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마주리의 ‘블랑 세서미(하얀 참깨)’ /마주리

참기름은 음식의 풍미를 완성하는 식재료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인류 역사 속에서 참기름은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고대에 참기름은 신성한 기름으로 여겨졌다. 고대 페르시아와 이집트에서 참기름은 신전의 램프를 밝히는 기름이자 제단에 바치는 향유로 쓰였다. 불꽃 위에서 퍼지는 고소하고 따뜻한 참기름 냄새는 신과 인간을 잇는 향의 언어였다. 인도 전통 의학 아유르베다에서는 지금도 참기름을 ‘틸라 타일라(Tila Taila)’, 즉 ‘모든 기름의 여왕’으로 부른다. 몸을 데우고 피부와 근육, 관절을 부드럽게 하며 생명력을 보존하는 기름으로 여겨져 왔다. ‘젊음의 샘(Fountain of Youth)’이라는 별칭은 여기서 나왔다.

참기름은 향수로도 쓰였다. 고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참기름은 ‘캐리어 오일(carrier oil)’로 사용됐다. 캐리어 오일은 향을 희석하고 안정시키며 피부에 오래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참기름은 산패가 느리고 향을 잘 품는 데다 피부에 오래 남는 특성이 있어 이에 적합했다. 몰약·유향·계피·카다몸 같은 귀한 수지와 향신료를 참기름에 담가 천천히 데워 향을 우려냈다.

한국에서 참기름은 특히 독자적인 위상을 지녔다. 가장 좋은 진짜 기름이라는 뜻으로 진유(眞油)로도 불린 참기름은 조리유이자 약이었고, 의례의 향기였다. 참깨는 삼국시대 이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부터 참기름을 짜는 장인이 존재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면 제사 음식에서 빠지는 법이 없었다. ‘동의보감’에는 참기름이 살갗의 독을 풀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상처를 아물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유럽의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세서미(sesame·참깨)’를 ‘향 노트(향을 구성하는 개별 향취)’ 중 하나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니치(niche)는 ‘틈새’라는 뜻으로, 니치 향수란 대중적 향수와 달리 희소성 있는 고급 원료를 사용해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향을 추구하는 향수를 말한다. 향수에서 참기름은 너티(nutty·견과류의 고소한 향), 토스티드(toasted·불에 살짝 그을린 구수한 냄새)한 면모를 느끼게 한다. 주로 바닐라, 우디 노트(나무 향), 화이트 플로럴(꽃향), 머스크(사향)와 결합해 향에 깊이와 따스한 온도감을 선사한다.

아시아 시장이 성장하면서, 아시아에서 오래도록 익숙하게 ‘좋다’고 느껴온 향의 문법이 글로벌 조향 언어로 편입되는 셈이다. 참기름은 오래된 전통의 향이자, 동시에 세계가 새롭게 발견하는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