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은 “그룹 기조실장 자리를 그만두고 학교폭력 예방에 뛰어든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아들 대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1995년 6월 8일 중국 베이징 출장길에서였다. 김종기(79) BTF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은 당시 모 그룹 기조실장이었다. 북한과의 사업을 위한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베이징에서 귀국하는 날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잠자리가 뒤숭숭하고 이상한 불안감에 잠을 못 이뤘다. 4시쯤 됐을까, 아직 깜깜했다. 평소 집에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날따라 왠지 전화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에 걸친 정적을 깨뜨린 흐느낌에 이어 통곡이 터져 나왔다. 아내가 간신히 말했다. “대현이가 죽었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빠져나갔다. 침대에 쓰러졌다. 침도 삼킬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례를 3일장이 아닌 2일장으로 서둘러 치르고 화장했다. 재는 최대한 먼 바다에 뿌렸다. 아내가 자주 찾을 수 없도록.

가해 학생들이 또다시 폭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려지길 원하지 않던 바람은 ‘내 아이의 죽음을 알려서라도 학교폭력(학폭)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해 8월 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학폭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파장은 엄청났다. 학폭을 다룬 기사와 방송이 쏟아졌다. 국회에서는 교육특별위원회를 열어 학폭을 이야기했고, 대통령은 학폭 근절을 지시했다.

기세를 몰아 학폭을 막기 위해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만들었다. 자원봉사자와 성금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임의 단체로는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웠다. 1995년 11월 1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학폭을 알리고 예방·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NGO(비정부기구)로, 푸른나무재단(BTF)의 전신이다.

BTF가 30주년을 맞았다. 학폭이 지금처럼 사회적 개념으로 정립되지 않았던 30년 전과 지금은 뭐가 달라졌고, 뭐가 그대로일까. 김 명예이사장을 서울 서초동 BTF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 김대현군의 영정 사진. /BTF 푸른나무재단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다

-기자회견을 결정한 계기가 가해 학생들이 학폭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던 8월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딸이 ‘대현이를 때렸던 아이들이 이 땅에 없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대현이를 괴롭혔던 학생들이 대현이의 친구 둘을 불러 또다시 폭력을 휘둘렀다. 한 명은 기절했고 다른 한 명은 팔이 부러졌다’더군요.”

-장례 후 만나 반성문을 쓰게 한 학생들이지요.

“어떤 녀석들이 대현이를 괴롭혔는지,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알고 싶었어요.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햄버거집에서 만났어요. 녀석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대현이가 죽을지는 몰랐어요’라며 죄인처럼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걸 보니 측은지심이 생겼어요.”

-반성문을 받고 끝내려 했나요.

“애들이 손을 벌벌 떨면서 반성문 쓰는 걸 보면서 ‘처벌은 내 몫이 아니다, 하나님 몫이다’ 싶었어요. 내가 얘네를 처벌한다면 악순환을 낳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딸의 말을 듣고는 머릿속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두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처벌에 실패했죠.

“피해 학생들의 진술이 필요했지만, 부모님들이 진술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대학 진학이 더 중요하다’ ‘보복도 무섭다’며 ‘대현이 아빠 혼자서 하라’고 했습니다. 학교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폭은 학교와 가정, 학생이 모두 얽힌 구조적인 병폐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학폭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재단 인가가 나지 않은 이유가 ‘학교폭력’이 이름에 들어가서였다고.

“서울시 청소년과 담당 과장이 ‘설립 인가가 나지 않는 이유가 서울교육청의 반대 때문’이라고 했어요.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학교 이미지를 안 좋게 한다, 학생들이 겪는 폭력은 학교 밖 불량 청소년에 의한 것이니 인가해줄 수 없다’는 거였죠. 그는 ‘학교폭력 대신 청소년폭력이라고 바꾸면 될 수도 있는데…’라고 흘리더군요. 재단 출범식을 하루 앞둔 10월 31일, 고민 끝에 ‘학교’를 두 줄로 긋고 그 위에 ‘청소년’이라고 수정했습니다.”

-교육부가 학교폭력이란 용어를 처음 공식 인정한 건 9년 뒤인 2004년, 학교폭력근절과를 신설한 건 17년이 지난 2012년이죠.

“학폭이 뜨거운 이슈로 대두되는데도, 교육부는 학교 밖 일로 치부했습니다. BTF가 시민 47만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입법 청원을 냈습니다. 마침내 2004년 3월 학폭법이 제정됐고, 여름부터 비로소 교육부 모든 공문과 자료에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정식으로 등장했습니다. 교육부는 인력과 예산 타령으로 일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2011년 대구에서 권승민군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터지자 비로소 교육부 내 학교폭력근절과가 신설됐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출범했는데 기사가 한 줄도 나지 않았다고요.

“재단이 출범한 1995년 11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이 구속됐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으로 전 언론이 마비됐죠.”

-잘 나가던 그룹 기조실장 자리를 그만두고 학폭 예방에 뛰어들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결정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나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세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BTF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라면 너무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습니다.”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은 “어려운 형편에도 우리를 후원해주는 이름 없는 후원자들에게 감동받는다”고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황당한 만남, 아름다운 인연

김 명예이사장이 펴낸 ‘아버지의 이름으로’(은행나무)는 학폭으로 아들을 잃은 아픔과 이후 학폭 예방에 헌신한 자전적 기록이다. 책에서 그는 “공익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을 운영한다는 건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형이하학적 곤란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힘의 원천은, 역시 진실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형이상학적 기쁨이다”라고 했다.

-형이하학적 곤란이란 결국 돈인가요?

“돈과 사람이에요. 우리는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립니다. 후원자를 늘리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1980년대 물방울 다이아몬드 사건으로 유명한 ‘대도’ 조세형이 찾아왔다고요.

“1990년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BTF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 돕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어요. 후원금 50만원을 내놓고 ‘대도 조세형이 학폭 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면 효과가 크지 않겠느냐, 열여섯 살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사람이니 학생들도 느끼는 바가 있지 않겠느냐’더군요. 강연회는 제법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일본에서 절도를 벌이다 검거됐습니다. 찾아와 한 이야기가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졌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 사건’을 일으킨 장영자도 왔었다고.

“조세형이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실제 주인이 장영자였잖아요. 쉼 없는 달변으로 세계 문화를 동서고금에 걸쳐 장황하게 풀어내더니 대만 도자기 이야기로 진입했어요. 장제스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와 친분이 있는데, 쑹 여사에게 선물받은 도자기가 집에 많은데 수집가에게 팔면 거액이 들어온다, 그 작업을 위해 3억원이 필요하다, 도자기를 처분해 한 달 이내 6억원으로 늘려 재단에 후원할 테니 돈을 빌려달라는 결론이었죠. 몇 달 뒤 도자기 사기로 구속됐다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가수 윤도현씨는 홍보대사를 자원했다고요.

“탤런트 신애라씨 소개로 사무실에 찾아왔어요. ‘학교폭력은 안 된다, 이 뜻있는 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수 성시경씨도 홍보대사를 맡고 있죠.

“대현이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어요. 제가 삼성전자 홍콩 법인장이던 시절, 시경이 아버지는 삼성물산 홍콩 법인장이었어요. 집도 앞뒤로 살았죠. 지금도 홍보대사지만, BTF 초창기 지체 장애 학생들과 국토 순례를 할 때도 강원도 구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 마음이 고맙죠.”

-이름 없는 후원자들에게 감동받는다고요.

“구순이 다 되신 강정숙 할머님은 TV 방송에 나온 제 이야기를 듣고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군청과 도립대를 청소하며 여섯 남매를 혼자 키우셨고, 이미 다문화 가정과 장애인 후원으로 쪼그라든 연금을 쪼개 우리를 후원하세요. 힘들 때마다 나를 되돌아보고 흔들리지 않도록 바로잡아주는 분입니다.”

-금 100돈을 기부한 건설 현장 노동자 박만순씨도 있죠.

“방송을 보고 감동받아 인터넷으로 저에 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보고,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사서 밤새워 읽고 눈물을 흘렸대요. 그리고는 불쑥 ‘순금 100돈을 기부하겠다’는 거예요. 그가 쉬는 날인 토요일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기부하기로 작정하니 기분이 좋아 일하면서도 싱글벙글하게 된다면서, 앞으로도 후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와는 의형제를 맺어 형님·동생 하면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씨가 기부한 금을 고교 동창이 사줬다고요.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경복고 동기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내가 그 금 다 사도 되겠어? 금값에 2000만원을 올려서 5000만원을 내도 괜찮을까?’ 너무 고맙다고 답했죠.”

-동기분이 금을 아직 가지고 있을까요? 요즘 금값이 엄청 올랐던데.

“모르겠어요. 묻기도 뭣하잖아요(웃음).”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한 학폭

30년 전 좁은 오피스텔에서 5명이 상담 전화를 하면서 시작한 재단은 반듯한 건물에 직원 380명과 전임 강사 550명, 자원봉사자까지 1000여 명이 일하는 작지 않은 조직으로 성장했다. 사업 분야도 상담과 교육을 기본으로 비폭력 문화 운동과 장학 사업, 국제 활동을 아우른다. 재단 이름도 2019년 ‘청예단’에서 ‘BTF 푸른나무재단’으로 바꿨다. 김 명예이사장은 “시대와 사회가 변했기에 학폭 양상도,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재단명을 바꾼 이유는 뭔가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들어 있는 ‘폭력’이란 단어가 어둡고 무겁고 부정적이죠. 이름이 길어서 그런지 ‘예방’을 빼먹고 ‘청소년폭력재단’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지으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어요. ‘전경련’ ‘경실련’처럼 약자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해 ‘청예단’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10년 이상 홍보했지만 연예인단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2019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을 계기로 밝고 긍정적이면서 미래 지향적이고 세계화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았습니다. 일반 공모를 통해 200여 명칭을 검토해 ‘BTF(Blue Tree Foundation) 푸른나무재단’으로 정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뭐가 가장 크게 바뀌었나요.

“학폭 때문에 자식의 앞길이 막힌다는 걸 부모들이 알아요. 아이들도 알아요. 그렇다 보니 물리적인 학폭은 많이 줄었어요. 대신 사이버 학폭이 늘었어요. 현재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학폭 유형입니다. SNS(소셜미디어)에서 보이지 않게 열 명이 한 명을 죽여요. 24시간 공격하고, 전학 가도 ‘찌질이가 너네 학교로 갔다’며 고통받게 하죠.”

-학폭이 다시 증가세라고요.

“한때 20%가 넘던 학폭 발생률은 꾸준히 감소하다 다시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많았던 시기부터 사이버 학폭이 많이 늘었죠. SNS·유튜브 등 온라인 활동을 강화하는 이유입니다.”

BTF가 카카오임팩트와 협력해 진행하는 청소년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사디세)’은 온라인 폭력 예방과 올바른 디지털 공간에서 의사소통하는 법, 온라인 정체성과 저작권 등을 가르친다. 삼성·교육부·경찰청 등과 협력해 청소년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친사회적 역량 강화 교육 사업 ‘사이버 정글 가디언 푸른코끼리’도 운영한다. 청소년들이 카카오스토리에 고민을 올리면 다른 청소년들이 공감과 위로의 댓글을 다는 ‘아주 사소한 고백(아사고)’은 론칭 이틀 만에 구독자 수 75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학폭 사례·뉴스·법률 정보 등을 1분 이내 영상으로 제공하는 ‘1분 유스(Youth)’와 학생들이 직접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푸른나무시네마’로 나눠 콘텐츠를 제공한다.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나요.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김시원(가명) 군은 학폭에 시달리다 투신을 시도해 척추와 다리에 중상을 입었어요. 10년 넘게 상담·의료·장학 지원 등 200회 이상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고, 지금 많이 회복해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BTF 상담전화가 전국에서 걸려오는데, 긴급한 상황에는 아이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직접 출동하고 있어요. 학폭 피해나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가고 꿈을 포기 않도록 장학금, 멘토링, 문화 체험 등을 지원하는 ‘대현장학사업’도 하고 있죠.”

-학폭 사건에서 소송도 늘었다고.

“가해 학생의 부모가 ‘피해 학생이 원인 제공자’라며 맞고소해요.”

-최근 미성년자 시절 범행 사실이 알려진 배우 조진웅씨의 경우처럼 죗값을 치렀다면 불이익 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죗값을 치렀어도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면 책임을 져야죠. 학폭에 대해서는 한 번 잘못하면 사회에서 퇴출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도록 엄격한 적용이 필요합니다.”

-30년 동안 바뀌지 않은 건 뭔가요.

“우리 사회의 폭력 불감증은 여전한 것 같아요. 자기 주장을 극한적으로 끝까지 해요. 너와 나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 나와 다르면 ‘나쁜 놈’이라는 갈등 관계가 사회에 만연해요. 학교 교육의 우선순위를 지덕체(智德體)에서 체덕지(體德智)로 바꿔야 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룰을 지키고, 패자는 승자에게 박수 쳐주는 걸 배워야 해요. 에너지도 발산하고요. 독일 청소년복지재단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청소년이 사회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활용하는 주 프로그램이 체육이더라고요. 우리가 초등학교 정도라도 체덕지로 교육 프레임을 바꾸면 학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맨 끝에 “대현이를 만날 날이 머잖아 오리니”라고 썼습니다. 대현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듣고 싶으신가요.

“대현이가 나한테 뭐라고 할지 내가 알아요. ‘아빠, 고생했어요. 많은 아이들을 살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