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는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공개 이후 3주 연속 국내 1위를 지켰고, 공개 첫 주에는 시청 수 550만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부문 TV쇼 1위에 올랐다.
인기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화면 바깥으로도 이어진다. 출연 셰프들의 식당은 예약과 웨이팅 대란이다. 외식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의 흑백요리사2 출연 셰프 매장 예약 건수는 방영 전보다 3.5배 늘었다. 서점가도 들썩인다. 예스24에서 셰프들의 책이 포함된 가정·살림 분야 판매량이 전월 대비 27.7% 증가했고, 교보문고에서도 시즌2 공개 이후 약 3주간 요리 도서 판매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5% 늘었다. 말 그대로 흑백요리사 신드롬이다.
◇당신도 심사위원이 될 수 있다
이 신드롬은 여타 경쟁 예능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흑백요리사는 시청자가 구경으로 끝내지 않아도 된다. 세트장이 곧바로 동네 골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 심사위원이 안대를 쓰고 맛을 가늠하던 그 순간을, 시청자는 예약 앱을 켜고 대기표를 뽑으면서 직접 따라 해볼 수 있다. 내가 좋아했던 셰프의 서사가 과장이었는지, 내가 싫어했던 장면이 편집의 마법이었는지, 혀끝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때 식당 방문은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부분 체험이다. 내가 보는 요리 쇼는 결승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방송이 만들어낸 경쟁의 여운은 줄을 서는 시간과 메뉴판 앞의 선택, 식탁 위의 평가로 이어진다. 다른 오디션은 투표로 끝나지만, 흑백요리사는 레스토랑 방문 인증샷으로 연장된다.
◇블록버스터 요리 쇼의 결정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요리의 철인(아이언 셰프)’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후지TV가 만든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 인기를 끌었고, 미국판까지 제작됐다. 철인과 도전자가 하나의 주재료로 1시간 동안 승부를 겨루는 일대일 대결이 기본 구도다. 흥미로운 연결 고리도 있다. 흑백요리사 시즌 1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는 2010년 미국에서 열린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시즌8’의 우승자이기도 하다.
국내 요리쇼는 아이언 셰프를 절묘하게 비틀며 진화했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아이언 셰프의 일대일 대결을 냉장고와 15분이란 제약 속에 압축해서 보여준다면 ‘흑백요리사’는 아이언 셰프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동시에 수십 개씩 터뜨리는 블록버스터다. 100명의 요리사가 출연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은 시청자를 흥분시킨다. 시즌2는 판을 더 키웠다. 한 가지 재료로 반복 경쟁을 이어가는 앞 시즌의 무한 요리 지옥에 이번에는 무한 요리 천국을 더했다. 육류·생선·채소·과일·조미료까지 500여 가지 식재료로 채운 무한의 팬트리(수납 공간)를 열어두고, 180분 동안 심사위원의 최고점을 향해 요리사들이 계속 도전하게 만든다.
◇요리로 끝까지 간다는 역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2는 논란거리를 지우고 장점을 살렸다. 시즌 1에서 “맛보다 장사 수완 대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식당 운영 미션은 과감히 삭제됐다.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지 PD는 “결국 요리로 끝까지 가보자가 이번 시즌의 콘셉트”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결정은 대중음식을 지우고 파인다이닝 중심으로 흘러가는 결과를 낳았다. 시즌 1의 식당 미션은 비판도 받았지만, 동시에 ‘억수르 기사식당’이나 ‘방송국도 줄 서는 식당’ 같은 대중식당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틈이기도 했다. 많이 파는 것이 미덕인 무대에서는 쌈장파스타도, 불고기도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요리로 끝까지 간다’는 말은 장르 규칙을 대중 음식과 멀어지게 만든다. 운영 게임과 팀 변수를 덜어낼수록 승부는 한입에서 드러나는 차이로 집중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증명하는 것은 대개 파인다이닝이 오래 추구해온 방식, 즉 온도와 텍스처(식감), 소스의 농도, 칼질의 균일함 등으로 정리되기 쉽다. 흑이든 백이든, 끝까지 요리로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모두가 결국 같은 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시즌2는 계급 전쟁이라기보다 정교함 전쟁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외식업계에서는 흑백요리사가 외식 전반이 아니라 고급요리와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만 증가시켰다는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경쟁 구조 자체가 그쪽으로 쏠리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흑수저와 백수저를 막론하고 승리하기 위해선 섬세한 요리 기법을 쓰고, 핀셋으로 허브를 올리며 맛의 레이어(층위)를 쌓아야 한다. 장사를 걷어냈더니, 그 자리에 기술만 남아버린 셈이다. 요리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기획 의도가 역설적으로 요리의 장르를 경연용 고급 요리로 획일화시킨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쇼가 끝난 뒤의 허기
셰프들을 몰아세우는 힘은 시대와 나라를 건너 공통이다. 현대 요리의 아버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이미 100년 전 자신의 저서 ‘요리의 길잡이’ 서문에서 이런 현상을 예견하며 한탄했다. “과도한 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 혹은 새롭다고 불리는 요리를 요구하는 일이 지극히 흔한 일종의 광증이 되었다… 참신함! 그것이 지배적인 외침이다.” 그는 손님들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맞추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얼마나 많은 기발한 묘기를 부릴 수밖에 없었던가?”라고 반문했다.
흑백요리사는 에스코피에가 말한 그 ‘기발한 묘기’의 정점에 도달했다. 새로움에만 집착하는 현상은 이제 부유층에서 시청자에게까지 번져가는 것일까. 이런 부분 때문에 이번 시즌이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명 셰프들에게 “최후의 만찬으로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으면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21세기 미식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고 평가받는 페란 아드리아와 같은 요리 대가들조차 결국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나 ‘단순한 빵과 치즈’ 같은 소박한 음식을 말한다. 출연자 정호영 셰프가 생맥주 한 잔 하고 푹 자고 싶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먹 쥐고 긴장하며 시청한 화려한 쇼가 끝난 뒤, 결국 따끈한 국수나 한 그릇하고 싶어지는 건 아마 그래서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