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재 요리사가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 백수저로 출연한 임성근(59) 셰프. 최종 7인에 오른 그에게 최종 우승자인 최강록 셰프나 준우승한 ‘요리 괴물’ 이하성 셰프를 능가하는 환호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발표된 TV·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통합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그의 유튜브 채널 ‘임짱TV’는 한 달 만에 구독자가 35만명에서 91만명으로 증가하면서 골드버튼(유튜브에서 구독자 100만명을 넘긴 채널에 주는 상) 획득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은 푸석하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는 “촬영·인터뷰 등 각종 스케줄에 반찬 브랜드와 식당 오픈 준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져 목이 부었다”면서도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흑백요리사보다 한식대첩 훨씬 힘들어
-인기를 실감하나요.
“어제 촬영하다가 잠깐 바깥바람 쐬려고 나갔는데, 젊은 사람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몰려들어서 15분 넘게 촬영장에 돌아가지 못했어요.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중년 남성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젊은 층에게 인기인 이유가 뭘까요.
“제가 돼지갈비·무생채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밥반찬을 가지고 나왔잖아요. ‘투박한 한식으로 미쉐린 스타 셰프들의 화려하고 멋진 파인다이닝 요리를 이긴다고?’ 젊은 친구들이 이런 모습에 희열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임짱, 오만소스좌, 사짜, 임성면, 아재 맹수, 0평 외톨이, 테토성근, 빨리다이닝 등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많잖아요. 뭐가 제일 마음에 드나요?
“‘임짱’과 ‘오만소스좌’ 둘이요. 제가 집밥 비법 알려주는 종편 교양 프로그램을 8년 정도 했는데, 주 시청자인 어머님들께서 ‘임성근이 알려주는 레시피가 짱(최고)이야’라며 붙여주신 별명이 임짱입니다. 오만소스좌는 ‘흑백 팀전’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 만들 수 있는 소스가 5만 가지 된다’고 말했다가 붙여진 별명인데, 그게 딱 와 닿더라고요.”
흑백요리사2 제3라운드 ‘흑백 팀전’은 흑수저와 백수저 요리사 전원이 각각 한 팀이 돼 대결, 승리한 팀은 전원 생존하고 패배한 팀은 전원 탈락하는 라운드였다. 임 셰프는 “내가 소스를 5만 가지는 안다” “심사위원이 100명인 만큼 대중 요리로 가야 하는데 내가 전문”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밀고 나갔다. 그는 정확한 계량 없이 양념을 병째 들이붓거나 마늘을 왕창 털어 넣는 등 백수저팀 요리사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완성된 소스를 맛본 팀원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호평했고, 대결에서도 백수저팀이 대승을 거뒀다. 그가 오만소스좌라는 별명을 얻은 계기다.
-정말 한식 소스가 5만 가지나 있나요?
“한국말에서 5만은 ‘엄청나게 많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표현이잖아요. 얼굴 찌푸리면 ‘왜 그렇게 오만상을 쓰냐’ 하고, 물건이 다양하고 잡다하면 ‘오만 가지를 다 챙겼다’고 하고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인데, 괜히 다섯 손가락을 쫙 펴면서 말했다가 뜻이 와전됐네요(웃음).”
-요리업계 대선배인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의 칼을 마음대로 썼다며 ‘건방지다’고 좋지 않게 본 시청자도 있습니다.
“제가 ‘형님, 칼 좀 쓰겠습니다’고 여쭸더니, 후 사부께서 ‘써’라고 허락해 주셔서 가져다 쓴 거예요. 방송에서는 이 부분이 편집돼 제가 몰래 갖다 쓴 걸로 나왔죠.”
-한식대첩 3(2015년)에 서울·경기 대표로 나가 우승했죠. 한식대첩과 흑백요리사, 뭐가 더 힘들었나요.
“제가 숨도 안 쉬고 대답해 드릴 수 있어요. 한식대첩이 다섯 배는 더 힘들었어요. 아는 맛이 무섭다고, 누구나 다 아는 한식이라 힘들었어요.”
-한식대첩 때도 백종원 대표가 심사위원이었습니다.
“한식대첩에 이어 한식대첩 고수외전(2018년), 흑백요리사2까지 세 번이나 제 음식을 심사하셨죠. 이런 경우는 유일무이할 것 같아요.”
-결선 진출자를 뽑는 5라운드 ‘무한 요리 천국’에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다섯 가지 요리를 만들었죠. 일부 네티즌은 ‘만들 수 있는 요리 개수는 제한하지 않되 요리 하나로 최고점을 받는 대결이었는데, 임 셰프는 모든 요리에서 받은 점수를 합산하는 걸로 잘못 이해한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갈비에 곁들인 개성나물처럼 요리 수준으로 손 많이 가는 가니시(주 요리에 곁들이는 음식이나 장식)까지 합치면 일곱이었어요. 요즘 주목받는 ‘파인다이닝 한식’ ‘모던 한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한식이 아니잖아요. 애초 흑백요리사에 나오기로 결심한 건 정통 한식을 전 세계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최대한 많은 요리를 만들었던 이유입니다. 결승에 올라갔다면 한식으로 메인 하나에 가니시 열 개를 했을 거예요.”
◇시즌3에 다시 부르면?
임 셰프는 요리학교나 대학 조리학과를 나오지 않고 오로지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며 경력과 명성을 쌓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뛰쳐나와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재료 손질 등 허드렛일로 조리 인생을 시작했다. 2010년 한식 조리기능장이 됐고, 같은 해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칠레 산티아고 세계조리사총연맹 연회 주·총괄 주방장, 베이징 주중 대사관 국빈급 만찬 메인 총괄 셰프로 참여해 해외 무대에서 한식 연회를 이끌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와 식당에 들어간 이유는.
“집이 시골이라 농사를 도와야 했고, 가세가 좀 기울었던 상태였어요. 한창 사춘기라 ‘이런 일 하기 싫어, 나는 돈 벌 거야’라는 마음이 들었나 봐요. 집을 뛰쳐나와 서울 용산 ‘서울가든’이라는 식당에서 석 달인가 일했는데, 가출 신고를 받은 경찰에 붙들려 집에 돌아왔어요. 고등학교 입학하고 두세 달 있다가 서울가든에 다시 갔어요. 거기서 열아홉 살까지 일하다가 설 명절 하루 앞두고 3년 만에 귤 한 상자를 사 들고 집에 돌아갔어요. 처마 밑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아무 말씀 없이 쳐다보시던….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재료를 숨겨뒀다가 몰래 칼질 연습을 했다면서요.
“그때는 주방에 들어가고 3~5년은 칼을 안 줘요. 채소 손질하다가 썩은 무 같은 게 나오면 숨겨놨다가 남들 자는 새벽에 주방에 나와서 칼질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주방장님 칼이 어린 눈에도 좋아 보이는 거예요. 주방장 칼로 몰래 연습하다가 혼도 많이 났어요. 또 다른 식당에서는 주인 할머니가 매일 새벽 4시 남대문시장에 장 보러 가셨는데, 따라다니면서 장 보는 법을 배웠어요. 잠자고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연습한 끝에 열아홉 살에 주방장 자리에 올랐죠.”
-한식은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데.
“식당을 120곳 넘게 거쳤어요. 냉면, 갈비, 한정식…. 안 해본 한식이 없어요.”
-왜 그렇게 많은 식당에서 일했나요.
“욕심이라고 해야 되나요? 한식은 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어요.”
-식당 솜씨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나요.
“한식당이나 백반집에 가면 반찬으로 나온 나물을 먼저 봐요. 딱 보기만 해도 언제 무쳤는지 알죠. 저만의 맛집 평가 기준은 나물이나 겉절이를 오전에 무쳐서 점심 장사 때 팔면 ‘합격’, 저녁까지 팔면 ‘보류’, 다음 날까지 팔면 ‘탈락’입니다. 나물은 소금·물엿 등 간이 들어가면 삼투압에 의해서 수분이 빠지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변질돼요. 무친 지 한참 된 나물을 내놓고 손님 없다 그래요.”
-먹으러 들어갔다가 조언도 해준다면서요.
“제가 오지랖이 넓어가지고 먹다가 말씀드려요. 주인이 받아들이면 좋고 안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제 유튜브 채널에도 실전 레시피를 다 올려놨어요. 힘들고 영세한 식당 주인들에게 진짜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한식의 달인이면서 본인 식당은 없네요.
“관여했던 식당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문 닫았습니다. 2월 말~3월 초 오픈을 목표로 경기도 파주에 식당을 준비 중이에요. 한 건물에 식당 두 곳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한 층은 짜글이 전문점, 다른 층은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박포갈비를 주력으로 하는 갈비 전문점으로 꾸밀 겁니다. 한식대첩에 함께 출연한 한식 명인들과 함께 전국 팔도 전통 반찬을 선보이는 브랜드 ‘한식대찬’도 얼마 전 론칭했습니다. 저는 개성나물과 육전, 그때그때 제철인 식재료를 이용한 반찬을 선보입니다.”
-흑백요리사1에 나왔다가 시즌2에 다시 나온 최강록 셰프처럼, 시즌3에 재도전할 생각은 없나요.
“불러만 주면 나갑니다. 육개장·갈비탕·제육볶음·김치찌개…. 한국인이 흔히 먹는 음식으로 승부할 거예요. ‘이게 한식이다’ 보여주고 싶어요.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요. 시즌2에서는 못했던 음식에 얽힌 스토리까지 충분히 얘기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