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Toscana)와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는 위아래로 맞붙은 이탈리아의 두 지역이지만 음식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토스카나 음식은 소박하고 단순해서 ‘쿠치나 포베라(Cucina Povera)’, 즉 ‘빈자의 주방’이라 불린다. 반면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 미식의 중심으로 음식이 화려하고 기름지다. 주도(州都)인 볼로냐는 별명이 ‘라 그라사(La Grassa)’, 즉 ‘뚱뚱한 도시’일 정도. 서로 이웃하는 두 지역 음식이 어떻게 이토록 상반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을까.
◇가난이 꽃피운 토스카나 식문화
사실 쿠치나 포베라는 이탈리아 식문화 전체의 특징으로, 토스카나는 그 특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이다. 1960년대 경제 발전 이전까지 이탈리아인 대부분은 빈곤과 배고픔 속에서 살았다. 식량은 귀했고, 버려지는 건 없었다. 구할 수 있는 음식은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요리가 탄생했다. 토스카나 수프 아쿠아코타(acquacotta)와 리볼리타(ribollita)가 대표적이다.
아쿠아코타는 ‘물(acqua)을 요리했다(cotta)’는 뜻이다. 재료가 얼마나 빈약했으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주재료는 씹을 수 없을 만큼 딱딱해진 빵. 하지만 음식을 절대 버리지 않는 토스카나 사람들은 먹을 수 없는 빵으로 수프를 만들었다. 오래된 빵에 물을 잔뜩 붓고 흐물흐물해지면 짓이긴다. 양파 등 뭐든 있는 채소를 조금 더해 푹 끓이면 아쿠아코타가 된다. 리볼리타는 ‘다시 끓인’이라는 뜻으로, 아쿠아코타와 비슷하지만 토마토·흰강낭콩 등 채소가 아쿠아코타보다 더 들어간다. 여기에 며칠 된 굳은 빵을 넣고 다시 끓인다.
토스카나에서는 “아쿠아코타와 리볼리타는 우리 토스카나 빵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토스카나 전통 빵은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토스카나에서 소금은 사치품으로 과세 대상이었다. 특히 피렌체는 라이벌이던 해상공화국 피사에서 소금을 수입했는데, 두 도시 사이에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소금이 금값이 됐다. 아예 소금을 빼고 빵을 굽게 된 이유다.
◇싱그러운 에메랄드빛 올리브오일
토스카나에서 쿠치나 포베라 전통은 이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토스카나 요리는 여전히 간단하다. 복잡한 양념이나 조리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재료의 품질과 조리 방식의 정확성을 깐깐하게 따진다. 올리브오일이 대표적이다. “토스카나 올리브오일을 한 병 구하려면 백작을 지인으로 둬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다.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는 백작은 아니지만 후작 작위를 받은 유서 깊은 피렌체 귀족 가문이자 세계적인 와인 명가. 메디치처럼 금융업으로 부를 쌓아 1308년부터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피렌체 인근 키안티(Chianti) 북동부 루피나(Rufina)에는 프레스코발디 소유의 니포차노(Nipozzano) 와이너리가 있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에 프레스코발디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올리브오일 ‘라우데미오(Laudemio)’ 프란토이오(frantoio)가 있다. 프란토이오는 올리브오일 생산 공방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프란토이오를 방문한 지난해 11월 중순은 올리브 수확철이었다. 이른 아침 도착했을 때, 트랙터가 올리브를 가득 싣고 들어왔다. 이곳에서 만난 마테오 프레스코발디가 “오늘 새벽 수확한 올리브”라고 했다. 마테오는 라우데미오 생산을 총괄하는 프레스코발디 30대손. “올리브는 수확하자마자 짜는 게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풋풋하고 신선한 올리브오일 특유의 풍미가 떨어지거든요. 올레인산·폴리페놀 등 건강에 이로운 성분도 줄어들지요.”
나뭇잎과 돌 따위 이물질을 골라내고 올리브를 세척했다. 빻고 으깨 걸쭉한 올리브 페이스트로 만들어 압착하니 진한 초록빛 액체가 흘러나왔다. 정제 과정을 거쳐 수분을 제거하자 투명한 에메랄드빛 기름이 흘러나왔다.
마테오의 안내에 따라 올리브오일을 맛봤다. 유리잔에 올리브오일을 바닥에 깔릴 정도로 담았다. 손으로 잔을 감싸 쥐고 체온으로 시음하기 가장 이상적이라는 섭씨 27~28도로 올리브오일의 온도를 높였다. 한 모금 들이키자 과일을 연상케 하는 풋풋함과 톡 쏘는 매운맛, 산뜻한 떫은맛, 아몬드 같은 고소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꿀꺽 삼킨 뒤에도 기분 좋은 향이 입안에 오래 머물렀다.
◇‘레어’라야 제맛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피렌체를 대표하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역시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음식이다. T자 모양 뼈 한쪽에는 안심이, 다른 쪽에는 등심이 붙은 거대한 소고기 덩어리를 숯불에 소금도 뿌리지 않고 굽는다. 고기 두께는 최소 4㎝ 이상, 무게는 1㎏ 이상이라야 한다. 숯이나 목탄을 피워 강력한 화력으로 앞뒤로 굽는다. 4분 이상 구우면 안 된다. 무조건 레어에서 미디엄레어다. 고기가 워낙 두꺼워 미디엄~웰던으로 속까지 익히려다간 겉이 시커멓게 타버린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리스토란테 프레스코발디’에서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를 먹었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자르니 속은 여전히 시뻘겋다. 하지만 나이프를 대니 스르륵 부드럽게 잘렸다. 입에 넣으니 따뜻하다.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열기가 중심부까지 충분히 침투해 지방을 녹이고 맛 성분을 활성화했다.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젤리처럼 말랑한 고기를 씹으니 감칠맛 가득한 육즙이 흘러나와 입안을 채웠다. 육식주의자로서 극락을 경험했다.
◇라구와 파스타의 본고장 볼로냐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포(Po) 강이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강 양옆으로 기름진 평야가 넓게 펼쳐진다. 식재료가 다채롭고 풍족했고, 볼로냐·모데나·파르마 등 부유한 도시들은 화려한 식문화를 꽃피웠다.
에밀리아 로마냐 중심 도시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타 소스인 라구 볼로네제(Ragu Bolognese)의 고향. 라구에 대한 볼로냐 시민들의 자부심은 엄청나다. 볼로냐 상공회의소 금고에 이탈리아요리학회가 인증한 ‘공식 라구 볼로네제 레시피’가 보관돼 있다. 볼로냐에서는 라구를 주로 길고 납작한 탈리아텔레(tagliatelle) 등 달걀로 반죽한 생 파스타(fresh pasta)에 먹는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파스타의 본고장으로도 이름 높다. 특히 달걀로 반죽한 생면은 볼로냐의 자랑이다. 과거 물 대신 비싼 달걀로 파스타를 만드는 건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가 아니면 힘들었다. 토르텔리니는 고기나 치즈로 속을 채운 만두 모양 파스타. 볼로냐 사람들은 맑고 뜨거운 국물에 토르텔리니를 띄운 ‘토르텔리니 인 브로도’를 볼로네제만큼 사랑한다. 만둣국과 비슷해 한국인도 좋아할 맛이다.
◇치즈의 왕 파르미자노 레자노
볼로냐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파르마는 ‘이탈리아 치즈의 왕’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와 ‘이탈리아 살루미(가공육)의 왕’ 프로슈토(Prosciutto)의 도시다. 영어식 이름 ‘파마산(Parmesan)’으로 흔히 알려진 파르미자노는 12세기부터 파르마 주변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유와 소금, 레닛(천연 응고제) 단 세 가지 재료만으로 놀랍도록 깊은 감칠맛과 복합적인 맛을 낸다. 최소 12개월 숙성해 출시한다. 24·36·48개월 등 숙성할수록 우마미(감칠맛) 덩어리가 된다.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 협회(컨소시엄)는 치즈 품질을 철저히 검사한다. 협회 소속 전문 조사원이 작은 망치로 표면을 두드려 결함을 확인하고, 오케스트라 지휘봉처럼 생긴 바늘로 치즈를 찔렀다가 빼내 냄새를 맡아본다. 말뼈를 깎아 만든 바늘이다. 말뼈가 치즈 향을 잘 배어 나오게 하면서도 치즈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슈토는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 바람에 말린다. 열을 가해 익히지 않은 생햄이다. 숙성고는 세로로 긴 창문이 많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창문 열기를 조절해가며 10개월 이상 숙성한다. 종잇장처럼 저민 프로슈토 한 점을 혀에 올렸다. 달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가벼운 감칠맛과 은은한 짠맛이 조화로웠다. 몇 번 씹지 않아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조금 더 특별한 생햄을 맛보고 싶다면 쿨라텔로(culatello)가 있다. 돼지 뒷다리를 구성하는 3개의 근육 덩어리 중에서 가장 안쪽 가운데 덩어리만 빼내 소금·후추·마늘·화이트와인으로 양념해 돼지 방광에 넣고 바느질해 밀봉한다. 일반 프로슈토보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칠맛으로 미식가들에게 사랑받는다.
◇藥 대접받던 모데나 발사믹 식초
모데나는 세계적으로 이름 난 발사믹 식초의 고장. 1046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가 모데나 영주에게 식초를 선물받아 맛보고는 극찬하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황제의 발사믹’이라 불리며 만병통치약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발사믹(balsamic)이란 이름은 ‘향기로운’이라는 뜻도 있지만, 상처 치료용 향유나 연고를 뜻하는 밤(balm)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모데나에서는 모든 집에서 발사믹 식초를 만든다. 이탈리아 최고 셰프로 꼽히는 모데나 출신 마시모 보투라가 만드는 발사믹 식초 ‘빌라 마노도리(Villa Manodori)’를 맛봤다. 병을 기울이자 짙은 보라색 식초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걸쭉할 만큼 점도가 높았다. 스푼을 입에 넣자 포도·딸기·체리 등 농익은 과일 단맛과 은은한 산미가 어우러져 격조 높은 맛을 냈다.
‘모데나 전통 발사믹 식초(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Modena)’는 유럽연합(EU)이 PDO(원산지 보호 지정)로 엄격하게 보호한다. 모데나 지역에서 생산된 트레비아노·람브루스코·안첼로타 등 토종 포도 품종만을 써야 한다. 포도즙을 끓여 절반가량으로 졸인 후 최장 3개월 자연 발효시킨다. 와인처럼 나무통에 최소 12년 숙성해야 ‘전통’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다. 더 고급 제품은 25년 숙성한다.
참나무통(오크 배럴)만 사용하는 와인과 달리 밤·체리·물푸레·뽕나무 등 다양한 나무로 만든 배럴에 매년 옮겨 담는다. 다양한 맛과 향이 배어들어 이름처럼 향기로운 식초로 숙성해 간다.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모데나 발사믹 식초 컨소시엄에서는 ‘모데나 발사믹 식초(Aceto Balsamico di Modena)’라는 등급을 새로 만들었다. ‘전통(Tradizionale)’이란 단어가 빠진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전통에서 벗어난 현대 방식으로 제조한다. PDO보다 덜 엄격한 PGI(지리적 표시 보호) 제품이다. 다른 지역 포도를 사다가 쓸 수 있고, 와인 식초를 혼합해 2개월 이상 숙성한다. 아무래도 ‘전통’ PDO 제품보다는 맛과 향의 폭과 깊이가 좁고 얕지만 훨씬 저렴해 부담이 덜하다.
국내에서는 올리브오일과 섞어 빵을 찍거나 샐러드 드레싱으로만 사용하지만, 발사믹 식초는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모데나에서는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한 스푼씩 먹는 이가 많다. 아이스크림이나 딸기에 뿌리면 별미다. 수프나 스튜에 조금만 넣어도 맛이 훨씬 깊어진다.