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 결승에 오른 최강록 셰프. 마지막 미션인 ‘오직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요리’에서 그는 ‘조림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깨두부가 들어간 국물 요리를 내놓았다. /넷플릭스

‘고기나 생선·야채 등을 양념하여 국물이 거의 없게 바짝 끓이는 조리법.’ 조림의 정의다. 흔히 장조림이나 생선조림이 익숙한데, 조림은 단순히 국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재료 속에 간이 깊게 스며들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센 불에 빨리 끓여내는 게 아니라 약불에 천천히 끓인다. 조림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마음을 졸이다’라고 할 때도 쓰는 ‘졸이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런 어원 때문일까.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에서 우승을 거머쥔 최강록이 자신을 “나는 조림인간입니다”라고 말할 때 내게 그 의미는 두 가지로 다가왔다. 하나는 조림 요리에 능숙해 뭐든 조려내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 됐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늘 어딘가 초조해 보이고 긴장해서 어눌하게 느껴지는 그를 표현하는 의미다.

최강록은 ‘흑백요리사2’의 쟁쟁한 셰프들과 경쟁해 우승자가 됐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요리사가 아니다. 마지막 결승에서 대결한 ‘요리괴물’ 이하성 셰프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이하성은 호텔조리학을 전공했고 미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연수를 받고 요리학교를 졸업했으며 덴마크, 미국 캘리포니아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반면 최강록은 ‘마스터 셰프 코리아2’에서 강레오 셰프가 “요리를 어디서 배웠어요?”라고 물었을 때 “만화책 보고 했습니다”라고 했을 정도로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 진학했지만 중퇴했고 군 제대 후 음식점 알바를 하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요리 만화를 본 게 요리 입문의 계기가 됐다.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다 서른이 다 돼 가게를 접고 일본에 가 조리사 전문학교를 나왔지만 귀국해서 연 가게도 적자를 면치 못해 폐업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결국 참치 무역 회사에 들어가 회사원으로 일하다 술김에 지원서를 낸 ‘마스터 셰프 코리아2’에서 놀랍게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생각해 보면 결승에서 만난 백수저 최강록과 흑수저 이하성은 수저 색깔이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하성이 더 백수저처럼 느껴져서다.

최강록이 유명해진 건 전적으로 경쟁 서바이벌 프로그램 덕분이다. 어눌한 말투에 엘리트 코스 출신이 아니지만 남다른 기량을 가진 소년 만화 주인공 같은 서사. 경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좋아하는 주인공의 자질을 그는 갖췄다. 그런 점에서 ‘흑백요리사 시즌1’에 백수저로 출연했던 최강록은 어딘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이미 ‘마스터 셰프 코리아2’에서 우승했다는 전적 때문이지만 최강록이 돋보이는 건 역시 그런 명성이 아닌 맨손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시즌1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시즌2 재도전에서는 ‘히든 백수저’라는 애매한 위치로 시작했다. 백수저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패자부활전을 치르듯 흑수저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여 관문을 통과했다. 어찌 보면 최강록에겐 이것이 더 맞는 옷처럼 보였다.

한국인들은 경쟁 서사를 잘 그려낸다. ‘오징어게임’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서바이벌 장르, ‘피지컬 100’ ‘강철부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리고 아이돌부터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 사례다. 다분히 치열한 경쟁이 내면화된 한국 사회가 밑거름이 됐을 게다. 한국인들은 경쟁한다. 생존하기 위해. 그래서 생존 경쟁을 담은 서바이벌을 잘 그려내고 또 그러한 서사에 열광한다.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해서다. 다수에서 시작해 끝내 단 한 명의 우승자를 남기는 이들 경쟁의 서사는 여러모로 ‘조림’의 요리법을 닮았다. 조리고 조려서 국물을 다 날려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은 재료에 깊은 맛을 더하고 끝내 살아남은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최강록의 ‘조림인간 선언’은 그래서 짠한 면이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렇다 할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가 요리 서바이벌에서 주목된 건 스펙이나 명성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검증받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의 강박이 요리가 좋아 요리를 시작했던 그에게 좋았을 리 만무하다. 시즌2 경쟁에서 그가 보인 모습들을 되새겨보면 그의 이례적인 행보들이 눈에 띈다. 특히 화제가 됐던 ‘무한 요리 천국’이라는 미션이 그렇다. 3시간 동안 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여러 요리를 선보이려 했던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그는 단 하나의 요리에 3시간의 정성을 다 쏟아부어 최고점을 차지했다. 그 모습은 경쟁이 아닌 자신에 대한 온전한 몰입처럼 보였다.

마지막 미션인 ‘나를 위한 요리’에서 최강록은 놀랍게도 모두의 예상을 깨며 ‘조림 요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컴피티션에서 한 번 우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림 음식을 많이 해서 조림인간·연쇄조림마·조림핑 그런 별명들을 얻어가면서, 조림을 잘 못 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사실 공부도 많이 했고요. 저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 좀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경쟁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스펙을 쌓기 위해 ‘척’하는 삶을 선택하곤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스스로를 끝없이 경쟁 속에서 ‘조리며’, 마음 졸이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조림인간이 아니었을까. 최강록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도 와닿아 울림을 만든다. “수고했다. 조림인간. 오늘만큼은 조림에서 좀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