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엣샹동

연말연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술은 샴페인이다. 우리는 흔히 기포가 있는 와인을 모두 샴페인이라 부르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샴페인은 오직 프랑스 북부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프랑스 정부는 샹파뉴라는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포도 품종부터 재배 방식, 제조 공정까지 법으로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덕분에 샴페인은 모두 고급이다. “맛없는 프랑스 와인은 있어도, 맛없는 샴페인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샴페인이 연말연시의 주인공이 된 계기는 프랑스 역사와 맞물려 있다. 프랑스의 기원이 되는 프랑크 왕국 초대 왕 클로비스가 496년 크리스마스 무렵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샹파뉴 중심 도시 랭스(Reims)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세워진 랭스 대성당에서 역대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다.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랭스가 있는 샹파뉴 지역의 와인은 프랑스 왕실의 와인으로 지정됐다.

영원할 것 같았던 샹파뉴 와인의 위상에 위기가 닥친다. 태양왕 루이 14세 때다. 왕의 주치의가 “샹파뉴보다 부르고뉴 와인이 건강에 더 낫다”고 했다. 그는 “샹파뉴 와인은 탄산이 많아 위장에서 소화불량을 유발하고, 신경을 자극해 통풍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당시 샹파뉴 와인은 지금과 달리 기포가 없는 레드와인이었다. 그런데 샹파뉴는 북쪽 지역이라 추운 겨울에 발효가 멈췄다가 봄에 기온이 올라가면 다시 발효가 일어나면서 와인에 탄산이 생기는 경우가 잦았다.

왕의 식탁에서 밀려난 샹파뉴 와인은 2류 취급을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샹파뉴 와인은 병이 파손되는 일이 잦았다. 당시 유리병은 내구성이 약했고, 샹파뉴 와인은 터지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악마의 술’이라 부르며 샹파뉴 와인을 기피했다.

반전은 17세기 바다 건너 영국에서 일어났다. 영국인들은 톡 쏘는 탄산이 들어 있는 샹파뉴 와인을 ‘샴페인’이라 부르며 열광했다. 마침 이즈음 영국에서는 나무 대신 석탄을 이용해 고열로 유리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구성이 좋은 단단한 유리병과 노끈으로 코르크 마개를 단단히 고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와인의 압력을 견뎌냈다. 이후 노끈은 철사 줄로 바뀌어 지금의 샴페인 모습에 이르게 된다. 탄산과 탄산으로 인한 기포를 가득 품은 샹파뉴 와인은 ‘불량품’에서 고급 ‘샴페인’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샴페인은 루이 15세의 연인 퐁파두르 부인과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랑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나폴레옹은 샴페인 인기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샴페인을 생산하던 모엣(Moët) 가문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전쟁에 나가기 전 승리를 기원하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승리했을 때는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했을 때는 샴페인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샴페인을 ‘승리와 위로의 술’로 각인시켰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윈스턴 처칠은 매일 식사에 곁들일 정도로 샴페인 애호가였고, 처칠 덕분에 샴페인은 승리와 축하를 위해 터뜨리는 술로 더욱 이미지가 굳었다.

샴페인 업계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포를 ‘천사의 숨결’ 혹은 ‘행복’에 비유하는 등 축제와 파티, 축하, 연인을 위한 술로 이미지를 굳혔다. 현대인 입맛에 맞게 단맛을 줄인 브뤼(Brut) 스타일을 내놓으며 오늘날의 맛을 갖추게 됐다.

전통적으로 샴페인 잔은 길쭉한 ‘플루트(Flute)’와 대접 모양의 ‘쿠프(Coupe)’ 두 가지다. 플루트 잔은 기포가 올라오는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좁은 테이블에서 실용적이다. 반면 넓은 대접 모양의 쿠프 잔은 여성들이 고개를 젖히지 않고 우아하게 마실 수 있고, 탄산을 빨리 날려 트림이 덜 나온다. 최근에는 좁은 입구로 향을 모아주면서도 볼이 넓은 튤립 모양의 잔이 애호가들에게 인기다.

샴페인은 비싸다. 보통 5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샴페인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스페인 카바(Cava), 이탈리아 스푸만테(Spumante), 독일 젝트(Sekt) 등 각국의 스파클링 와인이나 스파클링 막걸리 ‘복순도가’와 같은 우리 술도 훌륭하다. 새해에는 비싼 술보다는, 편안한 사람들과 웃으며 잔을 부딪칠 수 있는 여유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샴페인 속 기포처럼, 행복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보며 말이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앤소믈리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