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서 작은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요즘 수입 삼겹살 원가는 ****원 정도인데 너무 비싸게 파네”라거나 “술 많이 시킬 테니 고기는 원가로 달라”고 말하는 손님이 부쩍 늘어서다. 그는 “요즘 각종 원재료에 임차료·인건비·유통비가 다 올라 힘든데, 손님들마저 자꾸 단순 재료비 개념의 원가를 이야기하니 폭리업자가 된 것 같아 억울하다”고 했다.
물가가 미친 듯 뛰며 모두가 고통받는 지금, 원가(原價) 논란이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다. 소비자 사이에 원가 따지는 문화, 즉 ‘내가 지불하는 이 가격이 정당한가’라는 의심이 싹트면서다.
최근 유튜버 ‘제로비’는 특급 호텔에서 파는 18만원짜리 케이크의 원가가 약 3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제빵 명인이 해당 케이크를 입수해 뜯어보고 프랑스산 밀가루와 고급 초콜릿 등으로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본 결과라고 했다.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통상 재료비를 가격의 30% 선에 맞추는 요식업계 관행에 비춰 지나치게 비싸다” “원료를 단품으로 사와 이 정도지 업소용 도매가라면 원가는 훨씬 더 쌀 것”이라고 했다. 반면 “숙련된 장인의 기술과 디자인 개발비, 마케팅 비용, 브랜드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가격은 아니다” “사치재 가격은 공급자가 제시해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그만”이란 반박도 나왔다.
지난해 여름엔 또 다른 유명 유튜버가 서울 성수동에 팝업 베이커리를 열고 ‘990원 소금빵’을 선보여 인파가 몰렸다. 이를 계기로 빵 원가 논란이 점화됐고, 소금빵을 3000~4000원대에 파는 다른 빵집들이 “990원은 인지도를 앞세워 박리다매해야 수익 창출이 가능한 가격”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그 빵집은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한 죄’로 문을 닫았다.
최근 대표적 서민 음식인 김밥 평균 가격이 3700원으로 오르면서 일부 주부들 사이에서 ‘김밥 직접 싸보고 원가 따지기’ 챌린지가 일고 있다. 김밥집 사장들은 “누군가 나와서 ‘990원 김밥’ 내놓기만 해 봐라. 다 뒤집어엎겠다”며 부글부글한 분위기라고.
한 떡집 사장은 선제적으로 ‘꿀떡 한 팩당 원가’를 쌀값부터 가스료, 카드 수수료, 포장비까지 따져 정밀 계산, 순익이 얼마나 적은지 증명해 보이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 뒤엔 작년 5월 대선 유세 당시 이재명 후보 발언의 여파가 컸다. 그는 “한 잔에 8000~1만원인 커피의 원가는 120원”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자영업자 커뮤니티나 각종 정치·경제 유튜브에선 아직도 이 ‘120원 커피’ 발언이 현 정부의 돈 풀기 정책이나 ‘호텔 경제학’ 등과 맞물려 회자된다. 대선 직후 붕어빵과 편의점 도시락 원가 등을 분석하는 유튜버 제로비가 채널을 열어 순식간에 구독자 수십만 명을 확보하고 비슷한 콘텐츠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원가에 예민해진 건 우리만은 아니다. 불안한 국제 정세와 경제 환경 탓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굳어지며 세계적 유행이 됐다. 2024년 말 380만원짜리 프랑스제 디올백의 하청업체 납품 원가가 단 8만원이라는 외신 보도가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는 국내에서 외국 명품 소비자에 대한 혐오로도 번졌다.
이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룰루레몬의 100달러짜리 레깅스의 공장 생산가는 5~6달러”라거나, 나이키·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의 원가를 까발리는 콘텐츠를 잇달아 올려 글로벌 원가 논쟁은 물론 미국발 관세 전쟁을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부는 전기·수도 같은 필수 공공재는 원가를 공개하고 공급가를 통제한다. 과거 공공 아파트 분양가나 통신비에 대해서도 일부 원가 공개가 이뤄진 적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시장 경제에서 원가 구조는 영업 기밀에 해당하므로 공개가 의무도 권장 사항도 아니다. 오히려 원가를 들어 가격 인하를 압박하면 시장을 왜곡해 부작용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활 물가 인플레가 계속되는 한 원가 논란은 틀어막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부 계층이 누리는 사치재나 생산·유통 구조가 복잡한 물품은 원가를 단순 비교하기 어려워 논란으로 번지기 쉽지 않다. 반면 원가를 따져 보기 쉬운 먹을거리 등 단순 품목을 둘러싼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 소비자 간 갈등만 증폭될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