럼, 음주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고 상황에 따라 술과 논알코올을 혼용하는 방식이다. 워킹맘 김준희(35)씨도 “임신 기간 논알코올 맥주를 먹고 나서 나름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어 요즘도 기분만 내고 싶을 때는 논알코올을 찾아 마신다”고 말했다.

논알코올 맥주만 있는 게 아니다. 와인과 칵테일도 알코올 없이 즐길 수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MZ는 둘 중 한 명이 비주류

국내 성인의 하루 음주량은 2024년 기준 109.7g으로, 2019년 대비 15.7% 줄었다. 2014년과 비교하면 30.3% 감소했다. 술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24년 독일의 맥주 판매량은 약 83억L로 10년 전과 비교해 13.7% 줄어들었다. 갤럽 조사에서 “술을 마신다”고 답한 미국인은 2023년 약 62% 수준에서 작년 54%로 감소했다. 갤럽이 1939년 미국인의 음주율을 조사한 이래 최저치다. 특히 18~34세 청년의 50%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답했고, 갤럽 조사 최초로 ‘적당한 음주(하루 한두 잔)’도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절반 이상(53%)으로 높아졌다. 10년 전인 2015년(28%)보다 두 배 가까이로 급증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건강에 안전한 알코올 섭취량은 없다”며 사실상 금주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음주는 적은 양이라도 암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정설처럼 여겨졌던 “와인 한 잔은 심장에 좋다”는 통념도 흔들리고 있다. 인류와 함께한 8000년 술의 역사에 비수기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